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여행기] 5부_ 8월 29일 또 다른 북유럽, 노르웨이의 오슬로.
어젯밤 안승문선생님이 오늘 점심시간 이후로 떠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강원도연구년선생님들을 또 맞으셔야 한단다. 아쉬웠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 오늘 바이킹박물관에서 헤어질 때 선생님들도 무척 아쉬워하셨다. 먼 여행에 아버지가 그냥 가버린 기분이라며. 오늘은 아침식사 뒤 8시 30분 출발하여 오슬로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3시간 넘게 달려 간 오슬로. 오슬로로 가는 길에서 안승문선생님의 제안으로 한 분씩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분들의 각기 다른 삶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는 있지만, 우리는 사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다. 머뭇거리며 쑥쓰러워하면서도 다들 자기 소개를 재미나게 해 주셔 먼 길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교사들이지만 한 마음으로 한국의 교육을 변화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운전사의 안내방송으로 어느덧 오슬로에 들어섰음을 알게 됐다. 평지가 별로 없는 곳이여서인지 헬싱키와 스톡홀름과 다른 산 위에 집들이 이곳이 노르웨이(북쪽으로 가는 길)라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오슬로의 한국 식당을 찾았다. 정갈한 반찬에 오징어무침, 그리고 된장찌개. 이번 점심은 모처럼 입이 호강을 했다.
한식당에서 나와 우리가 나선 첫 행선지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트의 조각 공원. 212점의 조각과 공원의 상징이기도 한 화강암 탑등을 여유있게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프로그네르 고원이라고도 불리는 공원 안에는 너른 잔디밭과 보리수 가로수 길이 보이고 그 주위로 수많은 조각들이 놓여 있다. 조각된 인물은 인공 호수 옆에 있는 태아부터 유골까지 모두 650명이상이 된다고 한다. 공원의 상징인 화강암 탑은 높이 17m, 총중량 260톤으로 총121명의 인물이 조각돼 이는데, 작품을 조각한 구스타브 비겔란은 작품에 대한 어떤 해설도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보는 이들이 판단하고 이름을 붙여달라고 했다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 그리고 죽음을 표현한 이 조각공원에는 한 여인에게 마음을 준 뒤 모른 척하는 비겔란을 야멸찬 눈으로 쏘아보는 ‘이웃집 여자’라 불리는 조각상이 흥미롭다. 특히 ‘싱나타겐(심술쟁이)’라고 불리는 얼굴 표정에 화가 잔뜩 남자 아이가 한쪽 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1992년 겨울에 다리가 잘려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고도 한다. 후에 발견돼 다시 붙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내가 들고 있는 안내 책자에는 자세히 보면 잘린 부분의 빛깔이 약간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다리가 아닌 손목의 색이 금색으로 달라 보이는 게 아닌가? 이어 화강암 탑 주변의 많은 조각상까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움직였다. 인간의 다양한 삶을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들에서 쉽게 눈을 떼기 어려웠다. 참으로 아름답고 와 볼만한 곳이었다. 한창 사진 찍기 놀이에 빠진 선생님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모습을 찍는 내 모습도 꽤나 흥미로웠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일만큼 또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냐 싶어 열심히 선생님들의 모습을 찍어드렸다.
이어서 급하게 달린 곳은 이곳에 오면 꼭 가보아야 한다는 바이킹 선박박물관. 이곳에서 아쉽게 안승문선생님과 작별을 한 우리는 놀이공원의 바이킹이 아닌 진짜 실물 바이킹의 배를 보러 박물관에 들어섰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선박은 1904년에 발굴된 선박 오세베르그. 800년대부터 50여 년 동안 여왕 전용 선박으로 활약하다가 여왕이 사망하자 여왕의 무덤에 유해와 함께 매장했다는 배였다. 이 배의 왼쪽으로는 900년대에 활약하던 고크스타트호가 있다. 1000여 년 전에 만든 배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바이킹들이 활약하던 시대부터 1000년 후인 1893년 4월 30일 고크스타트호와 똑같이 만든 바이킹 선박이 노르웨이를 출발, 서양을 횡단하여 5월 27일 미국의 뉴펀들랜드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이런 사실에서 노르웨이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이는 콜럼버스가 아닌 자신들이라 주장한다고 한다.
