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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싸우는 선생 2

갈돕선생 2009. 11. 23. 16:13

1학기 때 이 제목을 달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새삼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은 화를 풀고 싶어서다.
얼마전, 한겨레21에서 '화'라는 벼름소(주제)로 한 강연록과 우리교육에서 특집으로
만든 교사들의 화, 아이들의 화를 읽은 적도 있지만,
도무지 우리네 학교에서 나 같은 교사들의 '화'는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국일제고사가 끝나고 한동안 신종플루로 이런 저런 전시성 행사들이 잦아들면서
그나마 조금 조용해진 학교가 지난 주말부터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얼마전 충남도교육청은 전국평가를 끝낸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2-6학년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겠다는 발표를 했다. 아울러 도교육청은 몇몇 표집학교를 빼고는 자율적(?)으로 시험을 치고
그 결과도 알아서 처리하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그 표집학교에 있었다.
일제고사를 1주일 앞 둔 지난 주에 바로 우리 학교가 표집학교로 결정된 것이었다.

다급한 교장은 자율적으로(?) 8교시는 물론 5시 10분 즉, 9시까지 수업을 하도록 연구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연스레 늘 딴죽을 거는 6학년 의사를 물었고 난 단호히 거부를 했다. 그것이 지난 주의 일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마지 못해 하는 눈치였고 욕은 나만 먹으면 되는 것이라 여겼다.
다른 선생님들을 설득하기에는 우리 선생님들은 너무 착하기만(?) 하셨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아침부터 나와 대면하기를 껄끄러워하는 교감은 연구부장을 통해 오후에
남기지 못하면 자기가 직접하겠다는 말을 전해 왔다. 나는 화가 났고 당장 교감과 한 판 뜨려(?)
하자 연구부장이 자기가 대신 말을 잘 전하겠다며 자제를 시켜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 쯤 되니 이제는 교장이 또 나를 부르는 것이다. 일단 상황은 짐작이 됐고 마음 단단히
먹고 얘기하려 교장실로 갔다. 얘긴즉슨, 다른 학년은 다 하겠다는 데 나만 안 하겠다하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웬만하면 함께 동참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즉시 이게 모양새를 운운할 사항이냐며, 초등학생 아이들을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시가
넘도록 붙잡아 놓고 문제지 풀리는 공부를 시킨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 따졌다. 어이가 없었던 건
교장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어가며 계속 내 의사를 직접 묻고자 한 것이지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라 자꾸 말을 비껴가기만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지 않는다고 어떤 불이익도 없는
것이라며 황당한 소리까지 해대는 게 아닌가. 짐작은 했지만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쳐야겠다는 소신도 없었다.
그저 교육청 눈치나 보고 욕이나 듣지 말아야한다는 신념(?)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뿌리깊은 관리자들의 복지부동 습성이 비단 이곳만 그렇겠는가.

처음부터 대화가 목적이 아니었고 대화도 안 되는  교장선생님과 나는 그렇게 헛도는 얘기들만
나누고 인상을 잔뜩 치푸린채 교장실을 나와야 했다. 서둘러 상황을 매듭지으려는 교장선생님은
어설프게 음료수 하나라도 들고 가라 했지만, 잔뜩 불쾌해진 나는 교장실을 박차고 나왔다.
언제까지 말도 되지 않는 사안을 가지고 이런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후에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교감이 공부를 시키겠다는 말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불현듯
나타나 아이들을 남기겠다고 교실로 들어서는 날에 교감과 나는 어쩌면 아이들 앞에서 싸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싸웠다. 앞으로도 싸울 일이 몇 가지 더 있다. 투쟁 속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던 가. 허~ 투쟁 속에 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