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바이칼여행기] 1부_7월 30일_러시아로 출발하기 전 이야기
올해 연구년제 교사로 결정이 되던 날. 최은희선생님의 축하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러고는 나보고 8월에 바이칼 여행에 함께 가자고 했다. 기쁜 마음에 덜컥 그러고마 했는데, 벌써 내일이 8월 1일. 러시아로 떠나는 날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다른 일들 때문에 러시아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누가 러시아로 바이칼로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느냐고 할 때도 나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다음에 생각하지 하고 말이다. 물론, 두 달 전부터 조금씩 준비는 했다. 다른 준비가 아니라 러시아와 바이칼 관련 책을 구해보는 일이었다. 책을 사 놓고도 한 동안 보지 않았다. 역시 다른 일 때문에.
그렇게 7월을 맞아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바이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전부터 날아오던 러시아행 관련 일정과 자료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낯선 '....스키'가 들어가는 용어들.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낯선 지명들 때문에 무언가 해보려는 마음이 시작도 하기 전에 팍 사그러 들었다. 그래도 알아야 보이고 보일 때 감흥은 분명 다를 거라는 생각 때문에 차근 차근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찾을 러시아에 관계된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처음 읽는 러시아 역사>였다.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통 역사가 에이브러햄 애셔의 저작을 번역한 책인데, 번역도 깔끔하고 내용도 단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경쾌했다. 다만, 미국의 보수적인 역사학자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점이 아쉬울 뿐. 이 점만 감안 해 읽는다면 괜찮은 책이었다.
방대한 영토만큼이나 그 뿌리를 알기를 힘든 러시아의 역사는 복잡하기만 했다. 키예프공국에서 출발해 몽골제국의 오랜 지배를 벗어나 모스크바 공국이 생기기까지 지배자의 영토확장 욕구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반 4세(이반 뇌제)의 공포통치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마침내 로마노프 왕조의 출현으로 16세기~17세기 러시아는 표트르 1세에 이르러 어느덧 국가의 모양새를 갖춰간다.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새로운 러시아를 꿈꾸었던 표트르대제에서부터 차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한때 레딘그라드라 불리던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하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독자의 흥미를 돋우었다. 그렇게 쇠퇴와 부흥을 거듭하는 18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계몽주의가 한껏 유행하던 시절에도 여전이 봉건농노제를 유지하던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19세의 개혁과 반개혁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하던 러시아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끝으로 혁명의 시대로 돌입한다. 1905년과 1917년의 혁명에서 레닌의 등장, 스탈린의 집권에서 이제 러시아는 소련연방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후로 전개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까지 러시아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러시아 역사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지배자들의 이름바꾸기가 아닌 그들의 집권과 통치로 무수히 죽어간 민중들이었다. 이름 모를 약하디 약한 민중들은 지배자들의 그릇된 야욕과 계급의식, 정치에 예속된 종교로 수많은 고통과 죽음에 직면해야 했다. 어디 이것이 그들만의 이야기였을까. 이런 와중에서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몸을 바쳤던 수많은 러시아의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진정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들만 가득해졌다.
이런 역사를 직접 그들의 땅에 가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새삼 뜨겁게 다가왔다. 러시아의 역사를 짧게나마 독파를 한 뒤, 만난 책은 90여쪽의 짧은 문고 도서 <상트 페테르부르크_유럽을 향한 창>(방일권)이었다. 짧은 책이지만 러시아 전문가에게 에세이 형식으로 듣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방일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만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마치 눈 앞에 펼쳐지듯 뚜렷해 보이기만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명과 유물들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앞서 이곳을 찾았던 민영환을 비롯한 우리 선조들의 기록을 찾아 확인하는 형식의 글에서 러시아의 역사를 새로운 측면에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찾을 세계 3대 에르미타쥐 박물관과 카잔성당, 피터대제의 여름궁전과 네바강 이야기는 순간 내 가슴을 뛰게 헸다. 그야말로 표트르 대제의 흔적을 따라갈 러시아 여행 첫날과 둘째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빠르게 읽어나간 터라 책을 덮으니 기억이 감감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여객기 안에서 차근차근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8월 1일 밤 늦게 도착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가 기대된다. 8월 초까지가 백야가 이어진다니 그야말로 행운이다.
