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2013 연구년의 삶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 1차 보고서_진안장승초

갈돕선생 2013. 4. 3. 09:59

 

개인보고서 1차

(2013. 3. 29. 6학년 4교시 국어_읽기_2.정보와 이해))

 

 

어디서, 언젠가 한 번쯤 만났을 아이

 

논산 반곡초 | 박진환

 

맑은 봄날, 3월 29일. 아침 일찍 서둘러 찾아간 진안 장승초. 이곳은 지난해 새로운 학교로 언론에 주목을 한껏 받았다는 우리 모임선생님 윤일호선생님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서근원교수님의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과정에 오늘부터 진행되기 때문이다. 윤일호선생님의 도움과 서근원교수님의 흔쾌한 승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올해 내가 연구년에 들어간 탓이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운이 좋고 그만큼 기대도 크다.

낯선 객을 반갑게 맞이 해주신 학교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침 장승초를 찾은 전주교대 박승배교수님의 친절한 안내로 학교를 잠시 둘러 볼 수 있었다. 폐교위기의 학교를 되살려 낸 이후, 학교 건물의 신축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신축 건물에 4개 학년만 들어갈 수 있었고 꼼꼼하게 마감이 되지 않아 아쉬운 점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교실마다 다락방이 있고 남한산초등학교처럼 운동장쪽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교실문이 있는 독특한 설계가 눈에 띄었다.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아이들을 배려하는 설계가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공립학교에서 가능했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긍정적으로 보았다. 차디 찬 바닥이 아니라 바닥 난방이 되는 교실. 양쪽으로 트여있고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래서 아이들이 수업이든 쉬는 시간이든 늘 놀 준비가 돼 있는 여건을 물리적으로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이미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서근원교수님을 뒤늦게 발견한 교사들은 서둘러 6학년 교실로 들어섰다.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한 나는 서근원교수님의 책 《나를 비운 그 자리에 아이들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수업을, 아니 아이를 지켜 보았다. 학교선생님들에게 혹 방해나 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멀찍이 뒤에 앉아 ‘오늘은 참관하는데 목적을 두자’ 생각했다. 서근원교수님은 카메라로 벼리아이 바로 뒤와 옆에서 촬영을 했고 참관교사들은 벼리아이 근처에서 벌어지는 담화와 교사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기록해 나갔다.

그때 서근원교수님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선생님들이 기록하는 걸 보세요.”하셨다. 그제야 나는 오늘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서근원교수님이 오랫동안 해온 ‘아이들 눈으로 수업보기’ 연수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나로서는 교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하는 기록에 더 집중을 해야 했던 것이다. 염치를 무릅쓰고 나는 조금 더 아이들과 기록하는 선생님들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교사들 손에는 책에서 본 대로 ‘교사, 벼리아이, 주변 친구들’로 구분 된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바쁘게 기록하는 선생님들의 눈과 귀는 온통 벼리 아이주변에 쏠려 있었다. 자기들만이 알 수 있는 글체로 빠르게 이어지는 기록을 보며 이 과정이 쉽지 않은 과정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더욱 긴장시켰던 것은 벼리아이의 말이었다. 어눌하고 작게 말하는 벼리아이의 말 습관 탓도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날은 벼리아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주변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벼리아이의 말을 치밀하게 기록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이어지는 주변친구들과 교사의 말까지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 높은 집중력과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시작부터 알 수 없는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난 뒤 촬영을 했던 모둠의 네 아이와 서근원교수님은 인터뷰를 시작했다. 윤일호선생님은 이 과정이 나중에 토론을 할 때 매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기록하는데 바빴던 교사들에게 이러한 인터뷰는 아이를 이해하는 토론을 진행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 아이의 행동과 말에 대한 큰 정보를 얻는다는 점에서 수업 뒤 이어지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10여분동안 이어진 인터뷰를 끝내고 카메라를 정리하고 나오는 교수님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건네자 “수고는 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하신다.

 

공개수업 뒤 조금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 마침내 수업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 바쁜 업무에 정신없이 들어선 교사들이 간단히 자기소개와 이 과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를 설명했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무렵. 하교 시간이 됐다며 다시 대화시간이 중단이 됐다. 10분이면 될 거라는 말과 달리 오후 5시를 조금 넘겨서야 겨우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어김없이 퇴근 시간이후, 그것도 금요일. 쉬고 싶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시간에 장승초교사들은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수업을 더 잘 준비하기 위해 성장하는 교사로 살고 싶어 모든 욕망들을 내려놓는 듯 해 보였다.

6학년 수업교사는 컴퓨터로 동료교사들의 기록을 정리를 하는 역할을, 서근원교수님이 진행을 맡았다. 먼저 교사들이 각자 쓴 기록을 검토하고 정리하고 빈틈을 메꾸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의 소제목은 ‘무엇을 하였을까?’였다. 생각보다 놓친 기록들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추려낼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집중해서 볼 부분을 뽑아냈다. 벼리아이 소연이가 자주 내뱉었던 말에 우리는 주목했다. 다소 명령조에 가깝지만, 어떻게 보면 제안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던 ‘~로 해’를 주목할 부분으로 결정하고 이내 벼리아이 소연이를 이해해 보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과 아이의 말을 쓴 기록들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교사, 벼리아이, 친구로 칸을 구분하고 아래로 대화들을 이어가며 정리를 해 보았다. 겨우 겨우 맞춰 갔지만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교수님이 자신이 직접 찍은 동영상으로 살펴볼 장면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제야 비로소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됐다. 이쯤해서 교수님의 지적이 여지없이 이어졌다.

