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선생 2009. 7. 1. 23:37

요즘 일이 하나 생겨 지난 17권의 문집을 쭉 훑어 보고 있다. 때로는 깊게 그 시절을 떠 올리며 읽는다. 그때 그시절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무엇이 솟는다. 이글을 김해에서 읽었어도 이런 기분이 들까 싶을 정도다. 오늘은 2004년 아이들과 만든 계절문집을 읽었다. 네 권의 문집을 읽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쓱 읽어내려가다 어느 한 아이가 쓴 글에 머물러서는 한참 그 아이를 생각하며 읽곤 했다.

 

그때마다 아, 그랬구나. 그 때 그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그런데 내가 그때 보인 반응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은 다르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왜 그땐 그걸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그때 조금 더 살갑게 대하지 못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나를 힘들게만 만들었던 그 아이들이 지금은 무척이나 고맙게만 느껴지는 것이 늘 후회만 하는 것이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때문에 다시 읽게 된 문집이지만, 문집을 만들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도 하며 살고 있을지. 이런 저런 생각에 머물다 보면 가슴 시리도록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 아이들이 눈물나도록 보고 싶어졌다. 다시 그 아이들과 그곳에서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참으로 다양한 삶들을 글에 담아 보여주었던 아이들의 정성이 이제는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아직 남은 여덟권의 문집을 앞으로 이틀에 걸쳐 읽을 계획이다. 벌써 가슴이 설레고 가슴 한 켠이 아릿하다. 지금도 삶을 담은 글을 써내고 있는 우리 시골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더 정성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5년 전 한 아이가 나에게 보내준 편지 한 장 올려 본다. 그 시절이 정말 그립다. 그 아이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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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혜원인데요. 지금 추워서 글씨가 안 써질 정도로 추운데,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저는 추워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꼼짝 안 하고 집에만 있어요.

방학식날엔, 이제 실컷 놀 수 있다! 하고 엄청 기뻤는데, 이제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 이렇게 지루하게 있는 것보다, 학교 가서 애들이랑 떠들고, 놀고, 공부하는 게 백배, 천배 더 나은 것 같아요. 방학이라고 좋은 점은 딱 하나,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컴퓨터 학원을 11시에 가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그거 하나는 좋은 것 같아요.

 

저번 주 토요일인가, 그 날에는 혜경인 일본가고, 주리랑 저는 칠암 도서관에 갔는데, 오랜만에 주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맨 날 지니로 쪽지만 주고받고 하다가 직접 만나니까 너무 좋았어요. 중학교라도 같은 데 걸리면 좋을 텐데. 다음 주에는 애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1/21일 날에는 중학교 결정 때문에 보고, 주말엔 여자 애들끼리 놀기로 했거든요. 너무 좋아요. 작년에는 진짜 특별한 일들이 많았는데, 특히 저한테는 더 특별했어요.

 

문집도 지난 6년 동안 단 한 번도 안 만들어 봤고, 이번 6학년 와서 처음 문집을 받아 봤거든요. 또, 신문부가 되서 기사 쓰는 것도 처음 해 본 일이었고, 일기 쓰는 방법도 지난 학년 동안 단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방법이었어요. 날씨는 예전엔, 일기장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동그라미만 그리면 끝나는 일을 이번엔 다 글로 표현 했으니까요. 이것 외에도 위지성, 정재호 학출(?)사건, 초 만든 것, 뷔페 잔치 한 것, 체육대회 한 일들, 안 좋은 일, 좋은 일 다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6학년 13반인 것 같아요.

 

선생님도 이때까지 맡아본 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일걸요? 이렇게 손으로 편지 쓰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요. 좋은 경험 많이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2005년 1월 15일 토요일

김혜원 올림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혜원인데요.

저번에 썼던 편지는 우체통에 넣긴 넣었는데, 편지가 안 간 모양인데 잘보고 넣을 걸. 규리도 저랑 같은 우체통에 넣어서 안 간 것 같아요. 그 편지는 진짜, 글씨도 이것보다 엄청 작게 해서 한 장 꽉 채웠었는데, 억울해요. 이것 때문이라도 선생님한테 할 이야기 꼭 다 써야겠어요.

 

음, 먼저 생각나는 건 지난 장거리 여행, 그 때 계룡산 올라가다 다리에 힘 다 풀려서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많은 걸 깨달았어요. ‘진짜 이것 보다 힘든 일없을 거다’라고 생각 했어요. 이젠 살아가면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진짜 좋았어요.

 

또 하나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글쓰기 방법. 처음엔 조금 힘들었어요. 그래도 일기를 하루 안 빠지고 쓰다 보니까 괜찮아 진 것 같아요. 굴렁쇠 신문에 제가 처음에 쓴 일기가 실렸을 땐 좀 놀랐어요. 나보다 더 나은 글이 많을 텐데 실렸으니까요. 그리고 문집도 제가 이 어방초등학교 다니면서 처음 받아 본 거거든요. 그래서 절대 안 버릴 거예요. 만약 내가 나중에 커서 문집을 보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중학교 결정이 났는데, 혜경인 삼정, 다른 애들은 거의 다 대곡이어서 저랑 같이 가는 친한 애들이 없어요. 여자 애들 중에서 은별이랑 저 뿐인 것 같던데, 신어가 걸려서 좋긴 좋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좀 아쉬워요. 친한 애들이랑 같이 갈 거면 대곡 넣을 걸. 잘못 했나 봐요. 아무튼 저번에 썼던 편지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냥 이렇게 써요. 좋은 경험 많이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2005. 1. 23. 일요일

김혜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