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글 감옥]외 네 권을 읽고......
몇 해 전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읽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려 주는 책이었다. 주로 대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삶을 솔직히 드러낸 자전적 에세이라는 자평에 손색이 없었다. 에세이니만큼 이 책 모든 글과 꼭지에 조정래라는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닮겨 있다. 깐깐하고 철저하고 빈틈이 없고 흔들림없는 삶의 철학을 오롯이 읽어낼 수 있다. 소설을 쓰는 프로작가로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자식들의 아비로서 시대의 사명과 아픔에 충실하고 함께 하려 했던 민족작가로서 지나온 세월을 그는 담담히 써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또 다시 '태백산맥'과 '한강', '아리랑'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불쑥 생긴다. 조만간 그의 책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내 삶을 때때로 돌아보게 만들고 약해져가는 마음을 다잡아주는 책이었다.
이범, 이범. 요즘 이 사람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한 때 사교육의 선두주자였던 그가 시사IN을 비롯한 각종 잡지에 교육비평들을 쏟아내는가 하면, 정당과 교육감 후보 곁을 오가며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것 행보도 보인다. 신선한 대안과 새로운 접근과 시각으로 여기저기 전국을 돌아다니며 교육관련 강의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참교육을 외쳐댔던 전교조는 지난 10년간 과연 무엇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범 또한 책에서 전교조에 대한 애증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나처럼 아직은 믿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조직으로 전교조를 들고 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정말 그의 주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가 새겨듣고 지혜를 모아야 할 얘기들이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주장은 정확한 근거과 일련의 괘가 있고 현실적 대안이어서 확 눈에 들어온다. 왜 이런 주장들을 참교육연구소나 진보교육연구소와 같은 곳이 아닌 사교육에 몸을 담았던 자칭 교육비평가라는 사람의 입에서 들어야 하는지 한편 아쉽기도 하고 원망 같은 마음도 들었다. 교사들이 정말 바꾸어야 할 것은 내 교실과 학교. 우리 교육체제와 문화다. 이념을 떠나 모두가 행복한 대안들을 찾아나서는데 많은 사람들의 작은 실천과 힘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한 해 전에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 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책과 <열 다섯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이 책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도 광고를 해서 그런지 일단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든 책이었다. 우선 두꺼운 하드표지에 내용도 그다지 많지 않는데 글자 크기를 키워 300쪽 가까이 채워낸 것이 책값을 올리려 했던 것 같아 처음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위의 책을 쓴 이범처럼 사교육시장을 주름잡았던 사람이 해설을 곁들여 옮겨놓은 책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괜히 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구나 이 사람은 핀란드를 한 번도 간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위로를 해준 건 이 책을 추천한 인물들 때문이었다. 심상정, 이범, 정병오 등등.... 이 책에 대한 오해와 불신, 선입견을 없애려 무던히 애를 쓴 흔적이 보여 겨우 겨우 첫 쪽을 열 수 있었다.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후쿠다 세이지 라는 일본 학자의 접근과 시각이 꽤 마음에 들었고 이 분이 앞에서 언급한 <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책을 펴낸 분이라는 것이 믿음이 갔다. 꼭지마다 박재원이라는 역자가 해설을 붙여가는 형식이 새롭기도 했는데, 이따금 지나치거나 억지로 확대해석해 해설을 하는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해설가의 시각이 주로 핀란드 교사와 한국 교사 간의 비교로 몰아가며 교사들의 의식변화를 강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도 인정했듯 핀란드 교실의 변화는 교사의 의식의 변화에서 비롯했지만, 핀란드 교육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사의 의식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핀란드 교육정책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듯이 선결해야 할 우리 교육의 대안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난한 정치적 사회적 과정과 비능률적이고 당파적이기까지 한 우리 관료들의 의식을 바꾸는데 먼저 있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은 어쩌면 지금 준비가 돼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전국 방방 곡곡에서 분투하고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교사를 그는 모르는 듯 했다. 그도 그부분을 일정 인정했지만, 교사 외 적인 사회적 합의와 제도의 변화라는 것을 너무도 소홀히 한 점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자 오류였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이 책에 담긴 핀란드 교사들의 교육철학은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깊이 있고 가슴에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수학교사'라는 말을 읽었을 때는 프랑스에 갔을 때 그곳 교사들에게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렇듯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가지 아쉽고 부족한 것에 비해 광고 덕인지 핀란드에 대한 관심때문인지 많이 팔려나가는 이 책을 이미 핀란드 교육관련 서적이 있다면 한 번쯤은 빌려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대전 모임 선생님들과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책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을 알아보자 선택한 책이었다. 지난 여름방학 때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에 글쓰기 분과에 초대했던 분이기도 하고 평이 그리 나쁘지는 않아 함께 읽어보면서 공부해 보자 했다.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실천해 온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한 책이었다. 교실 속 실천이 아닌 방과후나 논술학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선생님의 실천이 때로는 우리 공교육 교실 실천과 맞지 않거나 그분의 전략이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것이 있고, 이론적용도 단순한 면이 있어 아쉽고 부족해 보이는 면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실천을 정리하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책이다. 어쨌거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재밌는 국어수업을 위해서 교사들의 책꽂이에 꼽혀도 될 책임에는 틀림없다.
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역사학자이다. 그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선뜻 손을 뻗은 책이다. 특히 이 책을 집필한 도날도 마세도라는 사람이 흥미롭다. 내가 좋아하는 파울로 프레이리와 함께 일하며 진보교육에 앞장을 섰던 사람이어서 이 책은 내게 더 마음이 끌렸다. 미국의 역사를 통해 진실을 알리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미국의 교육현실을 하워드 진은 통렬히 비판한다. 마치 우리의 역사를 읽는 듯한 미국의 역사와 미국의 교육현실을 들여다 보면 정말이지 희망을 찾을 수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하워드 진은 역사의 진보에 대해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평범한 흑인소녀, 이름없는 퇴역군인, 주변의 이웃과 발랄한 젊은이들이 역사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들 속에서 역사가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을 경험으로 가지게 됐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보수우익단체들이 역사교과서와 사회교과서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른채 입시에 매몰돼 가고 있다. 역사가 누구의 것이며 교육이 누구를 위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교사의 처지를 아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 나를 잠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너무 우울해 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 표지 색깔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