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바이칼여행기] 9부_8월 8일_마침내 만나게 된 알혼섬!
8월 9일 새벽 1시 27분. 나는 잔뜩 술에 취해 있다. 오늘 일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 그래도 써야하겠다 싶어 일행의 첫 뒤풀이 끝에 숙소에 들어와 이 글을 쓴다. 횡설수설 글이 거칠어도 읽으시는 분들은 내 상태를 감안해 주시길.
아침 9시 10분, 우리 일행은 마침내 우리가 그리던 알혼섬으로 출발을 했다. 이르쿠츠크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벗어나자 너른 평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말로만 듣던 만주 평원을 보는 듯한 이르쿠츠크의 평원을 보며 나는 헤드폰을 끼고 모처럼 음악을 들었다.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 보았다. 오늘도 역시 날씨는 흐리다. 아침 기온 11도 낮 기온 23도라고 하니. 오늘도 선선할 듯. 오늘 한국의 날씨는 더위 절정이라 하니 정말 우리 일행은 피서를 온 셈이다. 1시간이 지났을까? 평원이 줄기차게 이어지면서 음악을 듣던 나는 어느새 짐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자 가이드가 점심을 먹으러 휴게소에 쉬자 한다. 휴게소에 들어서자 먼저 식사하는 장소에 와 계시던 고혜경선생님이 막들어오던 내게 정말 이런 걸 너른 평원이라 할 수 있지 않겠냐 한다. 나는 그 말씀에 동의를 하면서 아쉽게도 순간 잠에 빠져 들었다 했다. 휴게소 앞에는 너른 평원을 지배하는 소들이 우후숙준 늘어서서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고 누구도 관리를 하지 않는 듯한 일상이 부럽기만 하다. 이르쿠츠크에서 벗어날 무렵 수 백 마리의 소 떼가 버스 앞을 가로막고 지나가는 진풍경이 벌어질 때부터 이곳의 삶과 일상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었지만, 바이칼 알혼섬으로 가는 오늘은 우리의 먼 과거로 아주 먼 과거로 가는 길인 것만 같았다.
점심을 마친 우리 일행. 휴게소를 떠나자, 이내 꽃이 가득 핀 너른 또 다른 평원이 이어진다. 재치 있게도 우리 젊고 잘 생긴 가이드는 이곳에서 잠시 쉬겠다 한다. 사진 찍고 풍경을 즐기란다. 덧붙여 알혼섬을 찾는 이들 중에 사진작가 팀이 있었는데, 한 번은 그들이 한 번 더 찾아와 이곳만 찍고 간 적도 있다 한다. 그만큼 이 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평원까지 꽃으로 가득한 공간을 상상해 보라. 우리 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했다. 이제 다시 알혼섬을 향하여 출발을 했다. 그런데 나무와 꽃이 많던 너른 평원을 지나자 어느새 나무도 별로 없고 마치 사막과도 같은 지역을 지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마른 평원이자 삭막한 지역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비포장도로가 나오자 버스는 천천히 운행을 시작했다. 자기 차를 가지고 운행을 하는 현지인 운전자는 자신의 차를 보호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20분이면 지날 수 있는 거리를 40분 만에 겨우 지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천천히 운행한 덕분에 우리는 광활한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꽃과 사진놀이를 한창하던 일행은 다시 알혼섬을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가는 도중 비포장 도로를 지나야 했고 마르디 마른 평원을 보며 러시아의 또 다른 풍경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침내 알혼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부두에 도착했다. 조금은 쌀쌀하기까지 한 세찬 바람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온 그야말로 힐링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러시아, 독일, 중국, 프랑스, 미국 말까지 섞이는 많은 사람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이곳이 정말 세계인의 해방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두 언저리에서 바라본 저 멀리에 말로만 듣던 그 알혼섬이 보인다. 거대한 섬. 바이칼이 가지고 있는 30개의 섬 가운데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큰 섬이며, 해마다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 겨울에는 배로 건너던 강이 얼어 4륜차로 달릴 수 있다는 이곳. 알혼섬은 그렇게 휴양지가 돼 가고 있었다. 브랴트족이라는 알혼 원주민도 점점 자본의 맛을 알게 되고 농사나 고기를 잡던 그 옛날의 전통적인 삶에서 일종의 쇼를 보여주는 쇼윈도우 종족이 돼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과 바이칼 호를 아끼는 주민들의 사랑으로 크게 훼손되지 않고 이곳을 지켜 나가고 있다고 한다. 마침내 저 멀리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배가 우리를 태우러 오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알혼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한다는 저 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실어 나른다. 배가 부두에 들어온 지 20분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우리 일행은 배를 탈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알혼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10분이 지났을까? 우리는 서둘러 배에서 내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과거 소련에서 만들어 버린 4륜차 우아직을 찾아갔다. 12인승으로 보이는 두 대의 차에 우리가 가진 모든 짐을 싣고 사람도 탔다. 구식이지만 독특하고 흥미롭게 생긴 차였지만, 거친 오프로드를 아주 힘차게 달린다. 맨 땅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4륜차의 역동성을 느끼는 1시간 길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바이칼을 끼고 우리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아담한 정원과 텃밭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숙소였다. 2인 1실의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박대일사장의 조언을 이곳 주인장이 받아들여 꾸며 놓은 것인데, 6인 1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독특한 숙소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인장은 이곳의 이장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데, 한 때는 이곳의 주먹대장, 보스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는 마음을 잡고 살림을 잘하는 어여쁜 아내를 맞아 두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과 씻는 곳 모두 예전 그대로다. 화장실은 재래식임에도 거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씻는 곳은 샤워는 힘들지만, 간단히 씻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물을 담아 씻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이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라 하니 그들이 삶에 3박 4일 정도야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 피곤해 30분쯤 내 방에 들어와 눈을 붙였다. 바깥에서는 즐거움에 낮잠조차 거부한 일행들의 수다가 들린다. 나도 벌떡 일어나 그들과 합류했다. 그렇게 저녁식사도 하고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캠프파이어. 마른 자작나무에 불을 지펴 둥글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곳도 해가 밤 11시가 돼야 져서 대낮 같은 하늘 아래 캠프파이어를 하는 풍경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가이드는 이것을 더 즐기라 한다. 해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캠프파이어를. 그렇게 우리는 때론 진지하고 때론 흥겹고 재미난 얘기로 해질녘을 기다렸다. 조금씩 가져온 술과 안주, 가이드가 옆에서 숯불에 구워 제공하는 소세지와 돼지고기를 맛나게 즐기며 기어코 새벽 1시를 넘기고야 말았다. 이곳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처음 맞이하는 뒤풀이여서 쉽게 끝나기는 애당초 어려웠다. 이제 아침이 되면 바이칼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투어를 시작한다. 반갑다. 알혼. 그리고 고맙다. 알혼. 우리에게 휴식을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