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누다 잠든 새롬이' 언니의 편지
그 시를 쓴 아이 재희는 이제 곧 열여덟살이 됩니다. 고2가 되지요. 저와 지내던 시절이 5년 전이었는데, 그때 재희는 한 여름에도 머리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니던 아이였습니다.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어떤 질병으로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던 터라 늘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는데, 그럼에도 늘 밝았고 교실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아직도 머리카락이 나질 않는다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곧잘 힘겨운 노동으로 어렵게 농삿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글을 쓰곤 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가게 됐다며 글을 보낸지 2년 만에 보낸 이야기가 참으로 애틋합니다.
재희가 떠 올린 5년 전 제 모습을 보며 요즘을 돌아보게도 합니다. 지금은 학급운영에 쓰지 않는 상벌점 이야기, 수학공부때문에 혼났다던 재희 이야기를 들으니 빙긋 웃음만 납니다. 요즘 전 곧잘 그 시절 열 두명의 아이들과 행복했던 일 년을 늘 말하고 다니는데 다행히도 재희도 그렇게 기억해 주고 있어 고맙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과 만들었던 문집으로 우리교육에서 처음으로 좋은 문집상을 받기도 했는데, 그 때 기뻐하던 아이들 모습도 새삼 떠 오릅니다. 벌써 5년이 지났다니......
대통령이 바뀌면서 더욱 더 경쟁과 효율을 강조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이렇게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살며 추억과 꿈을 키워가는 것, 행복을 만들어 것이 아닐까요?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어가는 것은 단순한 학력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당연한 깨달음을 아이편지 속에서 읽어냅니다. 힘들겠지만 아이들과 교사가 좀 더 행복한 세상을 우리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우리 재희 편지 허락도 없이 이곳에 옮겨와 봅니다. 안그래도 시집을 보내주려 했는데......보고싶다 재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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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재희예요!! ^ ^
아, 정말정말 너무오랜만인것 같아요.
그동안 이리저리 바쁘다는 핑계대고 선생님께 안부메일도 못보냈습니다.
잘지내고 계시죠? 아직까지 김해에 계세요?
아, 선생님께 이렇게 메일을 쓸려니까 막 가슴이 벅차오르는것 같아요! ^ ^
너무 오랜만이고, 드릴 이야기도 너무너무 많구요.
선생님. 제가, 그 철없고 조잘조잘대던 제가 며칠만 있으면 벌써 18살이 되요.
정말 세월너무너무 빠른것 같아요. 방금 카페들어갔다 나왔을때만 해도
선생님과 글쓰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공부를 하던것이 다 엊그제일같은데.
벌써 5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고등학교는 저번에 말씀드린대로 실업계를 왔구요.
처음에 장학금을 받으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제 의지와는 전혀 반대로...
정말 그 반분위기에 같이 묻혀가더라구요. 장학금은 무슨...
촌에 중학교를 다닐때는 내신을 잘 받아서 고등학교가서도 이정도 되겠구나.했었는데
시내아이들이 공부를 훨 잘하더라구요. 촌에서 상위권아이들의 수준이 시내에는 하위권 중위권 밖에 안되더라구요.
정말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라고 깨닫고. 열심히 해볼려고 했는데...정말 이제라도 열심히해야겠어요!
벌써 2학년으로 올라가는데. 지난 1년을 정말 재밌게 잘보내서
2학년 올라가는게 솔직히 걱정되고 반아이들이랑 떨어지는것도, 담임선생님과 헤어지는것도 섭섭하고 아쉬워요.
처음에 머리카락이 길지않아서. 모자를 쓰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때.
주변 시선이 너무너무 아팠어요. 정말 죽고싶을 정도록 학교에 오기싫었고.
또 시내아이들이 참 짖궂잖아요. 그래서 장난으로 하는 말이 저에겐 다 가시가 되서 하나하나 다 심장에 박히더라구요.
