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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읽고......

갈돕선생 2005. 12. 29. 22:39

손에 쥐기 편하고 가벼운 150쪽짜리 책.

엠비씨 방송국이 선정하여 보급한 책.

황석영이라는 당대의 이름 난 작가의 책.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갈색 그림과 어우러진 책.

할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고 덜 익은 채 펴낸 책.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어릴적 잔상들을 모아 놓은 책.

이렇게 간단히 얘기하면 될까.

지난 달부터 미니시리즈 감상하듯 '태백산맥'을 천천히 즐겁게 읽고 있지만, 늘 그렇듯 한국전쟁 이전과 그 이후의 우리 민중들의 삶은 여러 갈래로 여러 시각으로 각기 다른 사람에게 다른 시각으로 각색되고 꾸며지고 있는 그 시대,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늘 쓸쓸함과 애절함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로 태어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계 지워진 삶에 내동그려 진다는 자체부터 이미 그는 사람의 모습을 벗어난 상태, 아니 사람의 모습을 포기한 상태가 되어 버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후 생존의 터전을 잃고 어느 후진 동네의 다리 밑 거지 생활을 하는 부부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하는 '꼼배다리', 전후 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불확실한 세상과 미래를 살아야 하는 어느 혼혈 소녀 이야기 '금단추', 전후 아이들의 놀이와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지붕위의 전투'와 '도깨비 사냥' 그리고 '친이 할머니', 당시 어른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삼봉이 아저씨', '내 애인', 전후 화상을 입고 얼굴이 흉직해져 버린 어느 월남출신 전역 군인과 한 여인의 스치듯 지나치는 인연을 보여주는 '남매',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상처받고 죽어버리는 어느 부부의 삶을 얘기하는 '잡초'.

이 이야기들 모두 아직도 한 동안, 황석영씨의 말을 빌자면 귀퉁이가 닳아빠진 도화지에 남아 있을 그 시절의 풍경이 우리 역사에 오랫동안 짙게 그려져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아니 반드시 기억하여 남겨 놓고 두고 두고 우리 현대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실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닳아빠진 도화지 귀퉁이를 잘라내고 깨끗한 액자에 걸어 놓고는 이곳 저곳에서 누구든 바라보게 해야 할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많이 쓸쓸했다. 그리고 슬펐다.

출처 : 부산교대 맥
글쓴이 : 박진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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