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교육연수기] 7부_ 8월 31일_ 베르겐의 아쉬운 추억과 송네 피오르드의 강렬한 기억
일어나기 몇 시간 전부터 창문으로 비가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기분 좋은 소리. 이곳에서 마침내 제대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식사 뒤에 호텔 현관 앞에 서자 비가 세차게 내린다. 먹장구름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바람도 이는 것이 오늘 날씨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견케 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막상 출발을 하려 하자 비도 그치고 다시 간간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비는 오늘 하루 종일 오락가락 했다. 우리가 오늘 찾을 베르겐과 구드방엔의 날씨가 원래 이렇다 하는데, 오히려 이런 현지의 날씨를 만나고 가는 게 더 좋을 듯 했다. 출발부터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가이드님은 출발하자마자 1시간이 넘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짐작한 대로 마침내 자신이 판매할 상품을 안내한다. 뜻밖으로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시는 듯 했다. 그녀의 사생활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듯.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소리가 소음으로 들렸다. 아름다운 이 풍경을 조용히 보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더욱이 아침에 말이다. 나는 헤드폰을 꺼내어 폰에 들어있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래도 들리는 가이드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악소리를 올려야 했다. 그제야 겨우 가이드의 목소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 우리 일행은 포드네스라는 곳에서 차를 태워 배를 타고 15분간 가서 내린 뒤 마닐이라는 곳에서 배를 다시 40분간 타고 송달지역에 내려 최종 목적지인 베르겐으로 가야했다. 지나는 길에는 보스, 달렌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보스(Voss)는 피오르드 관광의 중간 연결지점인데 겨울에는 스키어들로 붐비는 곳이라 한다. 하지만, 화려하고 혼잡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도시는 1023년에 시작되었으나,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되어 새로운 지은 건물이 많기 때문에 옛 정서를 느낄 만한 풍경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다만, 1277년에 세워진 보스교회만 파괴되지 않고 남아 이곳의 작은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여름철 밤에는 오르간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단다. 이곳을 우리 일행은 화장실 이용 등 두 번을 거치게 됐다.
베르겐으로 향하는 방향에는 방스네스라는 지역에서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운전사 토비야스의 배려로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토비야스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커피와 과자를 팔면서 자신이 딸 사진을 보여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오늘 밤 늦게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운전을 해준 그가 참 고맙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자신이 직업에 철저한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그렇게 낭만과 음악을 사랑하는 토비야스와 하는 일정은 덴마크까지 이어지게 된다. 아마 그와 헤어질 때는 많은 선생님들이 아쉬움을 나타낼 것 같다. 아무튼 토비야스 덕분에 우리는 노르웨이의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베르겐에 도착했다. 오슬로 이전의 노르웨이 수도였으며 사실상 노르웨이의 경제와 문화를 담당하는 도시라는 베르겐. 부유한 도시인데다 역사적인 도시인 이 도시는 과연 어떤 도시일까 궁금했다. 노르웨이하면 오슬로라고 생각만 했던 이곳은 직접 밟아보지 않으면 모를 도시였다.
간단한 중국식으로 점심을 대신한 우리 일행은 제한된 시간 안에 베르겐과 뷔르겐지역을 넘나들어야 했다. 길어야 1시간 10분. 그 와중에도 가이드님은 자신을 따라 설명을 10분간 듣고 움직이란다. 가이드님의 특성상 10분 이상 열변을 토할 것이 예상되고 굳이 책에서 간단히 알 수 있는 내용을 들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러한 짐작은 정확히 적중했다. 어시장과 뷔르겐 지구를 한 바퀴 다 돌고 골목을 들어선 지 20분이 지날 즈음, 아직까지도 가이드님 옆에서 설명을 듣는 우리 일행들을 저만치서 볼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움직인 사람은 한인경, 이갑순선생님. 이 두 분과 나는 일단 어시장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베르겐에 와서 어시장을 꼭 봐야 한다는 사전 정보를 알고 있었던 나는 사진을 군데군데 찍어가면서 이동을 했다. 역시나 이곳은 맛깔 나는 해산물을 다양하게 조리해 판매하고 있는 그야말로 해산물 풍물시장이었다. 생선 이외에도 꽃과 과일, 채소, 선물용품 등도 파는데, 그 중에서도 바로 먹을 수 있게 조리해주는 연어와 새우 샌드위치가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우리 눈에는 랍스타와 킹크랩이 들어왔는데, 일단 뷔르겐지구를 돌아보고 빠르게 쇼핑을 하고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이곳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르겐은 인구 약 25만 명으로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산맥이 해안선까지 뻗어 나온 서부 노르웨이 특유의 지형 때문에 좁은 땅에 목조 가옥이 밀집해 있다. 따라서 화재의 우려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분지 지형이라 다른 지역과 다른 기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비가 자주 내려 항상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이 도착할 무렵에는 마침 비가 그쳤는데, 도시를 걸을 때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을 폈다 접었다는 일이 잦았다. 이곳 베르겐은 1070년 울라프 퀴레 왕이 도시의 기초를 세운 이래 12/~13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다. 그 후 14~15세기에 북해 주변의 여러 나라가 상업 발전과 각국의 공동 이익을 목표로 결성한 한자 동맹에 가입했을 때는 그 사무소가 이곳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한자 상인들을 통치하는 동시에 특산물인 말린 대구를 수출하며 급속히 발전한 베르겐은 17세기에 한자 동맹이 막을 내릴 때까지 400년이 넘도록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항구 옆에 있는 브뤼겐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건물로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는데, 브뤼겐 거리를 걷다보면 검정 사각 기둥이 양쪽 끝에 세워져 이곳이 유네스코의 지정 거리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베르겐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노르웨이라 하지 않고 “베르겐에서”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 도시 출신을 그만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라 한다.