입학한 첫날, 정말 쓴맛을 보고 그날 집에오는 길에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왜 하나님 나한테만 이런 고통 주시냐고, 시련주시냐고.
그런데 고등학교 가고 일주일 정도가 흘렀는데. 친구들이 너무너무 잘해주는거예요.
제 머리에대해 그냥 자연스레 물으면서 절 이해해주고 다독여주고 잘 감싸주고 보살펴줬어요^ ^
학교선생님들도 다 이해해주시고, 친구들이 아무거리낌없이 그냥 다가와줘서 너무 행복한거예요.
학교생활이 너무너무 재밌어서 오히려 집보다 학교가 더 편할정도로 되어버린거에요.
친구들이 모자쓴 저를 보고 첨엔 아픈아인줄 알았대요. 얼굴이 하얗게 창백한 아이가 모자를 쓰고 앉아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저의 본 모습을 안 친구들이 첫인상과 너무 반대라면서.
재잘재잘 거리는건 여전해요. 뭐 그 버릇이 어디가겠어요. 뭐 시끄럽다고들 하지만 같이 떠들면서 웃어넘겨요^ ^
그렇게 고등학교 1년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잘 보냈습니다^ ^
은희와 주희랑은 같은 학교라서 매일매일 보구요. 예슬이는 고등학교 와서 만났어요.
그리고 기쁨이는 한번씩 문자나 전화 조금씩 하구요. 남자아이들은 모르겠어요...뭐 알아서들 잘 살겠죠뭐.ㅎㅎㅎ
명희는...중학교때 계속 연락하고 전화하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오면서 좀....조만간 전화한번 해볼려구요.
고은이는 잘사나 모르겠어요. 저번에 미니홈피 통해서 사진도 보고 고은이가 어떻게 사는지 알수있었는데..
고은이랑도 요즘 연락이 안돼서...역시 눈에서 멀어지니까...
선생님께서는 아프신 곳없이 잘 계시는지 정말 궁금해요.
아, 아들있었죠? 그때가 7살이였나요? 태환이였던가?태석이? ...아 가물가물해서...
많이 컸을꺼 같아요! 그렇죠? 둘째는...?ㅎㅎㅎ
아직까지 글쓰기 강조하시겠죠? 지금 선생님이 어떤모습일지 정말 궁금해요.
전 정말 잘지내고 있구요. 5년전 모습 그대로 밝은 모습으로 살고있어요!
이번방학때는 난생 처음 아르바이트도 해볼껀데요. 부모님께서도 한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저도 제힘으로 돈 벌어 보고 싶고. 그래서 한번 도전해볼려구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제 손에 돈이 쥐어지면 되게 뿌듯할꺼같아요^ ^
아, 오늘 잠깐 지난 추억에 빠져서 행복했던것 같아요.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것같은...^ ^
가끔 이렇게 옛날 추억 생각하는것도 좋은 것같아요. 다시 되새기면 잊혀져가던것도 다시 더 선명해지고.
전요. 아직까지 우리가 불렀던 노래도 다 기억하고 있고, 수화도 어렴풋이 기억나구요!
음...상점.벌점..선생님이 아침마다 읽어주셨던 책. 등등 많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수학시간에 최대공약수 최소 공배수 몰라서 선생님께 볼 꼬집혔던거. 아 그때 조금더 볼 꼬집혀 가면서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수학시간이 싫지 않았을텐데...
여러모로 선생님께선 제게 특별하신 선생님이셨던것 같아요. 많은걸 가르켜 주셨고 새로운걸 알게해주셨으니까요.
선생님 저희 12명 다 기억하고 계시죠? 수십명, 수백명의 제자들이 거쳐갔지만 그래도 저희가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남죠?
저희 얼굴, 이름 전부 다 기억하고 계실거라고 믿어요.
5년전, 우리 12명과 선생님이 있었던 학교가, 교실이 그립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이만 줄일께요^ ^
다음에 애들이랑 한번 찾아뵐테니까 그때까지 부디 몸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