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아들과 제주올레를!

[제주올레여행기] 10월 16일_ 17코스 중반에서 18코스 중반까지_ 푸르고 높은 가을하늘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

갈돕선생 2013. 11. 14. 23:09

오늘 아침은 어제 풍랑주위보가 사라진 뒤라 그런지 참으로 맑았다. 게스트하우스 창밖으로 인근 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보이고 그 뒤로 하얀 구름이 떠 있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 아, 가을 하늘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푸르고 높다하였지만, 사실 요즘 이런 하늘을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제주의 하늘이 돋보였다. 오늘 출발시간도 아침 9시.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니 넓고 번화한 도두추억애(愛)거리 표지판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전통놀이를 하는 어린이 조형물이 보인다. 이런 조형물을 이곳에 왜 놓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이 거리를 지나면 오래물이 솟는 자그마한 도두항이 나타난다. 오래물은 도두동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로 마을을 상징하는 명물이라 한다. 무더운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해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요긴하게 사용해 왔다 한다. 요즘에는 여름마다 도두물을 주제로 마을축제를 연다고 한다.

 

 

 

 

 

 

 

 

도두항에 도착하면 자그마한 구름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도두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오늘은 벌목작업이 한창이었다. 벌목한 잔목을 올레길에 놓아 다니기에 불편했다. 도두봉에 오르니 한라산과 제주시, 공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두봉을 내려와 해안로를 한참을 걸었다. 역시나 바람이 세차지만 푸른 하늘 푸른 바라여서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중간스템프를 찍는 곳에 스템프와 도장이 없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올레 완주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 나는 이 낯선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이제 해안로는 용두암으로 향한다. 제주사진을 보게 되면 으레 등장하는 용두암. 사진에는 크게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작다. 일본인, 중국인,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섞여 용두암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제주시내로 향했다. 고성터인 무근성과 제주의 최고 행정관청이던 제주목관 관덕정을 지나면 이제 제주시내로 들어선다. 안내책자에는 올레표지를 따라가는 길이 마치 미로찾기처럼 스릴이 넘친다고 했는데, 실제로 길을 걷는 이들은 참으로 고생이다. 복잡한 시내에서 올레리본과 표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동문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결국 아들과 나는 길을 잃었다. 겨우 폰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제주 상업의 근거지를 이루던 상설시장 동문. 지금은 현대화하여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한다. 실제로 둘러보니 재래시장 치고는 정말 볼만했고 엄청 컸다. 여기서 아들과 나는 맛나 보이는 분식점에서 김밥, 떡볶이, 순대, 튀김을 싸게 먹을 수 있었다. 다만, 불친절한 주인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동문시장에 대한 인상이 싹 뒤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들 녀석도 왜 저렇게 장사하는지 모르겠다한다. 오늘만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안 좋은 경험이었다. 그나마 시간에서 나오는 지점, 좌판을 깔고 “귤 사가세요.” 하시던 할머니에게 5천원어치 귤을 산 것 때문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도무지 그 몸으로 장사를 하기 힘들어 보이시던 할머니가 열심히 귤을 파시던 모습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시장을 나와 번화가인 동문로터리 주변을 보니 17코스 종점 스탬프와 18코스 출발지점을 알리는 간새가 보였다. 이곳은 산지천 마당이라는 곳인데 제주시의 도심 한복판, 동문로터리에 있는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아들과 나는 산지천 마당을 거쳐 오늘 묵을 모텔을 찾았다. 미리 찾아보고 간 곳은 이미 방이 다 예약이 돼 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검색을 해 흙돼지 거리(돼지고기 식당이 몰려 있는 곳)인근 모텔을 하나 구했다. 내일 제주여객선터미널 인근이기도 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조금 지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방에다 짐을 놔두고 우리는 제주여객선터미널을 찾아 내일 추자도행 배를 예약했다. 아침 9시까지는 와서 표를 발부받으라 한다. 다행히 이곳이 올레길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방문한 것. 이렇게 제주항을 지나니 바다로부터 방향을 틀어 언덕을 오른다. 18코스의 본격적인 시작읻. 의녀 김만덕이야기가 전해오는 건입동 마을이다. 마을길을 오르며 돌아보면 제주항을 낀 바다가 보인다. 우리가 오를 곳은 제주 시내권에 박힌 보석과 같은 두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이다. 조금은 힘들게 사라봉에 오르니 제주 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모두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사라봉은 예전부터 ‘사봉낙조’라고 할 정도로 일몰이 유명한 곳이라 한다. 사라봉 해송숲은 2000년 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시민의 숲 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수상했다고도 한다.

 

 

 

 

 

 

 

 

 

 

 

 

 

 

 

 

사라봉에서 별도봉으로 길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별도봉을 내려가는 둘레길은 숲과 억새, 바다가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경관을 보여주었다. 별도봉을 가로지르는 둘레길은 왼쪽 바다경관을 끼고 걷는 이를 자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기분 좋게 오름을 내려오니 눈앞에 돌담만 남아 있는 잡풀 가득한 텅 빈 당이 나타났다. 이곳은 4.3 항쟁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고을동마을터라고 한다. 평온한 마을이 위정자들의 폭압과 무지에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멀리서 보니 아담한 마을 터인데 아무런 죄도 없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고 떠밀려가야 했던 당시 마을 주민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씁쓸한 발걸음을 옮겨 마른 강을 건너 강변을 따라 다시 마을길로 들어갔다. 화북동 금산마을에는 오래된 제주 전통 초가들이 보였다. 이 길은 다시 억새 길이 바다로 향하는 이어진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화북(별도)포구는 옛날에는 해상교통의 관문으로 왕명을 받은 사신이나 관리들이 드나들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 포구에는 사신을 접대하고 환송했던 객사인 환풍정과 제사를 지내던 해신사, 통신을 담당했던 군사시설 별도연대, 환해장성 등이 있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별도연대와 환해장성을 보았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삼양동 마을길을 지나자 모래찜질로 유명한 삼양검은모래해변을 만났다. 정말 모래가 검정색이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목재데크 산책로를 걷다가 해변 끝에서 중간지점 스탬프를 찍었다.

 

 

 

 

 

 

 

 

 

 

 

 

 

 

 

 

 

 

 

 

 

 

 

 

 

 

 

 

오늘은 17코스 중반에서 18코스 중반까지 걸었다. 예정에 없던 한라산을 오를 날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금씩 무리를 해 가며 걸었다. 내일 추자도를 가기 위해서 오늘은 삼양검은모래해변까지 걷고 다시 아들과 나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 전에 잡아 놓은 숙소로 갔다. 100번 버스를 타고 삼십 분 남짓 제주시로 가니 동문로타리. 잠시 뒤 오후 6시 30분에 전국초등국어교과 제주모임선생님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 서둘러 숙소로 들어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모텔 인근에 집이 있는 김영선선생님이 황송하게도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봄에 뵙고 또 반갑게 만나 뵙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마다 호텔 앞 전복식당에서 맛있는 전복뚝배기를 시켜 먹었다. 여섯 분의 제주선생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을 나누었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렇게 반겨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셔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 같다. 2시간 남짓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년 1월 겨울 연수 때 뵙기로 하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 양재성선생님이 귤과 감을 가져왔다며 챙겨주신다. 그저 감사할 뿐. 김영선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 주시는 걸로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 이제 내일은 기대와 고민이 많았던 18-1코스 추자도행이다. 모쪼록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모레 다시 삼양검은모래해변에서 18코스를 마무리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