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업선생님의 '국어교육의 길'을 읽고......
2006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충북 제천 세명대학교에서 '전국국어교사 겨울연수'가 있다. 주제는 '우리 손으로 만드는 국어 교과서'다. 교과 쪽에는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르는, 교사인데도 교과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이번 연수에서 많은 걸 얻으려 한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다. 드러나 있기로 나는 전국초등국어교사모임 김해대표이지만 단지 길을 연 대표이지 국어교육에 대해 솔직히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저런 자료와 책을 뒤적여봐도 내가 얼마만큼 알 수 있는지 나도 모른다. 10여년 글쓰기 교육이라고 흉내를 내보고 문집도 내며 상도 타 보았지만, 국어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번 연수는 그러한 어정쩡한 내 모습을 바르게 바꾸어 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답답함과 걱정이 가득찬 상태로 연수에 가기는 정말 싫었다. 프랑스교육과정을 우리네 국어교육과정의 본으로 삼고자 한다는 얘기에 그 자료를 읽어보아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계간지 겨울호에 실린 여러분들의 교육과정 얘기를 읽어도 딱히 교과서를 만들려면 어떤 생각으로 내 머리 속을 정리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몇 달 전에 사 놓고는 어렵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때문에 손도 대지 못했던 김수업선생님의 '국어교육의 길'에 손을 대었다. 사실 책도 까맣고 무거운 느낌이 어느 누구라도 손 쉽게 책을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것 같지 않은가. 다음 판 인쇄때엔 책 표지 색깔과 디자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아무튼 난 이렇게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꼭지로 국어교육의 길을 찾고 있다. 대강을 잡아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국어교육은 무엇인가
둘째, 국어교육은 왜 하는가
셋째, 국어교육은 무엇을 하는가
넷째, 국어교육은 어떻게 하는가
첫 꼭지 국어교육, 무엇인가에서는 말이 무엇이며 국어가 무엇인가, 무엇이 교육인가, 무엇이 국어교육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입말과 글말에 대한 그 본 뜻을 알 수 있었고,
두번째 꼭지에서는 국어교육, 왜 하는가를 교육과정, 교육현장, 바람직한 목표, 뒤따른 결과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얘기하고 있다. 즉, 뚜렷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우리네 국어교육 목표를 <국어를 알도록 하는 것>과 <국어를 살도록 하는 것>으로 잡고 학교나 학년에 따라 구체적으로 목표를 따로 마련하는 일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아가 달라져야 할 것은 목표가 아닌 내용과 방법이라 얘기하고 있다.
세번째 꼭지에서는 그 내용을 밝히고 있다. 네 가지로 나누어 잡고 있는데
일상 국어의 삶
일상 국어의 앎
예술 국어의 삶
예술 국어의 앎이다.
일상 국어의 삶이라는 영역을 교육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날의 국어를 더욱 잘 살도록 해 주는 것이고, '더욱 잘살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국어를 '더욱 정확하게', '더욱 쉽게', '더욱 규칙에 맞게', '더욱 아름답게' 쓰도록 해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욱 정확하게'<말하고>, '더욱 정확하게'<듣고>, '더욱 정확하게'<쓰고>, '더욱 정확하게 <읽도록>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처럼 <말하기>와 <듣기>와 <쓰기>와 <읽기>라는 일상 국어의 삶을 골고루 '더욱 쉽게'하고 '더욱 이치(문법)에 맞게'하고, '더욱 아름답게' 하도록 해 주는 것이 국어교육의 몫이라는 말이다.
일상 국어의 앎이라는 영역을 교육한다는 것은 국어를 더욱 잘 알게 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게 한다는 뜻이다. 일상 국어를 알게 하려면 시간 안에 흘러가며 바뀌는 국어의 모습을 살피는 교육을 서둘러 들여와야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 보면 일상 국어의 앎의 영역에서는 국어철학, 국어 문법, 국어 역사를 다 다루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국어철학에서는 말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의사소통을, 말의 비밀을 살펴보는 말의 세계를, 말과 사람과의 관계를 살피는 말과 삶을 다루어야 한다. 다음으로 국어 문법에서는 소리와 글자, 낱말, 월을 다루고, 국어 역사에서는 입말의 시대, 입말과 글말의 시대, 입말과 글말, 전자말의 시대를 다루어야 한다.
예술 국어의 삶이라는 영역을 교육하다는 것은 국어를 통하여 예술 세계를 '체험'시킨다는 말이고, 이것은 곧 국어를 예술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음으로써 감각의 반응을 거쳐, 감정을 일으키고, 정서를 변화시키게 한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국어교육이 해야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예술 국어의 앎의 영역을 교육한다는 것은 적어도 고등학교 단계에서 국어 예술인 문학에 대해 지적 체계를 갖춘 앎의 대상으로 접근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함을 말한다.
마지막 꼭지에서는 국어교육,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교사양성과 임용, 관리, 교재(주교재, 부교재, 보조교재)를 얘기하고 구체적인 국어교육을 배움을 중심으로 하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데서 시작하며, 내용에 어울리게 가르쳐야 하고, 지필평가를 폐지하고 국어의 본 뜻이 살아나게 하는 평가로 '앎'에 대한 영역은 입말과 글말로 드러내는 것을 직접 평가해야 하며 삶의 영역은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그대로 관찰하여 알차게 기록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나같이 무식한 교사도 국어교육의 길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어설픈 정리 보다 훨씬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그 모든 길을 친절하게 말씀하신 김수업선생님의 국어얘기는 직접 책을 읽어야 제 맛일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어설픔 속에서도 현재 교육과정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언어>, <문학>으로 나눈 것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지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김수업선생님은 쉽게 말해서 <언어>에서도 <말하고, 듣고, 쓰고 , 읽기>를 다룰 수 있고, <문학>에서도 <말하고, 듣고, 쓰고, 읽기>를 다룰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영역을 같은 수준에서 얘기하고 교과서를 만들때 다루어진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 지적한다. 이른바 밥그릇 싸움이 휑휑하는 우리네 국어과 사람들때문에 정작 제대로 우리 말을 살려내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엄두를 못내고 누더기로 만들어진 채로 우리 아이들과 교사들 손에 쥐어주는 것에 아주 못마땅해 하셨다.
국어교육의 길을 찾는 온전한 길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제대로 바꾸어 놓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며 하루빨리 우리 아이들의 처지에서 생각하여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보고 가꿀 수 있도록 우리 국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많은 교사들이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씀 하신다. 이 밖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국어교과지도가 말도 안되는 엉터리였고 아이들의 입말과 글말을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다는 반성, 아이들에게 예술 국어의 삶을 제대로 체험하게 해 주지 못하고 재미없는 수업만 했구나 하는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교사들이 직접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과 정당함, 그 과정에 많은 실천과 공부가 뒤따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음 번에 우리 김해초등국어교사모임 선생님들과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가며 국어교육의 길을 제대로 찾아 보아야겠다. 이번 연수 걱정을 조금은 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