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수업, 그러나 불친절한 활동지
오늘 첫 시간부터 둘째 시간까지 80분간 국어수업이었다. 사이에 잠시 쉬기도 했지만 ,두 시간 내내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수업을 했다. 어제 나름대로 교구를 만들어 볼까 하다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그냥 아이들에게 맡기자고 생각했다. 교과서 들어가는 그림처럼 8절 도화지 절반을 잘라 아이들에게 각각 나눠 주고 네임펜으로 각각 자음과 모음을 쓰게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 신나게 그려 나갔다. 서툴고 모양이 비뚤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만든 거라 더 살아있었다.
생각 끝에 교과서는 치우고 시작을 해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의 특징은 교과서를 펴자고 하면 교과서와 함께 필통을 열고 연필을 잡는 자세부터 취한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총을 잡는 것이 마치 병사와 같다. 순간 수업은 없고 문제풀이 과정만 있는 것 같다. 학원에서도 이렇게 공부하겠지. 이 수업을 교과서로 한 번 훑어 보고 할 것인지 아님 사이사이마다 활동지를 넣어가며 할 것인지 고민하다 교과서를 모두 없애고 시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이들 모습이 훨씬 편해 보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수업 방식은 내가 한 낱말을 안내하면 한 아이가 나와서 친구들 둘레를 돌아다니며 자음과 모음을 가져와 낱말을 칠판에 만들어가는 식으로 시작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서로 한 번씩 해보려 한다. 시간이 정해져 있어 자세가 바른 아이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었다. 덕분에 한 시간 내내 아이들은 매우 진지했다. 1분이라는 시간을 정해 주었는데, 그 시간 안에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직접 낱말을 떠올려 보라고 했더니 유진이가 '채소'라는 낱말을 내뱉었다. 모음이 합쳐져 있는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ㅏ',와 'ㅣ'를 합치면 된다는 말들을 했다. 이어 뽑인 아이가 그 과정을 칠판에 나타내 보여줬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되풀이되는 과정이지만 한 낱말 두 낱말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즐겁기만 했다.
이어 종은 울리고 잠시 쉬고 난뒤, 2교시에는 활동지를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왼쪽에는 자음을 오른쪽 위쪽에는 모음을 늘어놓고 서로 이어 자음과 모임이 만나 한 음절을 이루는 활동지였다. 급하게 쓰지 않고 천천히 바르게 쓰도록 안내했는데 짐작한 대로 요령을 피워가며 빨리 써내려 가려는 아이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쓰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어 'ㅊ,ㅋ,ㅌ,ㅍ,ㅎ'이 'ㅈ,ㄱ,ㄷ,ㅂ,ㅇ'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공부하고 'ㄲ,ㄸ,ㅃ,ㅆ,ㅉ,'과 'ㄱ,ㄷ,ㅂ,ㅅ,ㅈ'의 관계도 알아보며 자음의 체계를 넓혀 공부도 해 보았다. 다만, 아이들 활동지를 급하게 만들다 보니 안내글을 너무 어렵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무슨 뜻이냐 묻는다. 어떤 아이들은 안내글을 읽지도 않고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안내글을 다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쉬운 안내글을 만들어야 활동지를 통해 아이들이 수업을 전 과정을 이해하고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든다고만 되는 일은 아닌 건 알았지만 아직은 모든 게 서툴기만 하고 채울 것이 많아 보인다. 오늘도 이렇게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오늘 나경이가 내 곁에 와서 서성이길래 일기에 쓴 '수영' 얘기를 일부러 꺼냈다. 수업시간에 워낙 말도 안 하고 수줍어 하던 나경이가 그 얘기가 나오자 차근차근 또박또박 말을 하지 않는가. 자기가 제일 수영을 잘 하고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란다.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관련 이야기를 편안하게 잘도 해 주었다. 수학을 어려워 해 오늘 남아서 못 풀던 문제를 함께 풀었다. 조금 답답한 부분이 있었지만, 나경이는 모든 문제를 제 수준에서 해결하고 집으로 아니 학원으로 갔다. 오늘은 나경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