다음으로 만난 책은 <모스크바 판타지>라는 책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있다 우연한 기회에 모스크바행을 결정해 이제는 그곳이 삶터가 돼버린 한 여인의 발랄한 기록이다. 모스크바에서 1년 넘게 살며 발품을 팔아 찾은 모스크바 곳곳의 풍경이 사진과 더불어 흥미롭게 전개된 책이다. 곳곳에 한 때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들이 묻어나지만 이를 조금씩 극복해 가며 모스크바인(모스코비치)들을 만나며 느낀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차로 이동할 모스크바. 그곳에서 내가 만날 트레챠콥스키 미술관과 노보데비치 수도원, 모스크바 국립대학이 눈에 띈다. 더욱이 크렘린 궁전을 관람할 붉은 광장에서는 더욱 몰입하게 된다. 이름만 들었던 성바실리 사원과 굼백화점도 눈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전통시장이 여행 코스에 있지 않아 아쉬울 따름. 붉은 광장에 들어서서 레인의 묘를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를 바랄 뿐이다. 러시아 혁명의 핵심인 붉은(러시아에서 붉은은 아름답다는 뜻) 광장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러시아를 떠나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이르쿠츠크다. 이르쿠추크는 러시아에서 바이칼을 찾아갈 길목에 있는 큰 도시이다. 특히 앙가라 강을 기대해 본다. 앙가라 강은 프랑스의 세느강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다고 한다. 거리에는 파리지엔느보다 훨씬 아름다운 슬라브 여인들이 넘쳐난다니 눈이 호강할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도착하자마자 키로바 광장 주의를 둘러 보고 시베리아 유배문학의 흔적을 둘러볼 계획이다. 이르쿠츠크는 제정러시아시절 아름다운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제까브리스트라 불리는 이른바 반역자들과 그들의 일부 아내들이 숨죽여 살던 곳.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소재가 되었고 '사람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를 쓴 푸슈킨의 시도 이시기의 일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역사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다음날 아마도 우리 일행은 이르쿠츠크역으로 가서 환바이칼 철도를 타고 바이칼을 둘러 볼 것 같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지구의 푸른 눈 바이칼>의 저자이자 이번 우리 일행의 여행계획을 짜준 박대일씨의 안내가 기대가 되는 여행길일 것 같다. 환바이칼 철도를 타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바이칼에 사는 주민들과 만나고 자연을 만나는 일이 마치 꿈처럼 그려진다. 박대일씨의 책에 담긴 길대로 움직이며 만나게 될 또다른 러시아 사람들에게서 나는 또 어떤 느낌을 받을지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이르쿠츠크에서 이틀을 머문 뒤, 우리 일행은 바이칼에서 가장 큰 섬(거제도의 두배 크기)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만날 너른 평원과 자작나무, 부르한 바위, 밤에 호수 인근에 누워 별이 가득하고 은하수가 볼일 하늘을 바라볼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책과 일정표를 함께 보면 알혼섬 일대와 바이칼 호의 전반을 둘러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혼섬 남부는 4륜차에 19명 일행이 나눠타고 움직여야 하는 험한 길이라 한다. 그곳에 머물며 먹을 현지식도 궁금하다. 사냥꾼식으로 중식을 하기도 하고 후지르라는 마을도 찾아가 지내본다 하니 그야말로 예능프로 정글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시베리아 전통공연과 샤먼바위인 브르한 바위의 전설, 바이칼호 유람선, 그곳에서 많이 잡혀 주요 음식이라는 훈제 오믈과 보드카는 이번 러시아여행의 또 다른 재미일 것 같다. 장장 11박 13일의 긴 여행이다. 책으로 먼저 만난 러시아지만 조금 일찍 그들을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에 벌써 내일로 다가온 여행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허나 여행이 꼭 책대로만 이어지지 않을 터. 많은 부분에서 유럽여행과 다른 불편함과 불친절,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거론되짐나, 그래도 쉽게 찾지 못할 러시아를 찾을 기회를 만나게 된 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반갑다.
모쪼록 이번 여행에서 러시아의 영토만큼이나 크고 너른 마음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