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국외 연수 이야기

[러시아바이칼여행기] 10부_8월 9일_ 아~ 바이칼이여!

갈돕선생 2013. 8. 20. 00:08

"햇볕이 잘 드는 메마른 땅“이라는 알혼. 오늘은 진짜 알혼을 만나기 위한 첫 날이다. 어제 숙소까지 타고 왔던 소련제 4륜차 우아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부품조차 없는 차인데 성능은 군용으로 제작된 것이어서 웬만한 브랜드 4륜구동보다 힘이 더 좋다고 한다. 실제로 오늘 타보니 정말 대단한 차였다. 참고로 알혼은 전 구간이 비포장이다. 때로는 사막과 같은 모래땅을 때로는 깊숙이 패여 있는 산길을 달려야 하는 이곳에서 우아직은 꼭 필요한 교통수단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알혼은 류르깐스크. 우아직에서 내려 바라본 너른 바이칼호에 두 개의 섬이 떠 있는데 하나는 사자섬, 하나는 악어섬이라 불린다. 특히 악어섬은 정말 악어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놓은 섬이었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섬이다. 가이드가 섬의 특징이 잘 보이는 모습 쪽으로 안내를 했을 터. 일행 중 일부는 멀리 보이는 호변까지 내려간다. 떠날 시간이 돼 소리 높여 부르니 아무런 건물도 벽도 없는 공간 탓일까? 소리를 듣고 반응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도착한 곳은 뼤씨얀까. 소비에트 시절 강제 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죄수들은 작업장에서 일을 했는데 주로 오믈을 손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도 맛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오믈은 수출만 할 수 있는 특산품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이곳은 바이칼에서 많이 잡히는 오믈을 가공하는 수산물 가공 공장이었던 것이다. 책에 실린 박대일 사장의 표현처럼 양심수들을 가둬두기에는 이곳은 잔인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뼤씨얀카를 지나자 도무지 길이라 불릴 수 없는 지역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나무들 사이를 우아직은 우직하게 달려간다. 깊게 골이 패인 길을 잘도 피해 달려간다. 차안에서 일행들은 연거푸 신음소리를 낸다. 좌석이 역방향인 운전자와 조수석 뒤편의 선생님들은 속이 불편해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그 길을 겨우 통과하니 초원이 기다린다. 알혼의 풀밭은 바람과 추위에 적응하느라 잔뿌리가 무성하고 옆으로 퍼지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사간후순 곶에는 붉은 색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른바 삼형제 바위란다.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독수리 삼형제가 죗값을 받느라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알혼을 지배하던 독수리 왕은 인간세계를 구경하고 오겠다는 아들 독수리 삼형제에게 금기사항을 일러주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인육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배고픔을 참지 못한 그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만다. 화가 난 아버지 독수리느 그들을 돌로 만들어 이곳에 세워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삼형제 바위라는 것이다. 이곳의 바위는 유독 붉은 빛이 강한데, 처음에 봤을 때는 돌의 색깔 일부가 원래 그런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보니 마치 이끼 같은 식물로 보였다. 신기하였다. 그렇게 삼형제 바위 뒤편으로 드넓게 펼쳐진 바이칼호가 참으로 푸르다. 날씨 탓에 푸르기가 선명하지는 못했지만, 마치 바다와 같은 풍경에 말을 잃을 정도다. 지구상에 가장 큰 거대한 호수 바이칼을 내가 지금 보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여유 있게 돌아본 뒤 우리는 알혼의 최북단 하보이로 향했다. 가장 깊은 곳은 1673m의 수심을 기록한다는 그곳에는 하늘로 통하는 문, 즉 통천문도 있다 한다. 하보이는 부랴트어로 ‘송곳니’란 뜻이다. 옆에서 보면 송곳니와 비슷하지만 앞에서 보면 밧줄에 목이 감긴 여인이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과 같다는 그곳. 바이칼은 워낙 커서 어느 한 지점을 보고 평할 수 없다는 말이 맞아 보인다. 이 거대한 호수를 어떻게 단번에 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많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곳이 이곳 하보이라는 데 위안을 얻는다. 이곳에서 곧잘 보이는 것은 소원을 비는 띠들이다. 나무에 기둥에 색깔별로 다양한 띠로 감싸고 묶어놓은 것이 꼭 우리네 성황당 모습과 닮아 있다. 8년 전에 이곳을 다녀갔던 고혜경선생님이 한겨레 취재팀과 왔을 때 이곳에 묶어 놓았던 띠를 찾아보라 하신다. 그리고는 저 띠가 바람에 날려 하늘로 가는 것이 곧 소원이 향하는 곳이라는 멋진 말씀을 해주신다. 순간 나 또한 그곳에 예쁜 띠로 소원을 적은 글을 쓰고 싶었다. 통천문까지 가는 길은 가벼운 트레킹 코스였다. 때때로 자전거를 탄 젊은 청년들이 그 길을 쌩쌩 달려가기도 한다. 그 위로는 등산차림으로 지팡이를 짚어가며 걸어가는 외국인의 모습도 보인다. 통천문까지 가는 길에 펼쳐진 바이칼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히려 통천문은 작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 바이칼.

