좀 더 철저하고 좀 더 냉정하게
역시나 무리한 방학일정은 9월 개학과 더불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밋밋한 학급운영, 철저하지 못한 국어수업, 느슨한 아이들 만나기. 딴에는 2년 뒤 내 삶을 변화시킬 큰 결정을 내린 탓에 마음이 한 켠, 우울하기도 하고 괜실히 마음만 바빠진다. 이 정도에 흐트러질 정신으로 무슨 참교사노릇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하기도 한다. 언제나 남을 비판하고 평가하기는 쉽지만,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기란 무척 힘들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요즘 교단일기나 책 이야기, 내 삶을 풀어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보름 간이나 침묵해야 했다.
더욱이 오늘은 아이들과 약속한 학기 문집을 내기 어려워졌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이미 글을 다 모아 놓았지만, 아이들에게 양보를 구해야만 했다. 그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착한 우리 아이들, 나를 이해해 주었지만 섭섭한 얼굴들이 꽤 있었다. 굳이 이번에 문집을 내지 못한 까닭을 말하라 하면 나의 게으름과 무리한 방학 일정 탓으로 돌릴 수 밖에는 없다. 그 밖에 올해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좋은 글을 쓰고 있지 못한 탓도 있었다. 또한 해마다 문집의 형식과 준비를 늘 똑 같이 되풀이하는 것에 내가 질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다듬고 정리된 글을 모아야겠다는 욕심도 들고 좀 더 깊이 있는 문집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문집발간은 내년 2월로 미뤄야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약속한 것을 어긴 것은 모두 내 책임이어서 아이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반성 또 반성한다.
국어수업도 답답하다. 첫 주에 겪은 일 쓰기와 제목 달기 공부를 마친 뒤에 의견 나누기와 토론하기 수업을 하는데, 생각한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말을 하는 것,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 크다. 아직도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게 하는 수업은 나에겐 무척 힘든 일이다. 좀 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지난해는 올해와 견주어 학급운영을 잘 한 탓인지, 아님 아이들이 좀 더 열려 있던 탓인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유롭게 입을 열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입을 다문 아아들이 무척이나 많다. 입 여는 자체를 귀찮아한다. 두려움을 넘어서 귀찮아 한다. 그냥 가만히 내려버 두길 바라는 아이들이 꽤 많다. 그 아이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은 남은 2학기 내내 내가 해야할 일이다. 더 공부해야 하겠다. 요즘 여희숙 선생님의 '토론하는 교실'을 읽고 있는데, 당장 나에게 큰 도움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내일은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간다. 오르고 내리는 길에 이런 저런 내 삶의 정리가 필요할 듯 하다. 정리란 다짐이다. 좀 더 철저해지고 좀 더 나를 단련시키자. 올해 아이들과 함께 지낼 날도 석달 밖에는 남지 않았다. 아이들과 지내는 일을 더 이상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힘을 내자. 정신 차리자. 공부를 더 하자. 나에게 좀 더 엄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