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아들과 제주올레를!

[제주올레여행기] 10월 21일~23일 아들과 걸은 제주올레길 그 마지막 이야기!

갈돕선생 2013. 12. 3. 13:43

제주 올레를 다 돈 뒤 일기는 쓰지 못했다. 한라산을 다녀와 강정효사진작가님 별장 이소재를 찾은 뒤 일정이 바빴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중에 마무리를 짓는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난 뒤 이렇게 다시 쓸 줄은 몰랐지만, 막상 지난 올레길을 훑어 보며 다시 글을 쓰려니 가슴 한 켠이 짠 한 것이 마음이 무척 시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2013년, 아들과 함께 걸었던 제주올레길. 봄과 가을에 걸쳐 아들과 힘겹게 걸었던 추억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추억을 마무리 했던 올레길 완주에 이어진 이야기와 아들과 걸은 제주 여행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한라산은 원래 우리 여행에 없던 코스였다. 길을 걷다 우연히 아들과 얘기를 나누다 아들이 한라산을 올라가고 싶다는 말에 선뜻 응했던 것이 이번 일정을 이렇게 조정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제주를 한 바퀴 돌고 한라산에 올라 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 뭔가 구색이 갖춰진 여행 같기도 하고 나름 괜찮아 보였다. 걷다 힘이 들 때면 아들에게 한라산까지 오르는 건 포기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결국 가고싶어 했고 나 또한 아들의 그런 뜻에 따랐다.

 

21일은 제주 동문시장 인근 모텔에서 자고 새벽 5시 30분쯤에 일어나 준비해 6시에 김경남선생님이 빌려준 차를 몰고 성판악으로 향했다. 가다가 편의점에서 점심과 간식거리를 사기도 했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아침 7시. 차가운 기운이 그야말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성판악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아들과 나는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주차권을 받고 한라산 정상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은 마치 공원을 걷는 듯 했다. 속밭 대피소까지는 낮은 오르막길을 걷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성판악 주차장에 한가득 보였던 까마귀 소리가 속밭 대피소까지 이어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월요일 평일인데도 한라산길을 올랐다. 게 중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 둘도 보였다. 20여 년 전. 대학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오면서 올랐던 한라신. 정상에 올랐으나 뿌연 안개와 험한 날씨 탓에 백록담도 보지 못하고 내려왔던 기억이 유일하다. 나중에 강정효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20여년 전에 올랐던 한라산 길은 다른 길이고 이제 폐쇄가 됐다고 한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길은 두 세 길이 되는데, 아들과 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닌다는 코스로 정했다. 차를 가지고 온 터라 오르던 길을 곧바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기도 했다.

 

아침을 먹지 못했던 아들과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으로 시장을 달랬다. 속밭대피소 밴치에 앉아 먹었는데, 왼쪽 화장실 가는 쪽 나무 위로 까마귀가 울며 뭔가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식을 먹겠다는 모습이었는데, 그런 때문일까? 이곳에는 정말 까마귀가 많다. 한 번은 한라산 길을 오르다 우리보다 앞서 쉬던 아주머니 한 분이 먹다 남은 음식을 바위 위에 까마귀에 주려고 올려 놓았더니 기다렸다는 듯 까마귀가 날아와 집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속밭대피소를 지나 이제 우리는 좀 더 가파른 코스로 걸어가야 했다.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아들과 나는 사라오름 옆을 지나 진달래대피소까지 걸어야 한다. 그곳에서 한 번 쉬어야 한다. 이 시절 한라산국립공원에서는 오후 1시 이전에 진달래대피소까지 등반객들이 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이라 한라산 정상에서 다시 성판악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게 쉽지 않고 조난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열심히 올라갔다. 속밭대피소 이전 길보다 가파르고 돌도 많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제주에서 보기 힘든 단풍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기온차가 큰 한라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렵게 힘겹게 오르던 길에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도 있었으나 힘이 든 아들과 나는 내려올 때 힘이 남으면 가자 했다. 오름 중에서 가장 물이 많이 고인다는 사라오름. 열흘 전 태풍이 불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가득고였다는데, 아쉽게도 이곳을 가지 못했다. 마침내 진달래대피소에 이르자 하늘에 헬기가 날아다닌다. 나주에 알고 보니 진달래대피소를 좀 더 단장하고 수리하는 목재를 나르는 장면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헬기가 조용한 한라산 등반을 방해했지만, 제주의 또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둘러 올라가고픈 욕심에 주먹밥으로 잠시 배를 채우고 화장실을 다녀온 아들과 나는 이제 제주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장 험난한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에는 목재로 단장해 놓은 길이 있어 오르기 편했지만, 워낙 돌과 가파른 길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다리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잠시 쉬다 오르기는 했지만, 쉬자는 생각보다는 어서 빨리 올라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들어 잠깐 쉬고 오르는 등반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저 멀리 한라산 정상 인근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보이자 저 사람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말로 내뱉으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이 킥킥 웃는다.

