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읽은 책 들려주기

[거꾸로 희망이다] 외 네 권을 읽고......

갈돕선생 2009. 8. 31. 21:38

다른 곳에 글쓰기할 일이 많고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 내 글쓰기 창고가 한 달이 넘도록 텅 비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저 지켜 볼 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내가 있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내가 사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춘기에 들어선 우리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 당분간은 지켜 볼 생각이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도 있다. 너무 어렵게 사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너무 쉽게 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즐겁게 일하면서 남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나이 마흔 둘에 꿈꾸는 일을 쉽게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다. 당분간은 그렇다.

 

요즘은 그저 책 읽는 게 제일 좋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희망이라는 말에 질려 버려 더 이상 희망이라는 말조차 보기 싫던 내가 또다시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는 특강모음책에 손을 대 버렸다. 시사IN이 올해 초에 벌인 인터뷰식 특강의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에게 이문재가 생태적 상상력을 묻고, 정혜신에게 김어준이 위기의 심리를 묻고, 김수행에게 정태인이 자본의 미래를 묻고, 조한혜정에게 우석훈이 '문화적상상력'을 묻고, 박원순에게 하승창이 대안경제를 묻고 서중석에게 정해구가 역사의 위기를 물었다. 희망의 개념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정말이지 거꾸로 희망이었다.

 

 

박원순선생님의 책도 읽었다. 인터뷰전문작가인 지승호가 박원순을 인터뷰하여 자연스럽게 회고록을 만들게 한 재미난 책이었다. 더욱이 이번 국어교과전국연수에 내가 직접 초대한 분이어서 그분에 대한 정보를 가져 볼 요량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인터뷰로 조목조목 펼쳐내는 지승호의 재주도 신기하고 오로지 세상을 위하고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신을 하는 박원순씨의 삶은 놀랍기만 했다. 내가 앞으로 조직에서나 조직 밖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방향과 지표를 보여주었던 것 같아 기분 좋게 읽은 책이었다. 그런 분을 직접 만나 뵙고 밥도 같이 먹으며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던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 이 책 끝에는 그분의 유언장도 담겨 있다. 나도 그런 유언장을 쓰고 싶다.

 

 

교실이 돌아왔다는 조한혜정교수의 책도 읽었다.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 삶읽기 1,2,3에 이어 새로운 세상을 새롭게 보며 펴낸 책이다. 시대가 달라진만큼 제목도 달라졌다. 신자유주의 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길라는 부제를 달고 '교실이 돌아왔다'는 큰 제목을 붙여 놓았다. 자신의 문화인류학강좌를 신청하는 대학생들과 소통하며 수업한 내용과 결과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풀어낸 내용이 참신하기도하지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사고와 삶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거대하고 삭막하기만한 대학교양강좌의 교실을 작은 공동체로 만들어 소통의 공간으로 살려는 조한혜정 교수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얼마 전에는 '안녕, 도쿄'라는 책도 읽었다. 나이 서른 여섯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석달동안 일본을 여행한 어느 여인의 가볍고 발랄한 여행기였다. 도쿄에서 석달 가까이 머물며 도심 곳곳을 누비며 도쿄시민들의 삶을 만끽하는 골드미스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세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세상의 변화와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있어 그런대로 좋았던 책이었다. 그러나 도쿄에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조차 그려낼 공간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그저 영화처럼 먹고 즐기고 관광하는 일상들을 그려나가는 글쓴이의 그림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386세대일까.

 

 

어제는 지난 토요일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가고 내려올 때 줄줄 읽어냈던 한비야씨의 최근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었다. 늘 조증상태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한비야씨의 작고 섬세한 고백들은 불안한 내 마음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첫사랑에 실패한 이야기와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나 지난날을 돌아보는 한비야씨의 삶을 읽으며 내 그리운 대학시절도 떠올렸고 새로운 꿈을 꾸며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그의 이야기에 마흔에 꿈꾸는 내 꿈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도 해 볼 수 있어 좋았다. 톡톡 튀는 그의 삶, 언제나 운이 좋을 것만 같은 그녀의 삶도 늘 불안과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건 어김없는 한비야 스타일이다. 그녀가 쓴 글 가운데 '이런 성공이라면 나도 꼭 하고 싶다'는 꼭지가 마음가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끝으로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정의한 성공을 이곳에 옮겨 와 본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내가 꿈꾸는 성공도 그렇다. 이 성공을 위해 요즘 그저 내 삶과 내 주변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