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상상력의 빈곤
오늘은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어제 남학생 하나가 전학을 와서 15명이 된 우리 반을 찾은 어머님들은 모두 다섯분이셨다. 한 분이라도 오면 성공한 거라는 동료선생님들의 말도 있었으니 나는 대단한 성공(?)을 한 셈이다. 이전 학교에 있었을 때는 학부모와 학교의 만남보다는 학부모와 교사의 만남에 더 신경을 써서 충분한 상담을 했는데, 이 작은 학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30분 정도 밖에는 배정을 해 놓지 않아 부득이 수업시간까지 어머님들과 아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짐작한 대로 어머님들의 주된 이야기는 아이 공부문제였다. 도시 학교나 농촌 학교나 부모님의 관심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로지 공부였다. 뒤처지는 아이들은 뒤처지는 대로 그나마 안정적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두 공부 걱정들이었다. 열악한 경제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란 이들 부모에게 오로지 학력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자식 교육에 대한 상상력조차 빼앗아 버렸다. 개발독재시대와 달리 이제는 개천에서 용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조차 시골부모들의 관심이 오로지 교과공부 말고는 한 치 앞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도시 부모님들과 상담을 할 때는 그래도 공부 말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과정도 밟고 함께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곳 시골 부모님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오로지 교과공부에만 관심을 쏟아 상담의 폭과 깊이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지점과는 다른 삶들을 엮어내고 있었다. 지난 한 달동안 나는 풋내나는 시골아이들과 지낼 수 있어 기뻤지만,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일상들은 도시 아이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6년전 내가 겪었던 시골학교, 시골 아이들이 아니었다. 김치를 비롯한 채소는 입에 대기도 싫어하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며 시내에 나가 놀거리를 찾아 해매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이따금 힘이 빠지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요즘들어 교사로서 내가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자꾸 헷갈리고 당황스럽다. 아이들 곁에서 함께 살아주는 것만으로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 때로는 이런 고민을 혼자만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기도 하다. 동료교사들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도 벅차 보인다. 정치적인 이슈나 사회적인 교육관련 이슈조차도 이들의 관심거리는 아닌 듯 하다. 요즘 교육은 미쳤다는 우리학교 동료선생님의 자그마한 불만은 그저 불만으로 멈춰 있었다. 모두들 대안을 찾고 새로운 교육을 상상하는 힘은 이곳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절실함이 없어서 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학부모나 학생이나 교사들에게 절실함들은 있다. 학부모는 아이들의 성장과 공부에 대한 절실함이 있고, 아이들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절실함이 있고, 교사에게는 좀 더 좋은 교사가 되려는 절실함들이 있다. 다만, 그 절실함들이 하나의 고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각기 따로 헛돌고 있어 각 주체들의 희망이 늘 절망속에서 맴돌고 있다. 본디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해 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허상을 덧씌워 지배체제를 흔들게 할 상상력들을 막아 왔던 것은 지난한 우리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경쟁과 학력이라는 허상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의 교육적 상상력을 막고 사회문화적 양극체제를 유지해 안정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습성은 여전히 달라지지 있다. 이 틀을 깨지 못하고서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사회와 우리가 바라는 교육을 꿈꿀 수 없을 거라는 교과서적인 해답만 머리 속을 맴돌기만 한다.
얼마 전, 나는 벨기에에 '로제타 플랜'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제도는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은 청년실업자를 의무적으로 몇 명씩 고용해야하다는 법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했던 벨기에는 이 제도를 통해 상당부분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소비도 진작시켜 사회경제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는 거다. 우리도 공부 잘하면 우리 아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중산층과 이하계층의 희망만으로는 결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교육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늘 학교에서 우리 학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욱 답답했던 것은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내가 더 해줄 말도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는 거였다. 오늘 이야기 끝무렵에 한 어머님께서 우연히 우리 학교에서는 중간기말고사를 쳐서 일정한 평균이 넘는 성적을 거두면 상을 준다는 이야기를 해서 놀랬다. 교직 경력 17년만에 시험치고 상을 받는 초등학교는 처음인데다 그 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3월 31일은 전국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는 날이다. 오늘 전교조는 '일제고사 불복종'을 선언했다 한다. 앞뒤가 꽉 막힌 기분이다. 아~ 이 빈곤한 교육적 상상력의 세계에서 빠져 나올 날은 언제나 될까?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어디여야 할까?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상상력도 무척 초라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