이렇게 바이킹 선박박물관을 돌아보고 우리가 간 곳은 국립미술관. 이곳에서 마침 뭉크 150주년 특별전을 연다기에 우리 일행은 큰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움직였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으나 우리들의 요구로 이뤄진 행로였다. 막상 국립미술관 앞에 도착하자, 뭉크 150주년 기념전이라 표기된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쉽지만 사진촬영은 절대 금지. 프랑스의 루부르박물관과 러시아의 에르미타쉬박물관도 허용하는 사진촬영을 막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뭉크의 절규 옆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저 미술관 앞 플래카드에서 사진 한 장 찍은 것으로 만족했을 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일행은 특별전시관을 한 곳 한 곳씩 이동해 나갔다. 뭉크의 일생과 삶, 사랑이 그대로 표현된 그림들은 생각보다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림에 그대로 그의 갈등과 사랑, 연민, 질투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뭉크의 ‘절규’ 앞에 서자 그래 이 작품을 여기서 본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음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일리아 넬핀의 작품을 만났던 것과 비슷한 감흥이 몰려왔다.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뭉크의 절규 작품에서 보이는 터치와 색들을 오랫동안 오랫동안 살펴보고 지켜 보았다. 미술작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내게 최은희선생님의 조언이 이곳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 셈. 짧았던 관람이었지만 보고 싶었던 뭉크의 작품을 보고 이갑순선생님과 나는 냅따 도록을 사기 위해 1층 입구로 내달렸다. 최은희선생님이 부탁했던 도록. 영어로 표기된 무거운(?) 도록을 골라 이갑순선생님이 대신 지불을 하고 나왔다. 임무는 그렇게 완수했는데, 한동안 들고 다닐 일이 걱정이다. 가방이 모두 꽉 차 있는 터라.
조금은 서둘러 나온 국립미술관을 뒤로 하고 움직인 곳은 아르케스후스 성. 돌로 지은 중후한 건물을 볼 수 있는 곳. 정식으로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뒷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로 안내한 가이드의 자화자찬 덕에 짧게나마 우리는 이곳 아르케스후스 성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동유럽 프라하의 맛을 조금 볼 수 있다는 그곳의 풍경은 나름 중후해 보였다. 아름답기도 하고. 20여분을 급하게 돌아본 아르케스후스성. 이곳에서 나온 우리는 오슬로시청사로 향했다. 스톡홀름처럼 시청사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이곳을 들러 노르웨이와 오슬로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스톡홀름 시청사와 비슷한 구조로 돼 있는 이곳의 사방에는 큰 벽화들이 가득했다. 오슬로와 스톡홀름의 역사를 그려낸 이 청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곳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김대중대통령이 초대돼 오셨을 10여 년 전 그때 그 모습을 한동안 떠올려 보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시청사를 나와 가이드의 안내로 카를 요한 거리를 잠시 걸어보기도 했다. 대다수 패키지의 경우 차로 이동해 버리고 만다는 가이드의 설레발에 뛰듯이 걸어간 그곳 주변에는 대단한 번화가였다. 직선 거리가 약 2km로 걸어서 30분이 걸린다는 그곳을 우리는 잠깐 머물려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거리에는 명품 상점과 레스토랑이 빼곡이 들어서 있어 쇼핑족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카를 요한 거리를 되돌아 버스로 옮겨 몸을 실은 우리는 이제 저녁을 먹을 곳으로 갔다.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감자, 샐러드,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달랜 우리는 오늘의 숙소가 있는 오슬로 공항쪽으로 움직였다. 안승문선생님이 떠나신 뒤, 가이드의 애매한 말과 행동으로 주위 선생님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가이드의 행동이 꼭 모스크바에서 만난 남자가이드의 모습과 일면 닮아있어 나 또한 마음이 불편했다.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조용히 일정이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오슬로에서 게일로, 게일로에서 플람으로 이어지는 거리만 해도 장장 362km. 거기다 플람에 도착해 산악열차까지 탄다니 내일은 거의 차 안에서 보내야 할 것 같다. 체력이 각별히 주의!^^ 한 가지 덧붙일 것. 오늘 묵게 된 숙소 THON 호텔의 시설이 매우 좋다. 지난 번 스톡홀름의 숙소. RICA TALK 이상이다. 아마도 내가 해외여행에서 묵은 숙소 중 최고의 시설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들도 대만족이다. 게다가 커피포트까지. 덕분에 오늘은 마지막 남은 컵라면으로 속을 채워야겠다. 안승문선생님이 안 계셔 허전하기는 한데, 나름 혼자 묵게 돼 편한 점도 있다. 앞으로 여행기도 여유롭게 쓸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