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2'를 읽고......


시란 무엇일까?
감동을 주는 짧은 글?
서점에서 팔리는 작은 책자에 실린 글?
여성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읽는 글?
내가 처음 기억하는 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했던 나에게 언제나 그 시들은 분석의 대상이었고, 줄을 긋고 그 의미를 외워야 했으며, 어떤 정형의 틀이 있다고 믿어지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 다음으로 기억하는 시는 김지하, 김남주와 박노해와 같은 사회성이 짙은 때로는 선동적이기까지 했던 이들의 글이었다. 언제나 그들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 밑바닥부터 뜨거운 그 무엇을 느끼기도 했지만, 시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시는 교과서에 실린 동시였다. 리듬과 반복이 주된 테마이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혀주는 동시는 요즈음을 사는 아이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시를 무척 어렵게 여기기만 했다. 시를 통째로 이해하고 느끼는 공부보다는 중고등학생처럼 낱말의 의미와 시의 일부분을 바꾸는 것에만 국한시키는 현 교육과정에 답답해 했다.
이러한 시에 대한 경험은 시와 그만큼의 거리를 두게 했다. 그런 와중에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이름만 알고 있던 그 시인들의 삶과 시 얘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우선 첫번째 권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시인들을 중심으로 스물 두명의 시인을 소개한다. 정지용에서부터 천상병 시인까지. 이름만 들어도 참으로 친숙한 그들. 허나 때로는 목가적이니 서정적이니 하는 말을 듣는 시인에게서 조차 사회가 가져다 주는 규정적인 제약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었다.
때때로 놀랍게도 그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시들을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권태응의 <북쪽 동무들>, 박인환의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유치환의 <개헌안 시비>,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 <칼을 갈라!>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반면 시대정신을 이끌며 나에게 놀랄만한 싯구들을 전해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조국이 나의 직업이라는 박봉우, 침몰한 혁명시인 임화, 낭만과 격정의 민중시인 오장환, '님의 침묵'외에 다른 시가 더욱 인상 깊었던 한용운, 이름도 새로웠던 백석, 살아있는 정신 김수영은 순간 순간 짜릿하고 때로는 충격적이어서 그들의 시를 읽어내려 갈때마다 진정 살아있는 시란 바로 이런 시구나 하는 감흥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진정 살아있는 시란 그 사람의 삶이 어떤 형태로든 치열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많은 글과 많은 책들이 난무하는 시절에 과연 그 많은 글과 책이 어느 정도의 뜨거운 삶을 얘기하고 있는지 인간을 감동시키는 글은 잔재주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솔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분명하다. 천상병의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글귀가 바로 그 증거다.
두 번째 권은 살아있는 시인들을 만나는 책이다. 몇 몇 시인들이 빠져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쳐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면면들은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첫 권에 드러난 시인들이 보여주는 신화적 요소들은 어느 정도 거세된 생활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이끌었던 시인은 아무래도 교사시인인 도종환과 조향미, 김용택시인과 또 다른 시인 안도현이었다.
교사시인 세 사람의 시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부드럽지만 할말은 하고야 하는 그래서 오히려 그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잡아당기는 사람 도종환, 신용길 선생님의 아내이기도 하신 조향미 선생님의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찾는 시의 애절함, 아무런 사상 없는 개구쟁이 아이와 같은 삶을 사는 김용택 이들은 각기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삶의 조건과 관계가 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는 전에 모 선배에게서 주워들은 싯구였으나 늘 새롭고 가슴에 박히는 이 시를 통해 안도현은 시인으로 내 머리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외에도 소개되는 많은 시인들의 면면들을 보면 시인이라기 보다는 생활인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시대변화가 시인들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 생활인의 시들을 잠시나마 짧은 시간에 맛볼 수 있는 재미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시란 무엇일까?
그렇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짧은 글.....
그 사람의 삶이 드러나는 글.....
억지로 꾸미거나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지 않는 글.....
내가 앞으로 봐야 할 시들은 이런 시일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시도 이런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외우고, 그저 낱말의 의미를 분석하고, 2연 3연의 싯구를 바꿔보는 식의 죽은 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서는 안될 행위라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본다.
끝으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2'는 시인 신경림을 새롭게 보게 한다. 나는 '농무'라는 시인으로만 알던 그를 통해 한 세기를 시라는 언어로 채웠던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한편, 신경림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평가를 떠 올려 본다.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에 버젓이 글을 내 놓은 김용택 시인과 더불어 홍세화씨에 의해 정치의식 수준을 의심 받는 가 하면, 교사이자 문인인 이응인으로부터 받는 평가는 그래도 다른 문인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가 어떤 평가를 받던 신경림에게서 연출된 이 책 두 권은 그래도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그는 최근에 한겨레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 올리고 있다. 그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의문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주를 얘기하는 시인은 그 어느 곳을 상관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고(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