브뤼겐의 중심지, 항구를 따라 목조가옥들이 벽처럼 늘어서 있는 일대를 브뤼겐 지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 목조의 가옥들은 13~16세기에 지은 것인데 몇 번이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때마다 같은 식으로 복원하고 수리해,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돼 있다. 안쪽에는 가옥들 사이로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데, 마치 중세의 골목을 헤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곳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점이나 수공예 공방도 있었다. 다만, 값이 워낙 비싸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브뤼겐 지구 골목을 나와 맨 가장자리 건물에 기념품 판매소가 보였다. 나중에 합류한 홍동기선생님과 함께 이곳에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우리 네 명 모두의 손에 베르겐의 브뤼겐 지구 목조가옥이 그려져 있는 예쁜 탁상용 시계를 하나씩 사서 들고 나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여분. 우리는 서둘러 어시장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적당한 포장마차에 들러 음식을 사 먹는 것.
우리는 킹크렙을 골랐다. 그런데 다리 세 쪽에 글쎄 12만원이나 하지 않는가. 우리는 맛만 보는 것이라는 위안으로 다시 하나만을 주문했다. 값은 약 4만원. 그릴에 구워 나오는 킹크렙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양이 적다는 것이 최대 불만. 그런데 옆 자리에서 연어샌드위치를 먹는 외국인이 보였다. 그마저 먹고 싶었던 우리 네 명 중 한인경선생님이 간단한 영어로 그것을 어디서 사먹을 수 있냐 물었다. 그러자 바로 뒤편을 가리켰다. 우리에게 킹크랩을 제공해주었던 바로 그곳. 주문을 하고는 또 부푼 기대를 갖고 기다렸다. 하나에 14000원 정도. 이곳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순간 네 조각으로 나눠달라고 주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 선생님들이 “어떻게 말하지?” 하신다. 나는 “그냥 포 컷, 아니면 컷! 포!”하면 되죠. 그러자 우리의 행동대장 한인경선생님이 한창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여점원에게 가서 ‘포 컷’을 외쳤다. 음식주문은 그렇게 완성돼 어느새 우리 앞에 와 있었다. 하나도 비리지 않은 맛. 연아샌드위치를 이곳에서 맛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크게 만족했다.
아직도 15분이 남은 상태. 우리의 다음 목표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이갑순선생님과 한인경선생님이 사고 있는 동안, 어시장의 푸드코트 건물을 돌아보지 못한 홍동기선생님을 안내해 해 드렸다. 별다른 안내도 아니지만, 쭉 함께 돌아보며 사진도 찍어드렸다. 그리고서 만난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사는 도중 줄을 서 있는 한 중년의 한국 남자분이 어디서 왔냐 물으신다. 한인경선생님 충북 청주에서 왔다 하니 자기도 청주에서 왔다며 세세한 지명과 아파트 이름까지 확인하기 시작한다. 세상은 참 좁다. 노르웨이라는 지구 반대편에서 청주에 사는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예정된 시각에 맥도날드 건물 앞에서 우리 일행을 다시 만났다. 한 시간의 활약을 마치 무용담을 떠벌이듯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한 도시를 불과 1시간만 돌아볼 수밖에 없다니. 한자박물관 에드바르 그리그 박물관, 베르겐 박물관과 미술관, 서노르웨이 공예박물관 등 이곳은 2박 3일은 머물러야 하는 곳이었다. 물론,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이곳의 비싼 숙박비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송네 피오르드를 돌아볼 구드방엔으로 향했다. 가면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를 보기도 했고 거대한 산맥들을 우러러 보며 그곳에 지어진 집들도 보며 그렇게 조용히 이제는 정말 조용히 한동안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중간 중간 가이드님이 깨어나실 때마다 헤드폰을 꺼내들기는 했지만. 나는 때마다 꺼내드는 그녀의 사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폭우와 아름다운 산맥, 대잔연의 모습을 짧은 시간에 강하게 만난 우리 일행은 마침내 오후 5시 10분을 넘겨 구드방엔에 도착했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하늘 쪽을 바라보는 곳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산이 내려 보고 있었다. 거대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이곳을 언제 다시 또 찾을 수 있을까? 내 눈에 꼭꼭 담아 놓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어로 ‘내륙부로 깊이 들어간 만’을 뜻한다. V자 형태의 계곡에 바닷물이 유입되어 형성된 하구를 말하는데, 협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피오르드는 빙하의 산물이라고 한다.
