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2년 교사일기

이미 나는 정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돕선생 2012. 3. 7. 21:39

오늘도 서연이는 나를 반갑게 맞이 해주지 않는다. 인사 좀 하라 했더니 오늘 아침 기분이 좋지 않으니 어제와 다르게 싸늘하다. 잠이 덜 깼나 싶기도 하고 멍한 것이 아무튼 오늘 아침 서연이 인사 받기는 애당초 글렀다. 옛이야기로 시작한 아침. 이어서 아이들과 노래를 함께 불러보았다. 지난 번 가르쳐 주었던 '딱지 따먹기'에 이어 '우리집 강아지'를 가르쳐 주었다. 의외로 이 곡을 더 좋아한다. 그때 서연이는 사물함을 뒤적거렸다. 노래 안 부르고 사물함 쪽으로 왜 갔냐 물어봤지만, 대답도 안 한다. 쩝쩝 입맛만 다신 나는 아이들이 신나게 부르도록 음악을 틀어놓고는 화장실을 잠시 다녀왔다. 잠시 뒤,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상에 서연이가 노란 색종이를 펴 놓고 칠판에 적어놓은 '우리집 강아지'노래 가사를 받아 적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반갑던지.

 

"야~ 서연이는 색종이에다 노래 가사를 적고 있네. 다른 친구들은 생각도 안 한 일을 하고 있어."

 

나를 기뻐 다른 아이들 들으라고 아니 서연이 들으라고 마구 칭찬을 해댔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썰렁. 열심히 적고만 있는 서연이 얼굴표정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 그래도 속으로는 이제 조금씩 서연이가 나와 지낼 준비를 하나씩 하는 것 같아 기분은 무척 좋았다. 노래로 신나게 연 아침. 소리라는 주제로 이번 주를 이어가는 교과통합의 과정으로 국어 읽기 교과 '개구리 한솥밥'으로 시작을 했다. 마침 구해 둔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 한 솥밥> 원작을 읽어 주었다. 교과서에 담긴 텍스트는 원작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문학작품의 참 맛을 담아내지 못했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들도 원작을 읽어주니 반응이 뜨겁다. 백석의 동화시를 오랜만에 다시 아이들과 읽게 되니 감회도 새로웠다. 이어서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영 맛이 없다. 그냥 대충 넘기고는 '개구리 한 솥밥'에서 느낀 점을 나누고 재미있는 말과 되풀이 되는 말, 흉내내는 말, 그것이 소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이야기 했다. 오늘 첫 수업. 어제까지도 꼼수부리며 울기까지 했던 현준이가 적어오 오늘은 조금 달랐다. 책을 읽어주어서 그런지 훨씬 집중도 하고 답도 멋드러지게 한다. 어찌나 집중을 했던지, 뒤에 아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에 머리를 갖다대는 바람에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해야 할 정도였다. 이 역시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루 하루 다른 어린 아이들과 사는 게 때로는 피곤하지만,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때마다 힘이 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슬기로운 생활 3단원 '소리' 관련 단원을 시작했다. 즐거운 생활과 겹쳐 있어 이미 다룬 내용도 있지만 복습도 하고 악기도 직접 가져와 실제로 손을 대고 치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내가 그만 실수를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악기를 손을 대고 치다보면 비슷한 느낌이 들 수 있을 거예요.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기다릴 게요."

 

악기를 충분히 다룬 아이들을 제자리에 앉히고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랬더니 다섯 명 중에 두 명이 손을 든다.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해 보이는 시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무엇이냐 물었더니

 

'울리는 게 비슷했어요. 악기에 손을 대면서 치면 모두 울려요."

"맞아요. 시현이가 정확히 맞췄어요."

"소리는 울림, 어려운 말로 진동이 있어야 날 수 있어요. 큰 울림은 큰 소리, 작은 울림은 작은 소리."

 

아이들도 저마다 진동을 느꼈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수업을 다 마치고 나서 문득 드는 생각이 나도 정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준비한 목표대로 아이들을 이끌고 가야한다는 마음이 앞선 탓에 정답을 말해버린 한 아이의 말에 동요돼 다른 아이들의 반응은 듣지도 않았던 거였다. 후회가 됐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식의 수업을 하지 말자 재차 다짐하고 반성을 했건만. 나머지 아이들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아이들의 느낌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했어야 했는데, 내가 뭔 짓을 했는지 정말 오늘 후회막심이었다.

 

오늘 점심 시간에 아이들 일기와 수학익힘책 숙제를 봤더니 역시나 현준이와 서연이는 그냥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남기기로 하고 알림장을 적게 하다 장난을 치고 싶어 마지막에는 '선생님 사랑하기'를 적도록 했다. 이게 뭐냐고 한 소리 하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오늘 집에 가서 할 숙제는 우리 선생님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거야."

 

여기서부터 일이 하나 벌어진다. 다른 곳에서 다 써먹어봐서 아이들도 장난으로 알고 웃어넘기고는 했는데, 서연이는 완강히 거부한다. 그러고는 내가 안 보이게 가리고는 '아빠 사랑하기'로 바꿔 놓는다. 섭섭한 마음에 나는 멈추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당연히 아빠는 사랑해야지. 그런데 아빠 다음으로 선생님 사랑해주면 안 돼?"

 

하니 아이는 찌푸린 얼굴로 정말 안 된단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싫다는 말을 무심코 뱉어 버리는 게 아닌다. 첫 만남 부터 저에게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정말 너무한다 싶어 소심한 나는 또 물었다.

 

"정말 선생님 싫어. 다른 친구들은 다 선생님 좋아하는데, 너만 왜 나 싫어 해."

했더니 이젠

"전학 갈 거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이내 울어버린다. 이틀째 또 나는 아이를 울려 버렸다. 예상 밖의 행동을 보이는 서연이 때문에 순간 나는 당황했다.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나머지 공부시간 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조용히 내 옆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선생님 싫어?"

그러니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한 마디 더 헀다.

"선생님이 첫날부터 너한테 엄청 신경쓰고 애쓰고 있는데 섭섭하네. 그럼, 이제부터 너한테 관심 보이지 말까?"

"응, 나 혼자 공부할 거야."

"혼자 공부하니까 이렇게 힘들지. 자꾸 틀리잖아. 정말 선생님이 안 도와줘도 돼?"

그러니 또 가만히 있는다.

"그렇게 투정부리지 말고 선생님 싫어 해도 되니까.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 열심히 해봐.

선생님이 보기에 서연이는 선생님이 조금만 도와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꾸 틀리고 하니까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아. 어때? 나하고 공부할까?"

마지못해서 일까? 아이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분을 푸는 모습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그래도 선생님 싫지는 않지?"

집요한 심문을 통해 나는 긍정의 답을 얻어냈다. 그리고 서연이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넸다.

"이 선물은 너랑 나랑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야.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하고는 손가락 도장까지 찍으며 새로운 관계의 길을 열어 보았다.

 

사실 나는 이 아이가 아빠에게 집착하는 까닭을 교원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이런 공개된 곳에 세세하게 지금 밝힐 수는 없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빠 홀로 서연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서연이는 아빠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다. 나머지 네 명 밖에 되지 않은 친구들도 서연이를 싫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데 교사에 대한 믿음이 쉽게 생길 리 만무하다. 아무튼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로

서연이와 관계를 하나 더 만들어 보았다. 내일부터는 인사도 하자 했으니 기다려 보려 한다. 서연이를 올 해

내 스승으로 삼았으니 톡톡히 값은 치러야 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