 

 

 

 

 

 

 

 

 

 

 

 

  

우리는 이곳 하보이곶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일행을 우아직으로 태워 준 주인장과 또 다른 현지인이 요리한 오믈국. 쉽게 말하면 민물생선국. 이게 참 오묘한 맛이었다. 사실 오늘 출발하기 전, 가이드는 혹시 오늘 점심에 먹을 오믈국이 입에 맞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 혹시 컵라면 가지고 가실 분들을 챙겨두라 했다. 나도 비린 생선국을 먹을 자신이 없어 서둘러 챙겨 놓았다. 길을 가는 내내 그 점심을 먹지 않는 것도 먹는 것도 걱정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한 그릇을 받아 먹어보니 꽤 먹을 만 했다. 생선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나 막상 국물을 먹어보니 지리 맛도 나는 것이 오히려 육고기 음식보다 훨씬 나았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현지식을 깨끗이 비웠다. 그런 뒤에 받아든 홍차. 오늘 점심은 무사히 때웠다. 나중에 남은 음식 쓰레기를 우리가 점심을 먹던 근처에 주인장이 버리자 하늘에서는 갈매기가 눈치를 채고 어느새 몰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주변을 빙빙 돌며 떠나기를 바라는 듯. 역시나 우리가 떠난 뒤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음식 쓰레기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지난해 8월부터 키우던 길고양이가 생각났다. 이제는 우리 집 고양이나 다름없는 그녀석이 아무도 없을 우리 집 주변을 홀로 떠돌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다.

 

 

 

 

 

 

 

이어서 달려간 곳은 머지않은 곳에 보인 사랑의 언덕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하트모양 같기도 한데, 호수를 향해서 한 길로 가다가 두 갈래 길로 나뉘는 독특한 19금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쪽도 저쪽도 절벽이어서 나 같은 고소공포증자들은 쉽게 꼭대기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정상 바로 밑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면서 양쪽으로 바이칼 호를 끼로 있는 각종 절벽의 풍경들이 보인다. 참으로 거대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언덕을 뒤로 하여 달려간 곳은 우주릐만. 이곳은 바이칼 기상 관측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바이칼 호변에서 자갈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움직인 탓에 피곤했던 일행이 자갈밭에 하나 둘씩 눕기 시작한다. 나는 신발과 양발을 벗고 발을 담가 보았다. 차가운 물이 피곤을 싹 가셔준다. 우주릐 만을 정점으로 이렇게 오늘 우리 일행의 알혼 북부탐험은 끝을 맺는다. 이제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 우리들의 숙소 후지르로 가야 한다. 돌아가면서 올 때 만났던 숲속에서 잠시 내려 30분간 걸었다. 우지악은 우리를 앞서 기다리기 위해 먼저 출발을 했다. 숲속에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맞으면 삼림욕을 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좀 더 걷고 싶을 정도로 숲속 산책은 평안했다.

 

 

 

 

 

 

 

 

 

 

 

 

 

 

 

 

 

 

 

 

 

 

 

40여분 달려 숙소로 겨우 도착했다. 다들 피곤한 얼굴들이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세면대에서 얼굴과 발을 씻는 사람들.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내 우리는 저녁을 먹고 알혼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고 있다. 주 메뉴는 양고기다. 8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양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이틀간 먹을 예정이다. 바로 잡은 양고기는 비린 맛도 없이 맛있다 하는데, 요즘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내가 얼마나 잘 먹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저녁식사들을 하면서 일행들은 벌써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나흘 밖에 남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시는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이곳 바이칼과 알혼을 떠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세면과 화장실이 불편하고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움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곳을 찾은 것에 무척 만족한다. 오늘 아름답기 그지없는 끝이 어디 있을지 모를 바이칼호를 지켜보던 내게 최은희선생님이 “내가 부르길 잘했지?”하며 생색을 낸다. 하지만 그 생색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는 맞다고 정말 맞다고 했다. 지금 엄마와 함께 홍콩에서 첫날을 보내고 있을 아들 녀석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한 것이 순간 아쉽기만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는다. 오늘 즐거운 만찬을 보내고 내일 알혼의 나머지 절반, 남부지역을 기대해 본다. 반가웠다. 알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