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병률의 '서른살 경제학'을 읽고......
대학시절 뭣도 모르면서 '정치경제학 원론 1'을 펼쳐들고 뭔가 아는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 경제학 원론 2'를 읽겠다고 사 놓고는 지금은 어디다 버렸는지 찾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경제학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몇 년 전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라는 책을 읽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읽을 때는 이해하겠는데, 책만 덮으면 뭘 보았는지 머리에 남은 것 같지 않아 또 한 번 읽었더랬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가 알려준 정보로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도 사 보았다. 경제학도라면 꼭 읽는다던 그 책을 보고 참으로 경제학이라는 것이 유쾌한 학문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정치 경제학 원론이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알게 해 주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면,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비판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를 보는 안목을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거시적인 안목을 키우게 해 주었지만, 내 삶에 와 닿지는 않았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면 이제 경제정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제공되어야 할 생활요소가 되고 있다. 주식과 증권, 산업활동동향과 물가지수 따위가 끊임없이 얘기되지만, 그것이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큰 돈에 욕심이 없을 뿐더러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과 맞벌이라는 경제적 환경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우연히 신문과 인터넷에서 30대를 위한 생존 경제학 강의 '서른살 경제학'이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고 그러려니 하던차에 도대체 세상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 '경제'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한 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려 했다.
이 책을 지은 유병률이라는 사람은 나와 동갑 68년생으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경제 최일선에서 보고 읽고 느꼈던 것을 정리한 책이다.
주제도 재밌다.
1장 경제학을 아는 30대는 전략에 강하다.
2장 경제학을 아는 30대는 경영을 안다.
3장 경제학을 아는 30대는 돈의 길을 본다.
4장 경제학을 아는 30대는 불황을 예측한다.
5장 경제학을 아는 30대는 고령화시대가 두렵지 않다.
6장 30대가 알아야 할 두 나라, 겁 없는 중국과 잘난 미국
이 책을 정치경제학원론이나 경제학 카페와 같은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금물이다.
그야말로 실물경제, 생활경제에 입각한 서술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어떤 전략으로 상품 판매를 하고 있고, 대형할인매점의 판매전략과 그 이론, 아울러 결코 경제학 이론을 무시한 전략은 실패한다는 훈계도 빼놓지 않고 있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의 책상에 항상 올려져 바이블처럼 다뤄지는 책이 바로 경제학원론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기초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물론 사업을 하거나 경영을 하거나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짜낼때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서 우리 교육현장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우리네 학교 교장과 교감들은 그들 책상 위에 무슨 책들이 놓여져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을 보던 중 결재를 맡으로 빈 교장실을 찾았던 적이 있다. 교장선생님 책상 위에는 몸에 좋은 마늘 이야기가 잔뜩 있는 책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교사들은 또 어떨까. 교육학과 이미 결별을 선언한 것처럼 그들에게고 교육학원론은 시험과목때나 보는 책이지 않을까. 이론과 실제가 너무도 분리되어 있는 우리 현장 속에서 철학은 없고 어설픈 소신들만 난무하지 않는지 반성할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재밌는 경제상식도 적지 않게 얻었다.
이제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 이제는 펀드. 이제 저성장으로 들어서고 인구 고령화에 직면하여 젊은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라는 것. 모기지론이 지금 한창 유행인데, 역모기기론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고령화시대 생존전략 중 하나라서 유심히 지켜 보았다.
특히 인구고령화와 저성장시대를 내다보며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가 하는 점에서 다분히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 그의 얘기에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밖에 산업활동동향을 읽는 법, 콜금리의 정확한 개념, 정부의 돈풀기 따위의 생활경제 상식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늘 들으면서 다 아는 것 같이 생각했던 상식이라는 것이 매우 밑천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앞으로 경제면을 제대로 알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마지막 장,중국과 미국 얘기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을 싸고 수준 낮은 나라로 보지 말라는 경고. 그들과 장사하려면 고가품 전략이 필수적이며 끊임없이 성장의 동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 흔들리고 있지만 적어도 20여년간 끄떡없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미국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적절히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얘기들. 미국의 성장은 끊임없이 받고 있는 이민자들에 의해 지탱이 되고 있다는 색다른 시각도 볼 수 있었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은 그도 전제를 했지만, 지금 이렇게 간다면.....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거다. 그는 유럽연합과 일본의 경제하락을 예견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그렇게 가만히 앉아 그들의 불행한 모습을 그들 스스로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 미국식의 신자유주의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그가 장담한 양극화, 우리가 우려하는 그 양극화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고 극복되어야만 할 것인가. 사회운동세력과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 나갈것인가 뭐 이런 얘기는 일체 언급도 없고 그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서른살 경제학이라는 책은 이래저래 한계가 많은 책이다. 그래도 이 책이 세상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건 그만큼 우리 현실이 답답하고 경제적으로 살기 버겁다는 증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