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글쓰기 삶쓰기/2014년 교사일기

설렘과 기대 사이의 만남

갈돕선생 2014. 3. 3. 22:25

아침 출근하자마자 교무실로 들르지 않고 바로 교실로 향했다. 나와 일 년을 함께 할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6학년 1반 교실로 들어서니 절반쯤 차 있는 아이들. "어, 어"하며 나를 쳐다 본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 녀석들아! 내가 너희들과 함께 살아갈 선생님이다.' 했다. 20분이 지났을까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 다른 반에 가 있던 한 아이가 제 자리를 찾아 오는 것으로 모든 아이들이 이제 교실을 가득채웠다. 내 소개, 아이들 자기 소개와 1학년 입학식 참석과 점심시간으로 이어지고 내가 알고파 만든 설문지를 작성하게 하고 부모님에게 드릴 내 편지와 학부모용 설문지, 일 년 간 쓸 개인 준비물 안내장을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마치 5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선 기분. 30대 중반에 만난 6학년 아이들과 40대 중반에 만난 6학년 아이들. 나를 기준으로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다. 예전 같으면 벌써 한 소리 했을 첫 만남에서 욕심도 허세도 부리지 않았다. 일 년 내내 보여줄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첫날부터 친목회 환영 식사에 참석하고 저녁 8시가 다 돼서 돌아온 집에서 오늘 아이들이 써준 설문지를 하나씩 읽었다. 옆에는 아이들 이름표와 오늘 찍은 얼굴 사진을 두고. 얼굴과  이름, 그리고 아이들이 쓴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오늘 처음 만났지만, 아이들 면면이 보인다. 겉으로는 장난을 걸며 자기 모습을 과장되게 보였던 아이들이었지만, 대충 써내려간 설문지 속에서도 아이들마다 삶의 궤적이 살짝 드러난다. 내가 더 마음을 써 주어야 할 아이가 보이고 도와주어야 할 아이가 보인다. 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면도 보인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교사와 바라는 교사에 욕과 화를 내지 말고 때리지 말았으면 바란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설문 결과 때문에 놀랍고 당혹스럽다. 이전 학년에서 교사들에게 받은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해 보인다. 내일 다시 가서 정확히 물어볼 작정이다. 정말 공교육교사들에게 받은 인상인가 하고. 학교폭력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교사들의 언어폭력과 물리적인 폭력이 숨은 곳에서 아이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문득 걱정이 들었다. 나 또한 이 그늘에서 벗어난지가 그리 멀지 않다. 아이들의 글을 보며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올해 내가 아이들과 살아야 할 길이 보인 하루였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은 뒤 가르치라"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한 편으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말이 좀 불편하다. 물론, 이 말에는 선생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아이들은 배울 것이 있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잘 다스려 배우는 길로 안내하라는 뜻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이들과 교사는 함께 배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선생과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연 뒤, 함께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마음을 얻은 뒤, 가르쳐라."라는 말에는 선생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처음에는 와 닿았다가 이제는 불편한 말이 돼 버렸다. 올해 아이들과 내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함께 성장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길 바란다. 지난 날의 행복한 기억과 더불어 즐거웠던 기억이 분명 먼 미래에 어려운 시절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갈 명분과 힘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서 내일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