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읽은 책 들려주기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_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갈돕선생 2013. 5. 22. 14:47

 

 

 

 

오래 전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소설이 화제가 됐던 기억이 어렴풋하고 '더 리더'라는 영화가 뛰어난 작품성과 연기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풍문을 주워 들은 적은 있으나 나는 이 작품들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학교 속의 문맹자들>이라는 책을 펴내 반향을 일으킨 청주교대 엄훈 교수의 새로운 글 '사회로 간 문맹자'라는 글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나는 이 책과 영화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 까닭은 이책의 여주인공 한나 역시 문맹자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치의 편에서 일을 하게 된 정황, 말단직에서 사무직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하여 이제는 사랑하게된 어린 15살 미하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한나 자신이 문맹에 대한 철저한 수치심과  이런 자신을 드러내기 싫은 지독한 자존심때문이었다.

 

소설의 이러한 모티브와 맥락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강한 힘이 돼 주었다. 이 책은 대하소설은 아니지만 단 한 권의 소설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독자를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더구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법을 공부했던 학자였던 탓에 상황을 두고 법적인 철학과 논리로 남자주인공 미하엘의 심리를 풀어내는 과정에 매우 돋보이는 휴머니즘적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15살의 소년 미하엘과 36살 중년의 여인 한나의 격렬한 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동안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들의 사랑행각에 관한 호기심과 책읽어주기, 사랑하기, 누워있기라는 일종의 의식화된 그들의 일상에서 혼란에 빠진 상태로 글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해하지 못할 사랑은 사춘기 소년의 몸에 대한 욕망과 이 아이와 전혀 다른 환경과 시대를 겪어 온 외롭고 자존감이 없는 한 여인의 외로움에 대한 강조로 이해하지 못할 독자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려 한다. 이러한 사건 전개는 물론 독일 사회에서도 에로티시즘과 도덕성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하니 동양적인 정서를 가진 일반적인 우리네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충격도 적지 않은게 사실일 터.

 

 

어쨌든 불완전하고 불안해 보이는 이들의 사랑에서 먼저 떠나는 쪽은 한나였다. 전차 차장으로 일하는 한나의 근무성적이 좋아 사무직으로 옮기자는 회사의 제안에서 문맹인 한나는 겁을 먹고 서둘러 미하엘 곁을 떠나게 되고 만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무척 혼란스러웠던 미하엘은 어느덧 법대생이 되었고 세미나 차원의 현장학습 공간인 법원에서 뜻밖에도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한나를 다시 만나면서 이 소설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한나는 나치의 전범에 공모한 죄를 안고 법정에 서 피고였다. 무언가 한나에게 빚을 진 느낌을 가졌던 미하엘은 재판과정에서 한나가 보이는 이상한 행동, 즉 감정적인 대응으로 당시 사실을 말하고는 있지만 문맹임에도 당시 교회에 갇힌 사람들을 감시하는 감시원으로 일했던 그녀가 불이 난 상황에서도 그들을 가둔 문을 열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논리적으로 상황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더욱이 쓸 줄도 모르는 한나임에도 보고서를 만든 사람으로 지목을 당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서 엄훈교수가 말하는 문맹자들의 하위문화, 즉 자신들의 약점을 끝내 감추려하는 문화를 읽어낼 수 있었다. 종신형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자신이 문맹자임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한나의 심리를 이해하기란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소설은 물론 문맹을 이야기 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한나를 문맹자라고 정해 놓아 나치 전범들에 대해 가지는 일반인들의 배반적인 의식을 통렬히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싶었다. 나치 전범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일반인들이 결국 그 손가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서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이 이 책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이와 같은 작가의 생각은 다음 같은 글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사실 한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했지만 한나에게 향한 손가락질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_본문에서


