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두 번째 가정방문
오늘 토요일이지만, 두 분의 학부모님과 상담을 마쳤다. 수업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예원이 어머님과 한 30분여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급했던 어머님과 편안하고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어 며칠 전 나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던 은서 집에 가정방문을 했다. 학기초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온 교실을 눕거나 쏘다녀서 걱정을 많이 했던 아이였지만, 이제 두 달을 넘기면서 제법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아직은 기복이 커서 행동이 일관됨이 없어 곧잘 꾸중을 하긴 하지만, 가정에서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좀 더 안정된 생활습관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아이였다.
내 차를 타고 아이의 집을 떠날때, 은서는 나보고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우리 집에 가면 충격받을 건데요."
"왜?"
"가보면 알아요."
소형의 낡은 아파트라는 것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는 멀지 않는데, 2학년이 걸어서 학교로 오기는 조금 버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르막을 10여분을 걸어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동 몇 호냐고 물었더니 호수를 모른다. 그냥 감으로 가니 따라 오란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은서의 감을 믿고 따라 올랐다.
내가 올 것을 알고 계셨는지 문은 열려 있었다. 은서도 초인종도 누루지 않고 곧바로 들어갔다. 좁고 오래된 아파트로 보였지만, 스스럼 없이 가정방문을 허락해주신 은서어머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무척 고마웠다. 집안의 벽지는 온통 은서의 낙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은서가 왜 내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은서 어머님은 은서가 좀 더 크면 도배를 새로 할 생각이어서 그대로 놔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콩국수 준비를 아직 못했다 하시며 당황해 하시기도 했다. 오기 전부터 점심 걱정은 하지 마시라 했지만, 역시 아이 담임은 어머님에게 큰 손님은 분명해 보였다. 물을 청한 나는 은서 어머님과 곧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난 두 달동안 은서가 어떻게 변했는지, 또 무엇을 잘못해 혼이 났는지 자세히 말씀드리면서 은서에 대한 학교생활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지난 3월 상담이 시작되기 전에 학교를 찾아 걱정을 많이 하셨던 은서 어머님은 은서가 학교생활이 많이 달라졌음에 만족해 하셨다. 다만, 집에서 생활하는 은서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걱정이 많다 하셨다. 배운 것도 없어 부족한 어머님과 아버님이 늦게 아이를 낳아 공부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만 든다며, 집안에서도 좀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은서가 됐으면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머님 말씀대로 은서는 학교와 달리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은서는 어머님과 나의 대화를 정확히 듣고 참견도 해가며 담임이 온 것을 즐거워 하는 듯 했다.
은서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공부한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거리낌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다만, 쉽게 싫증을 내는 등 기복이 있어 오래 전에 학습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즐겨 보는데 어머님이 적게 보게 하려 애를 쓰지만, 어머님의 말을 듣지 않는 은서를 감당하지 못하고 은서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버려 두는 일이 잦아 보였다. 그래서 어머님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은서랑 약속 세 가지를 했다. 하나는 집에서 10분간 돌아다니지 않고 책 읽기, 둘째는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책 10분간 편안한 자세로 듣기, 셋째는 밥 먹을 때 텔레비전보지 않기였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은서와 은서 어머니에게는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저런 걱정과 위안을 뒤로 하고 5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은서집을 나오려 했다. 떠나려 하자 은서어머님은 부랴부랴 뭘 챙기신다. 시골에서 가져온 정구지랑, 토마토가 조금 있다며 가져 가라 하신다. 은서어머님의 마음을 아는 나는 고맙게 받았다. 내년이면 이렇게 챙겨줄 선생님도 없을 것 같다며 공부방을 보내야할 것 같다고 걱정도 하셨다. 지난해는 은서어머님이 은서가 안쓰러워 몇번이고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께 이런 저런 부탁을 해야했는데, 올해는 담임이 직접 나서서 챙겨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고마운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할 말씀이셨다. 그 까닭은 나 또한 이렇게 한 아이의 집을 찾게 될 때마다 얻는게 많기 때문이다. 늘 학교에서만 보던 아이를 집에서 만나게 되면서 아이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전과 다르게 아이를 대할 수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것, 교육이라는 것, 내가 교사라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강승숙 선생님과 송언 선생님의 실천을 보면서 3년 전부터 해오던 이 가정방문 실천을 앞으로도 중단할 수 없는 가장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좋은 교사 운동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자기가 속한 모임에서 가정방문이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근히 자랑도 하던 그 선생님은 공교롭게도 아니 운(?)이 나쁘게도 관리자들의 귀에 들어가 제재를 당해야 했다. 새파랗게 젊은 교사의 자칫 어설픈 가정방문으로 불신만 키워낼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때문이었다. 그 교사는 결국 가정방문을 하지 못했고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 나는 가정방문을 운동차원에서 해야할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가정방문을 왜 하는지에 대한 교사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더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정방문은 그저 좋은 실천이니 함께 동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아이를 좀 더 이해하고 변변치 않은 교육력이지만, 내가 맡은 아이가 나를 만나서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변화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평범한 교사의 진솔한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사가 스스로 바뀌고자 할 때, 운동도 제 몫을 하게 된다.
아직은 가정방문을 흔쾌히 허락해주는 부모님은 드물다. 올 해도 서른 세명 가운데 단 세 집 밖에는 없다. 딱히 부모님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동안 학교와 교사가 보여준 신뢰가 그리 높지도 않은데다 집안을 찾는 손님에게 무엇인가 잘 보여주어야 한다는 우리네 의식과 나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 하는 또 하나의 의식이 우리 어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새롭게 5월로 들어섰다. 부디 관계의 달 5월에 아이들과 나, 학부모님들이 서로 좀 더 높은 믿음을 쌓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은서 집을 나서 주차장으로 다가서는데 5월 치고는 꽤 뜨거운 햇볕때문에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하지만, 은서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정구지와 토마토를 두 손에 든 내 마음은 활짝 펴 있었다. 은서야, 어린이날 잘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