 

“영상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요. 다음에 기록을 할 때는 좀 더 집중을 해서 치밀하게 기록이 돼야 합니다.”

 

이 수업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각자의 위치, 그들의 관점에서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데 목적을 둔 수업으로 대체 텍스트로 로알드 달의 《멍청씨 이야기》가 주어졌다. 4명이 한 모둠이 된 8명의 아이들은 이 책을 각자 돌아가며 읽으며 내용을 파악하고 모둠원이 결정한 인물의 눈으로 각자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수업이었다. 교사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이어졌고 아이들은 각자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 했다. 그러나 그다지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이 지점에서 벼리아이 소연이이가 6학년 담임교사의 말을 빌자면, 이전과 다른 적극적인 참여와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벼리아이 소연이의 반응과 개입, 참여는 독특했다. 툭툭 내던지 듯 말하는 화법과 자신이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갈등하며 불쾌한 표정과 말들이 교사들의 기록과 다시 복기한 영상에서 확인이 됐다. 이 지점에서 나는 크게 놀랐다. 아이들의 수업 속 대화에서 이런 점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늘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상태와 반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나름 자부하는 나였지만, 그동안 무수히 놓쳤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성찰과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매우 짧고 강렬했다.

덩치가 크고 살찌고 말이 어눌한 외모와 친근감이 떨어지는 화법을 가진 소연이. 평소에 아이들로부터 친구로 대접받지 못하고 늘 어정쩡한 경계에서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학교생활을 해온 벼리아이 소연이. 이 아이에게 당일 수업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까닭모를 촬영과 교사들이 자신들의 수업과정을 주목하는 상황에서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참여한 모둠에게 모두 공평한 발언의 기회와 참여가 보장된 공간이었다. 교수님의 표현을 빌자면, 이곳은 벼리아이 소연이에게 해방의 공간이었다.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수업에서 소연이는 그동안 늘 외톨이였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확인 작업을 우리는 ‘왜 하였을까?’와 ‘이 행동 혹은 수업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라는 소제목을 달고 한참을 진행했다.

 

그렇다면 ‘벼리아이 소연이에게 교사는 어떤 수업을 제공해야 할까?’ 시간과 피곤에 쫓겨 이 작업은 그다지 원활하지 못했다. 시간을 두고 인물의 관점으로 직접 이야기도 해 보고 주변 아이들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것에 신경을 쓰며 새롭게 수업을 다시 기획해 보라는 조언을 담임교사에게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작업은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 작업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왜 수업을 해야 하는지, 왜 아이들의 눈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작업이기도 해 시간과 몸만 허락한다면 이 작업까지도 충분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 해 보는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 그리고 ‘대화하기’가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지만, 이 작업이 우리 교사들에게 매우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이해하지도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수업 기술과 다양한 동기유발 자료에 집중하는 우리네 수업공개 풍토와 교사문화, 학교문화를 바꿔내기 위해서도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었다. 다른 이의 눈으로 우리 교육을 해석하고 적용하기에 앞서 우리 곁에서 함께 하는 아이를 이해하는 눈을 먼저 키우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는 하루였다.

 

교사

벼리아이

친구

“누구의 관점으로 바꿔 쓸까요?”

“누구를 바꿔야 재미있을까?”

 

 

 

 

“멍청씨 부인?”

 

·“멍청씨로 해.”

 

 

 

“멍청씨.”

 

 

“우리가 여기를 어떻게 바꿀까?”

 

(머리를 오른손으로 긁적임.)

 

 

“야. 그러면 스파게티 쫄면으로 해.”

 

 

“짜장면. 짜장면. 짜장면. 짜장면.”

 

 

 

“진흙 짜장면.”

 

“진흙 짜장면으로 해.”

 

“멍청씨가 생각하는 대로 적어봐.”

 

 

 

 

“뭐라 할까?”(하린)

“멍청씨는 멍청씨 부인을 뭐라고 부를까?”

 

 

 

 

“멍청씨 부인을 뭐라고 적을까?”(하린)

“골치덩어리”(하린)

 

“짐덩어리”

 

 

 

“어?”(하린)

 

“짐덩어리”

 

 

 

“짐덩어리”(하린)

 

 

“뭘로 할까?”(하린)

 

“짐덩어리로 해.”

 

 

 

“짐덩어리로 할까?(하린)”

 

 

“돼지덩어리”(하린)

 

 

“못난이로 할까?”(하린)

 

“니 맘대로 해”

“짐덩어리로 하던가”

 

 

 

“못난 할망구”(어진)

 

 

“아! 그래도 되겠다.”(하린)

 

“그래도 되겠다.”

 

 

 

“못난 할망구?”(하린)

 

 

(하린이가 적고 있음)

 

“밑에다 써야지.”

(하린이에게)

 

 

“썰면 돼.(써는 손짓하며)”

 

 

 

(하린이가 쓰고 있음.)

 

“나머지 돌아가면서 쓰자.”

 

 

“나 읽을래.”

 

 

“써. 써.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