이 책의 서평과 역자의 에릴로그에서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면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 서로에 대한 이해를 이 한 권의 책에 함께 그려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가혹하리만치 나치 전범에 칼을 드리대는 전쟁세대들의 모습, 그들은 이후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어내면서 그들 자신을 전후세대에 대한 명분이 되나 전후세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또다른 면모를 확인하고 갈등을 빚는다는 독일만의 역사를 이 책에서 단번에 읽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같은 분단 국가인 우리들의 모습을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마지막 이야기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진 미하엘이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한나에게 18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히 책을 읽거 카세트에 담아 우편을 통해 교도소로 보내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한나는 결국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이겨내며 문맹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카세트에 담긴 책을 들은 소감을 짧은 글로 써서 미하엘에게 보낸다. 한편으로 반갑고 대견해 보이는 한나에게 미하엘은 끝내 답장을 하지 않는다. 결국 18년이 지난 어느 날 한나는 사면으로 풀려나게 되고 교도소장의 부탁으로 미하엘은 한나의 교도소 밖 생활을 책임지려 한다. 교도서에서 나오기 전에 만난 한나와 미하엘. 그러나 그들의 대화에서 사랑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미하엘이 한나의 출소날에 교도소를 찾았을 때에는 그녀는 목을 매 자살을 한 상태였다. 그녀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한나가 미하엘로부터 사랑을 느끼지 못한 감정에서 좌절을 느끼는 모습을 비춰진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책에서 읽어 내기란 힘들었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은 다양하다. 다양한 평 중에서도  단 한 권의 책에서 인간의 사랑과 시대의 아픔, 세대간의 갈등, 인간의 본질, 문맹의 하위문화까지 다양한 삶의 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걸작이고 명작이었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바로 영화로 만나 보았다. 몇 가지 아쉬운 면도 보였지만 책의 내용과 의도를 상당부분 잘 반영한 영화에서 또 다른 해석을 읽어낼 수 있었다. 특히 여주인공 한나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여주연상을 받을만한 연기였다. 책 속의 한나가 살아나온 듯한 연기를 통해 책과 영화의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배우였다.  

 

절판이 되었던 이 책은 다행히 3월 말경에 출판사를 바꿔 시공사에서 재춮간이 됐다. 이제는 양장본으로 제작됐는데, 문득 이 책을 다시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괜찮은 소설, 그것도 외국소설을 만나게 돼 기분이 좋았다. 명작을 오랜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만나 뒷북치는 서평을 쓰는 것 같아 머쓱하다. 그래서 이만 줄여야 할 듯.^^  

 

아름다우면서도 불온한, 그리고 마침내 도덕적으로 철저히 파괴하는 소설.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교묘하다. 냉정하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면서 삼십 대 여성과 십 대 소년의 충격적 사랑을 묘사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아한 스타일과 문학적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_타임

성과 사랑, 책 읽기, 그리고 전후 독일의 수치심에 관한 강렬한 이야기._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강렬함, 철학적인 우아함, 도덕적 관념…… 슐링크는 놀랍도록 솔직하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_뉴욕타임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이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독일 소설._슈피겔

이 소설은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다._르 몽드

매혹적이다…… 슐링크가 가장 잘한 것, 이 소설을 가장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든 것은, 바로 매우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짧은 순간들이다._엘르
섬뜩한 사랑에 대한 숨 막히는 소설. 한번 손에 잡으면 절대 놓을 수 없다._아벤트 차이퉁

감동적이고 도발적이며 궁극적으로 희망적인…… 이 소설은 국경을 초월해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_ 뉴욕 타임스 북리뷰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 사랑과 공포, 자비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짧은 이야기._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매혹적인 솔직함으로 가득한 소설. 이런 작품이 쓰인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_디 벨트보헤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세상의 빛을 본 천재 작가. 이 ‘슬픈 이야기’는 슐링크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다._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현대 독일 문학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_타게스슈피겔

 

작은 러브 스토리 안에 시대의 고민을 모두 담아낸 소설. - 이인화(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에 견줄 만한 도발적 감성으로 시작해, 전후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층위까지 도전하는 대단한 소설……. 이 작품은 우리 인생의 숙제이자 수수께끼인 ‘삶-사랑’을 풀어낼 영감을 준다. - 유지나(영화평론가)


 

장편소설의 규범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 신형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