 

 

 

 

 

 

 

 

 

 

 

 

 

 

 

 

 

 

 

 

 

 

 

 

 

 

 

정상 인근에 오르자 더욱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가까이 와이파이 기지국이 보인다. 이것도 한창 수리중이었다. 힘은 들었고 숨은 가팠지만 이제 도착했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걸었다. 마침내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보자 아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백록담의 경치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예전 대안학교 다닐 적, 필리핀에서 6개월간 살면서 본 화산지대 생물들이 모습과 이곳 한라산 오름길이 닮아있다는 말도 전한다. 예전 추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물은 거의 없었지만 백록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들과 함께 한라산 정상에서 사진도 찍으며 마지막 남은 주먹밥을 움켜 지고 먹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부는 한라산 정상에서 아들과 함께 주먹밥을 먹는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7시쯤 출발해 11시쯤 도착했으니 4시간만에 오른 셈이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지루하게 돌밭을 밟아가며 내려갔다. 가파른 길이 이어지면서 무릎과 발바닥도 많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면서 아들과 나는 겨우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리자 마자 아들은 화장실로 나는 성판악 국립공원 사무실로 가서 한라산 등반 인증서를 받았다.

 

 

 

 

 

 

 

 

 

 

 

 

 

 

 

 

 

 

 

 

 

 

 

 

생각보다 빨리 한라산 등반을 끝낸 오후 2시 30분. 우리는 일정을 바꾸어 서귀포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는 올레 본부가 있었고 우리는 본부를 찾아가 올레 완주 인증서와 메달을 받을 작정이었다. 본부를 찾아가는 기분도 남달랐다. 올레 6코스 끝자락에 있는 본부를 찾았던 지난 4월의 기억이 새로웠다. 1층으로 들어가자 2층 사무실로 안내한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꽤 많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다. 올레 완주 인증서를 받으러 왔다 하니 반갑게 맞이하며 이것저것을 묻고 차와 귤을 내 놓은다. 아들과 아버지가 제주올레를 완주한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라 한다. 그래서 나는 재차 물었다. 첫번째는 누구였냐고. 그랬더니 첫번째는 연세가 있는 아버지와 성인이 된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령기에 있는 아들을 데리고 올레를 완주한 이는 우리가 처음인 셈이었다. 아쉽게도 올레 패스포트를 하나만 들고 다녀 인증은 내 이름으로만 할 수 있다 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인증서 옆에 아들의 이름은 내가 적어 넣으면 되니. 나중에는 기념 메달도 하나가 아닌 아들과 내게 하나씩 둘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게 문제였다. 그만 아들 녀석이 이 메달 중 하나를 잃어 버린 것. 우습게도 이번 여행을 통틀어 처음으로 이 일로 다툰 셈이었다.

 

