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8시에 공항에 도착할 김중미선생님을 마중하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막혀 조금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김중미 선생님을 만나러 가면서 나는 그분은 어떤 분일까 생각해 보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작가는 과연 어떤 분일까.
내가 본 작가 김중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 나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다가설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수줍음도 많고 큰 인기를 얻었던 작가라기엔 무척 겸손한 분이었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의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분은 더 낮은 곳에서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이셨다. 말이 앞서는 것이 아닌 몸으로 말이다.
입담이 없고 재담도 없다며 혹 선생님들이 지루해 하실까봐 걱정이라는 김중미선생님의 강의가 시작하고 시간을 넘길 수록 결코 지루하거나 무겁다고 느낄 수 없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다른 세상에서 자신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상처받고 힘없고 약한 아이들과 더불어 사시는 김중미 선생님의 솔직한 모습에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아파트에 살고 도시에 살며 그리 어려움없이 살아가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비친 김중미 선생님을 둘러싼 또 다른 삶의 모습은 아마도 많은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분들이 김중미라는 작가의 삶을 보면서 우리네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그 세상을 통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나의 삶을 되살펴보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김중미선생님은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부산에 있다며 나하고 점심을 드신 뒤 바로 떠나셨다. 택시를 타게 해드리러 시외버스터미널쯤에 내려드릴쯤 김중미선생님이 강화에 오거든 꼭 연락하라 하시며 밝게 웃어주셨다. 그 답을 듣고 얼마나 고맙던지.... 나 또한 강화에 꼭 한 번 가겠노라 말씀드렸다.
다음 강좌는 노래꾼 백창우. 그를 아는 그리고 그의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즐겨 부르는 교사들에게 그는 일종의 우상(?)이기도 했다.(혹, 나만 그랬나?) 어제 나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어 좋았고 우리 아내와 아이가 함께 저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더욱 즐거웠다. 백창우아저씨의 노래를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아이 태석이도 무척 신기해 했다. 어제 헤어지며 백창우아저씨라 꼭 안고 포옹을 했던 기억이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우리 태석이 마음에 남아 있으리라.
그렇게 편한 사람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 백창우가 이곳 김해에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스스로 저녁시간에 더 빛을 발한다는 백창우씨는 정말 그나름대로 준비한 이야기로 3시간을 넘게 선생님들과 호흡을 했다. 이따금 던지는 농담으로 혹 지루(?)해 질 듯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고 잘 알려진 노래들을 함께 부르며 아이들을 읽어내는 방법을 오히려 우리 교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이 어릴 적 어땠는지를 되돌려 기억해 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이어 교과서 속에 담긴 동요들의 문제점과 교과서를 집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래서 동요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아이들 노래를 만드는 그의 생각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마지막이라며 무려 40분을 이어간 이야기는 우리 선생님들이 진정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많은 선생님들이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참교육자가 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후 서울서 어렵게 내려와주신 우리교육 편집부장 김기언부장님을 모시고 인사를 드릴 시간을 가졌다. 2박 3일 잠도 못자며 마감을 하고 피곤을 무릎쓰고 이곳 김해까지 달려와준 김기언 부장님께 이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연수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교육과 손을 잡고 6개월간 우리교육측과 긴밀히 연락해 추진된 연수였다. 아무래도 몸으로 뛰어야 할 이곳 김해가 훨씬 바빴는데, 더구나 내 수족이 되어줄 사람들이 1정 연수에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연수때가 되면 될수록 힘들어져갔다. 다행히도 무척 다행히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옆에서 함께 뛰어주어 일을 잘 치뤄낼 수 있었다.
이번 연수를 준비하면서 멀리 서울서 내려오시는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다소 피곤해 하시는 그분들을 보며 정말 지역에서 이런 연수를 갖는 것이 힘들구나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선생님들로부터 설문지를 되돌려 받아 읽어 내려가면서 정말 이번 연수가 100% 만족을 준 연수였구나 하며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이런 연수를 이곳에 가져오는 것이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시는 듯 했다.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그분들의 기대가 그래서 더욱 부담스럽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분, 심지어 2주동안 이어지더라도 제대로 모든 교과를 연수받았으면 하는 분, 다양한 연수형태를 요구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 요구를 다 받아들이기엔 이 지역은 서울서 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사들의 심리적 거리가 더 큰 걱정으로 다가섰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것이 멋진 지역강사들의 출현이다. 그저 받아가기만 하고 내 교실 속의 테크닉으로만 남아있는 수준의 실천은 아무것도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내 교실을 넘고 우리 학교를 넘고 지역을 넘는 수준의 실천. 그 실천은 결코 혼자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모임이 필요하다. 어느 분은 설문지에 학교단위의 모임이 더 중요하다 하셨다. 물론이다. 그걸 모를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 실정상 어느 학교에서나 학교단위의 모임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만나 다시 학교 현장속으로 가져가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의 교사모임은 그 범위를 넓혀 나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우리 모임 선생님 네 분과 함께 어제 연수 뒷정리를 하고 곧바로 전국국어교사모임 대안교과서 집필자 회의에 참석하러 대전 목원대를 찾아야 했다. 전국에서 모인 지역 선생님들이 각기 준비한 안으로 우리가 가기 전까지 무려 7시간이나 토론을 하고 있던 터라 늦게 간 것이 무척 죄송스러웠지만 우리를 맞는 그분들은 여전히 따뜻했다. 밤 12시를 넘어 새벽을 꼬박 새울 때까지 진지한 얘기들, 즐거운 얘기들, 흥겨운 얘기들과 노래 춤까지 정말 이들이 교사구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다시 이곳 김해로 내려와 이렇게 연수 마무리 글을 쓴다. 어제 써 주신 선생님들의 설문지를 훑어 보며 뿌듯함, 걱정, 흐뭇함들을 느낀다. 그러면서 김해 지역 세 분의 선생님들이 우리 모임에 들어오신다는 표시를 해 주셨다. 부산 분이 한 분 있었고 창원지역에서도 한 분, 그리고 창원에서 김해로 넘어오면 반드시 들어오시겠다는 분 두 분.......무척 고맙다. 올 2007년. 그분들과 함께 새롭게 모임을 꾸리고 행복하게 지내려 한다.
연수 준비와 과정이 무척 힘들어 자주 하겠다는 장담을 우리 선생님들에게 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우리 지역에서 또 많은 선생님들과 행복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멀리 이곳을 찾아주신 신명기, 정애순, 최은희, 김영애, 김영주, 송언, 조성실, 심성우, 장동선, 김중미, 백창우 선생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수에 참가해 주신 120명의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올 2007년, 부당한 교육권력에서 아이들 편에 서 주시고 아이들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전교조를 믿어주시고 사랑해 주십시오. 아직 희망을 놓기엔 이른 조직입니다.
우리교육이라는 잡지도 많이들 봐주십시오. 선생님들을 위한 훌륭한 잡지가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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