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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완서의 '.....었을까' 시리즈를 읽고......

갈돕선생 2005. 12. 29. 22:29

자, 이젠 느낌표 책 시리즈 그 세 번째를 읽은 느낌을 전한다. 아니 그 후편도 읽었으니,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해 보고는 싶은데, 마음대로 될라나.

요즘처럼 소설 읽는 맛이 나는 때도 없었으리라. 더구나 그 이름만 늘 듣던 박완서 할매의 글은 무척이나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가 조선일보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으로 발탁이 됐다는 것은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문열처럼 미친 개 뛰듯이 난리를 친 인물은 아니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눈치를 챘겠지만, 박완서 할매의 '.....엇을까' 시리즈의 첫 작품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다.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자 유년의 기억을 치밀하고 놀랍도록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글을 읽게 되면 너무나도 그림 같은 그의 고향 박적골의 풍경과 시골 내음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한다. 특히, 나 같은 도시 놈들한테는 더욱더.

소설이라지만,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그냥 나열하기가 따분해 좀 꾸며 쓴 것이라고 생각하면, 박완서 할매의 의도와 맞아떨어질까. 특히 박적골 그 고향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의 회상은 그만 내 혀를 내 두르게 만든다. 어떻게 이 나이든 할매에게 그렇게 놀라운 기억이 생생하게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박적골 시절을 묘사한 아래의 두 장면은 박완서의 글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게 할 것 같다.

멀리 출타하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

"흰 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 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 길과 논밭과 수풀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버려, 마침내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다들 흰옷을 입었다. 특히 송도 나들이를 갈 때는 때도 안 묻은 고운 흰옷으로 호사를 했다.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와 딴 사람이 헷갈리지 않았다........."

가스나들이 뒷간에서 엉덩이 까고 놀며 지내던 풍성하고 생생한 이야기

"뒷간도 재미있지만 뒷간에서 너무 오래 있다 나왔을 때의 세상의 아름다움은 유별났다. 텃밭 푸성귀와 풀숲과 나무와 실개천에서 반짝이는 햇빛이 너무도 눈부시고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 우리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한숨을 쉬었다. 뭔가 금지된 쾌락에서 놓여난 기분마저 들었다. 훗날 학생 입장 불가의 영화를 교복의 흰 깃을 안으로 구겨 넣고 보고 나와 세상의 밝음과 낯섦에 접할 때마다 나는 유년기의 뒤간 체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식구들과 친척에 관한 것들이다. 그려지는 시대상이 30-40년대인데, 자신을 둘러싼 사실적인 사회상 묘사는 그 나름대로 훌륭한 역사적인 사료로 가치를 지닐 만큼 일제 강점기의 일반 민중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공부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굴러다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민중 생활상이라는 것이 사실 일제 잔행의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어서 그 당시 사람 사는 모습이 어떠한가를 이해하는 데 늘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것은 마치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북쪽의 사람들은 온통 전쟁준비와 김일성 일가를 위한 맹목적인 삶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되다 황석영의 글처럼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가 확인되는 느낌이랄까 뭐 이런 거.

한편, 박완서 할매가 이 글에서 묘사한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 친척들에 대한 솔직한 그 때 그 때 상황적 판단에 대한 기술은 때로는 너무 솔직한 것이어서 놀라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생각한 것이지만, 감히 남에게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사적인 것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움을 넘어서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숨겨놓을 무엇이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것을 이 할매는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거침없이 내뱉을 때 그 느낌은 어떤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게 했다.

오히려 이러한 박완서의 솔직함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자전적 소설에 대해 큰 매력을 가지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한, 소설로 30-40년대의 시골풍경과 도심풍경, 생활상, 50년 전쟁 임박할 당시의 서울 변두리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나에게는 무척 새로운 것이어서 야릇한 흥분도 느끼게 했다. 이러한 느낌은 책 맨 뒷 표지에 적혀 있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후속편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기도 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스무살까지의 박완서 성장이야기라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50-53년까지 그리고 그가 전쟁 중에 결혼을 하는 데까지의 이야기다. 못 다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출판사에게 고맙다라고 인사는 했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에 궁금한 나로서는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정도로 앞 책에 등장했던 가족들의 이야기와 박완서 그의 전쟁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전쟁!' 참 무서운 낱말이다. 현재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 싼 전쟁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은 50년 당시의 전쟁의 공포감과 분명 다를지 언데, 너무도 쉽게 전쟁을 내 뱉는 우리 아버지네 세대들의 '전쟁'이라는 말을 써가며 용감한 적개심과 과감한 외침을 해댈 때마다 가끔씩 가슴을 쓸어 내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작년 서해교전으로 우리 군인들이 서글픈 죽음을 맞았을 때도, 50대 중반의 우리 교무는 어김없이 전쟁이라는 말을 쉽게도 아주 쉽게도 내 뱉었다.

하지만, 그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치졸하고 비참하게,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이른바 우리가 즐겨 쓰는 '엽기'라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모두 다 미쳐 돌아가는 그 모습들 생각하고 내 뱉는 말인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오북하면(박완서 할매가 글에서 자주 쓰던 표현) 박완서는 그 짧지 않은 어쩌면 너무나 오랜 전쟁 시절 피난의 휩쓸림에서, 그가 임진강 쪽으로 피난을 갔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에 너무나 태연하게 피어난 하얀 목련꽃을 보고 '미쳤어!'라고 내뱉어 버린다.

이 두 번째 자전적 소설에서 그는 오빠를 통해 자괴감과 상실감을 느끼며, 전쟁 중에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야 하는 치열한 삶의 모습과 전쟁 속에서 드러난 이념의 대립 속에서 피난 그 자체가 가져다 주는 인간적 모멸감을 너무나 생생하게 들려다 준다. 특히,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서울에서 피난을 가지 못한 그 눈에 비친 50년의 서울의 겨울과 51년의 모습은 그 어떤 역사적 사료보다 가치 있는 것이어서 또 다른 희열감마저 가져다 주었다.

더욱이, 박완서 할매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전쟁 속에서도 우리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인민군과의 관계 속에서, 미군과의 관계 속에서 민중들의 삶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됐는지 나름대로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으로 포장해 여지없이 까발기고 있었다. 아울러 어머니와 올케 사이, 조카들과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상황묘사와 심리묘사는 너무도 솔직하여 망가질 만큼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소설의 리얼리티를 더욱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전편의 서평을 했던 서울대 김윤식교수보다는 훨씬 인간답게 글을 써 내려간, 후편의 서평을 맡았던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결혼 이후와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까지의 박완서의 모습을 그리는 자전적 소설 3편을 기다린다고 호들갑을 떨고는 있으나, 마 이만큼만 하는 것이 박완서에게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본다. 하지만, 최근에 그의 기사에 이제 자신에게는 마지막 장편이 될 글 작업에 들어갈 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무슨 내용인지 적잖게 궁금하기는 하다.

출처 : 부산교대 맥
글쓴이 : 박진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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