고맙고 뿌듯하게 인증서를 받고 올레 본부 옥상에 올라가 직원이 찍어주는 사진도 찍었다. 우리들 사진은 제주올레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 올려 놓을 거라 한다. 우리는 정말 기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와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약속한 강정효사진작가님의 별장 이소재로 다시 차를 몰았다. 해지기 전에 도착한 이소재. 벌써 세번째. 이제는 친숙한 곳이 돼 버렸다. 그런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차에서 내리자 마자 올레 기념 메달이 없어진 것을 안 난 아들에게 책임을 물었고 그것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만은 아니라 항변하는 아들 녀석과 이소재 주차장에서 10여분 차 안을 뒤집으면서 다투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강정효선생님 앞에서 민망하기도 죄송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기가 받은 물건을 함부로 다룬 녀석이 못내 아쉬웠고 책임을 묻는 내게 자신의 무책임을 말하며 화를 내는 아들 녀석에게 섭섭하고 나 또한 화가 났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삭혀야 했다. 나중에 나는 아들에게 사과를 했고 아들 녀석도 사과를 했다. 잊는 것이 최선이고 나중에 올레 본부에 부탁해 받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넘기려 했으나 아들의 행동은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어른이고 난 녀석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얼굴로 별장에 한가득 짐을 들고온 우리를 강정효선생님은 수줍게 반겨주신다. 지난 4월 평화박물관에서 인사를 드리고 두 번째로 만나뵙는다. 우리를 위해 이것저것 안내해 주시고 음식 준비에 분주하시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치회에 제주돼지 삼겹살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대충 씻고 나오자 상이 한 가득이다. 술 한 잔과 맛있는 안주로 시간을 보냈다. 아들도 옆에서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기도 잠시 강정효선생님의 아내이시자 우리 모임 제주대표인 양재성선생님이 막 퇴근을 해서 들어오셨다. 손에는 집 마당에서 얻은 귤을 한 포대 가득 들고 계셨다. 아들과 내가 들고 가라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상자에 가득 옮겨 담았는데, 그래도 남아 저녁에 푸짐하게 귤을 먹을 수 있었다. 이날 저녁은 강정효선생님의 내외분과 제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밤이었다. 마침 그날 한라산을 다녀왔다고 하니 한라산을 제대로 찍은 커다란 한라산 백록담 사진 화보 두 장에 사인을 해주시며 아들에게 선물을 해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아들 녀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한라산>(돌베게)이라는 개인저서를 주시며 꼭 읽어보라 또 다른 선물을 주시기도 했다. 한라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나중에 겨울에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양재성선생님과 잠을 청하는 아들 녀석을 돌려 보내고 강정효선생님과 나만의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제주 토속 민속주까지 꺼내며 새벽 1시가 돼서야 겨우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다음날인 22일. 아들과 나는 아침 9시 늦은 기상을 해 서둘렀다. 오늘은 한림읍 캔싱턴리조트를 거쳐 아들과  그동안 걸었던 올레길을 차를 타고 다시 돌아보는 날이다. 내일이 떠나는 날이어서 오늘 비는 하루는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한림 리조트는 내가 추진하는 제주연수 숙소여서 온 김에 답사를 하기로 한 탓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11시에 약속을 잡은 것이 조금 늦은 것 같아 당겨 10시로 하는 바람에 아침에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신 강정효선생님까지 본의 아니게 깨워 가야할 판이었다. 그래도 차 한 잔은 해야 한다며 커피 한 잔을 타 주신 덕에 아침을 조금 더 여유롭게 보내고 나왔다. 단 하루였지만 강정효선생님 부부의 후덕한 인심 덕에 제주의 따뜻한 추억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강정효선생님은 이번 제주 연수에 두 번째 날을 오롯이 책임져 주실 분이어서 그 때 뵙기로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한림읍 캔싱턴 리조트를 찾은 나는 단순한 바깥 모습보다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돈된 내부시설에 만족했다. 담당 매니저와 통화를 하고 11월말에 서울에서 만날 약속을 잡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한림읍으로 달려갔다. 한 주 전 밤늦게 찾아 허탕을 친 한림읍에서 유명하다는 중국음식점을 찾아 간짜장을 시켜 먹었다. 생각보다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출발을 해 처음 다다른 곳은 3코스 종점 인근 바다목장. 그러나 올레길로 갈 수는 있지만 차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어서 이내 포기를 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지만 그곳으로 가기까지 중산간도로를 거쳐 제주를 도는 드라이브길은 참으로 여유로웠다. 아들녀석은 옆에서 정말 차를 타는게 얼마나 편한지를 알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다시 돌아선 길에 3코스 끝지점이자 4코스 출발점이었던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를 처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표선리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때보다 물이 많이 들어와 느낌이 확 달랐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아들과 나는 지난 4월 그 때를 떠올렸다. 다음으로는 5코스 건축학 개론 서연의 집에 들러 지난 4월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4월과 또 달라진 2층 잔디 옥상. 여전히 건축학 개론 영화의 추억을 나와 아들은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한 곳은 서귀포. 서귀포 올레시장을 거쳐 7-1코스 인근 우체국을 찾아 그곳에서 어제 양재성선생님에게 받은 귤 한 상자를 집으로 보내고 8코스 대평리포구로 향했다. 8코스 끝지점에자 9코스 시작점 대평포구. 눈 앞에 보이는 박수기정을 바라보며 한동안 바닷바람을 쐬기도 했다. 4월 끝자락에 도착해 박수기정을 넘던 기억이 새롭고 아련했다. 그렇게 나는 아들과 지난 4월 돌았던 올레길을 간단히 훑어 보았다.