약 100만년 전의 북유럽은 두께 1000m 이상의 빙하에 덮에 있었다. 빙하는 이름 그대로 얼음으로 된 강이며, 조금씩 흐른다고 한다. 지금도 빙하가 바다로 떨어져 들어가는 곳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은데, 우리가 바라본 산 꼭대기 근처에도 곳곳에서 빙하를 볼 수 있었다. 빙하가 있는 곳이 마치 구멍이 뚫린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런 빙하가 움직이면 그 무게로 강바닥을 깎고 칼로 잘라낸 듯한 깊은 계곡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바다가 가까워짐에 따라 침식력은 약해지는데, 이 때문에 내륙부에 비해 바다 쪽은 지형이 얕다고 한다. 빙하기가 끝나자 파인 부분에 해수가 흘러들었고, 오늘날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하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 북부에는 피오르드와 함께 빙하 호수도 많아, 훨씬 복잡한 호수 지대를 형성하고 있단다.
수많은 피오르드가 연속해 있는 노르웨이 서부 해안선은 ‘피오르드 지방’이라고 불린다. 완만한 바다에서 가파른 산이 우뚝 솟아 오른 독특한 경관에는 대지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무스한 피오르드 중에서 대표적인 피오르드로는 북쪽부터 차례대로 예이랑게르, 노르, 송네, 하르당게르, 뤼세 등 이를 5대 피오르드라 부른다. 이중에서도 예이랑게르 피오르드와 송네 피오르드의 지류인 피오르드는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특히 송네 피오르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곳이며 길이 204km,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308m나 된다고 한다. 베르겐 북쪽에서 내륙으로 뻗어 있고, 앞쪽으로 갈수록 여러 개의 피오르드로 갈라진다. 송네피오르드는 5대 피오르드 중에서 유일하게 일 년 내내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 하는데, 우리 일행이 가장 관광객이 적을 때 이용한 턱이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피오르드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찾은 송네피오르드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비가 작고 크게 내렸다가 이내 그치고 간간히 맑은 하늘이 구름사이로 보였다가 무지개를 보여주는가 하면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어 그야말로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아~ 맑은 공기. 비가 내린 탓에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어느 곳을 찍어도 화보가 되는 대자연 앞에 우리 일행은 실내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선상 2층과 3층을 오가며 피오르드가 보여주는 폭포와 같은 각종 연출로 우리 일행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사진촬영. 이곳을 몽땅 사진기와 눈에 담아 갈 수 없었던 것이 그저 아쉽고 또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한국인들을 위한 방송에서 이제 내릴 곳. 플롬을 안내한다. 어제 찾았던 플롬이 낯설기만 했다. 우리는 그렇게 송네피오르드와 헤어져야 했다.
오늘 일정이 빡빡했음은 아침부터 알고 있었지만, 7시 50분을 가리키는 차 안에서 가이드님은 우리 숙소가 있는 게일로까지 1시간 40여분을 더 가야 한다고 안내를 한다. 도착예정시간 늦은 9시 30분. 해질녘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산맥과 폭포는 우리가 가는 길에도 따라와 너희들이 떠날 때까지는 절대로 자신들이 먼저 떠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VESTILA RESORT. 고풍스러운 로비에서 방 키를 들고 들어간 방. 마침내 싱글룸이었다. 널찍한 공간. 그런데 앞 바란다의 창문이 고장나 밖에서 들어올 수도 있는 상태였다. 옛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고장난 것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가족실 같은 곳에 들어가 4개의 침대가 있다는 둥, 어떤 방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 다는 둥, 이런 저런 소식이 들린다. 뒤늦게 먹은 저녁식사는 이번 여행 중 최악! 귀족들이나 온다는 이 지역에 별 4개짜리 호텔이라는 이곳에서 주는 음식이라니. 가이드님도 조금 당황한 듯 이런 저런 변명을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스프는 짜고 주메뉴인 미트볼은 니맛도 내맛도 아니고, 후식은 통조림 과일. 한심한 음식이었다. 뒤통수가 가려운지 가이드님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 일행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일찍 자리를 떠야 했다. 피곤한 하루 뒤에 최악의 음식이라니.
이제 내일은 다시 오슬로로 돌아간다. 간단한 오슬로 도시 투어와 함께 점식 식사 뒤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다. 이제 그 말로만 듣던 덴마크로 가게 된다. 아무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 노르웨이의 참맛을 잠시나마 본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지금시각 밤 12시 10분. 한국시간 아침 7시 10분.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우리 아내는 아마도 늦잠을 잘 것이다. 이제 나흘 뒤에는 한국. 8월 1일부터 이어진 러시아 여행의 후유증인지 조금씩 집이 그립고 몸이 지친다. 그나마 월요일 덴마크의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위안이고 힘이 된다. 어떤 선생님은 피오르드 때문에 이번 여행을 오게 됐다는 분이 있지만, 나는 학교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학교를 꿈꾸는 내게 갑자기 다가올 기회에 대한 준비 때문이다. 아~ 피곤하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