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한 여름 여행
7월부터 계획한 갈돕아이들의 여름여행을 오늘에야 치룰 수 있었다. 이번 여름여행은 조금 다르게 했다.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지 못할 상황이나 우리 반에서 학력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우선 여행대상으로 삼았다. 대충 여섯명으로 좁혀져 내 차에 가득 채워 여행을 가고자 했다. 이틀 전에 다시 연락해 오늘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9시에 만났다. 유경이가 조금 늦게 부모님과 함께 찾아왔다. 과일을 가져다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다만, 그 과일을 다 먹지 못하고 돌려 보낸 것이 조금 미안했다.
여행 장소는 밀양지역 전반이었다. 먼저 얼음골을 찾았다.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그며 소리지르고 다니는 아이들 다잡느라 진땀을 뺐지만 참 보기 좋았다. 얼마나 좋겠는가. 얼음골까지 올라가서는 찬바람이 나오는 것이 에어컨 같다며 말하는 모습들이 마치 참새 같았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물놀이를 즐기다보니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얼음골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히고 곧바로 표충사로 차를 돌렸다.
표충사에 도착할 즈음에 강한 햇빛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 했다. 하지만 사천왕문을 들어서자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표충사 삼층석탑이 천 년이나 됐다는 말에 입을 벌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탑을 보는 모습들이 귀엽기만 했다. 잠시 뒤 맨 안 쪽 관음전에 아이들 모두가 들어가 부처님 앞에 앉아 조용히 절도 하고 다소곳이 있는 부처님 주위를 둘러 보기도 했다. 4학년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불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표충사에서 나와 밀양댐으로 가서 댐을 직접 보게도 해 주었다. 모두 댐은 처음 본단다. 커다란 댐과 물이 가득한 그 안에 마을도 있었다는 말에 매우 신기해 했다. 그러자 "그럼, 저기 저 섬처럼 생긴 곳이 예전엔 산이었겠네요."라며 이해의 폭도 넓혀 갔다. 조금은 피곤해 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표충비각으로 차를 돌렸다. 이왕 온 김에 두루 두루 살펴보게 해주고 싶었다.
'땀 흘리는 비석'이라는 말에 어서 가자 난리였다. 막상 찾아간 곳의 비석은 커다란 일반 비석이라 별 것 아니다라는 분위기였는데, 기념품 판매대에서 파는 사진 속에 땀을 흘리는 비석을 보고는 엄청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불러대기 바빴다. 무더운 여름 날씨가 다들 조금씩 힘들어 했다. 빨리 서둘러 영남루로 가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싶었다.
아이들과 영남루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였다. 영남루에 올라갔을 때 그 시원한 바람은 아이들 말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선생님, 여기 왜 이렇게 시원해요." 그래서 피곤해 하는 아이들 보고 누각에 누워 보라고 했다. 참 편안한 모습이었다. 실수로 이곳 영남루에 올라설 때 차 속에 사진기를 놔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영남루에서 내려와 곧바로 밀양시립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사실 밀양시립박물관은 보잘 것 없는 곳이다. 최근 새롭게 건물을 짓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빨리 새롭게 단장이 됐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것에 관계 없이 신기한 눈으로 옛 밀양의 모습과 여러 문화재들을 관심을 가지며 질문도 하고 생각도 하며 둘러 보았다. 박물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랑각을 둘러 보고 아랑의 전설도 들려 주었다. 방송에서 들었다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랑각 분위기가 무섭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다들 흥미롭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제 모든 여행을 마치고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으로 갔다. 아무래도 찬 것을 많이 먹은 아이들이라 배탈을 염려해 따뜻한 음식을 찾았다. 밀양 돼지국밥도 생각을 했는데 장소가 멀어 가까운 삼계탕 집을 찾았다. 주인이 불친절해서 탈이지 맛은 아주 좋은 삼계탕 집이어서 밀양에 있을 적부터 찾은 곳이었다. 아이들 여섯을 데리고 들어가자 아주머니들이 신기해 한다. 애들이 삼계탕 한 그릇씩을 다 먹겠냐는 눈치였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창우를 빼놓고 모두 삼계탕 한 그릇을 거뜬히 해 치웠다. 마늘과 고추도 잘 먹는 녀석들이 참 보기 좋았다. 공부는 잘하지만 음식 가리고 따지는 녀석들 보다 훨씬 좋았다. 음식 먹어가며 이런 저런 농담도 던지며 즐겁게 삼계탕을 먹었다.
이제껏 나와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은 잘 사는 아이들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 부모님들이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여행에 시큰둥한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통해 설득하게 했고, 그 설득에 앞서 반에서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았던 아이들을 챙겨주는 교사가 고마운 듯 이것 저것 챙겨 보내주는 부모님들때문에 내 마음도 무척 기뻤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 '스승의 은혜'라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 홍보행사 중에 지난날 교사와 안 좋은 추억 거리 올려 주면 그 중에 몇을 뽑아 상품인가 시사회 관람권인가 주는 것이 있었다. 그 곳을 찾아 댓글을 훑어 보니 교사가 죽일놈이 돼 있어 안타까웠다. 꼭 그렇지만도 아닐텐데, 내 일도 아닌 것에 내가 섭섭해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곧바로 나왔다. 그렇게 나오기 전, 글 하나 가운데 교사가 데리고 가는 방학 여행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갔다는 어느 누구의 글에 눈이 갔다. 혹, 나도 그런 눈총을 받지는 않았을까. 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자신은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괜한 걱정도 들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아이들, 소외된 아이들,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대한 관심을 좀 더 갖자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도 교사로 내 자신이 한 뼘 성장을 하지 않았나 싶다. 문득 사토 마나부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공)교육이 서비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공)교육은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