 

 

 

 

 

 

 

 

 

 

 

 

 

 

 

 

 

 

 

 

 

 

 

 

 

 

그리고 나서 차 주인인 김경남선생님이 계진 모슬포 대정초등학교를 찾아 모시고 퇴근을 해 신제주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사시는 곳 바로 앞에 1박 2일이 다녀갔던 유명한 돼지고깃집이 있어 그곳에서 내가 김경남선생님과 따님을 불러 식사대접을 해드리기로 한 때문이다. 지난 4월이후 또 만나는 만남이었다. 역시나 이곳 고깃집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기다리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고깃값은 상상초월이었다. 웬만한 스테이크값. 맛은 좋았지만, 이 고기를 이 가격에 먹을 만큼 최고인가는 나같은 저렴한 입맛에는 영 마뜩치 않았다. 하여간 이것도 또 하나의 추억이니 받아들 일수밖에. 고깃집에서 기름을 잔뜩 채운 우리 일행은 인근 커피숖에서 아이크스림으로 느끼함을 달랬다. 나중에 김경남선생님의 남편까지 오셔 잠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헤어지고 떠나야 할 시간. 밖에는 비가 내렸다. 아쉽게 제주를 떠나야 하는 나와 아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구슬프기만 했다. 택시를 타고 다시 동문시장 인근 모텔로 와서 방을 잡고 잠을 청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아들과 나는 서로에게 건내며  그렇게 자고 또 잤다. 아침 9시 45분 비행기여서 느긋하게 숙소에서 나왔건만, 나는 모자를 그만 방에 놔 두고 내린 걸 뒤늦게 알아챘다. 결국 또 하나를 남기고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되는 걸 남기로 가야 하는 셈이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포기하고 청주로 가는 비행길에 올랐다.

 

 

 

 

 

 

 

 

 

이렇게 아들과 나의 한 달이 넘는 제주 올레 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올레길을 모두 끝냈을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다시는 이 같은 걸음을 할 수 없을 거라 했는데, 요즘에는 다시 그 힘들던 기억을 잊고 언젠가 다시 아들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내 나이 예순이 되기 전, 아들과 함께 다시 먼 올레길을 다시 걷고 싶다. 한라산을 포함해 장장 450km의 제주 올레길 대장정의 기록을 이제 정리할 때가 됐다. 어떻게 보면 다소 밋밋한 여행길이기도 했고 아들과 나의 무덤덤한 여행길이기도 했지만, 아들과 나 각자가 걸었던 길은 10년 뒤에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 뜻 깊고 각자에게 힘이 돼 준 그런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4월 아들 모습과 10월 아들 모습의 차이를 분명히 느꼈던 나였기에 그런 소망은 믿음으로 그리고 다시 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떠나는 여행 길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했던가. 다시 돌아와 이렇게 다시 4월과 10월을 돌아보는 내게 길은 돌아오는 길이 아닌 떠나고 떠나는 길로 다시 와 닿기만 한다. 먼 훗날이겠지만, 또 다른 길에서 아들과 내가 맞잡은 손과 힘차게 걷는 발이 또 다른 추억과 기록으로 남길를 바란다. 혼자 떠났으면 완주하지 못했을 이 길에 아들이 함께 해 주어 나는 무척이나 고맙다. 아직 모자라기만 아버지를 믿고 묵묵히 따라준 아들아! 부디 좌절하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작은 것에서 많은 이들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돼 주기리 바란다. 이 여행이 바로 그런 네 삶에 작은 디딤돌이 돼 주길 또한 바란다. 아들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