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옮긴 데다 6년만에 작은 학교로 옮기면서 새롭게 겪는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가장 힘든 건,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문과 그것에 춤추는 학교교육과정이었다. 교사들의 업무감축안들이 해마다 제시되지만, 오히려 점점 일은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이번에 당선한 경기도 교육감에 이어 이곳 충남교육감 예비후자들마저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잡무를 없애겠다는 사항을 공약에 넣었을까?
교육청에서는 각종 행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학교는 그것에 춤출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관리자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늘 현장에서는 관리자들과 교사들간에 업무로 다투거나 의견충돌이 잦다. 그러다 보니 학교들은 보통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성장시킬 것인가, 새로운 프로그램은 없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교행정보다는 어떻게 업무를 실수하지 않고 제시간 안에 충실하게 해 낼 수 있을 지를 먼저 걱정한다.
더구나 큰 학교의 업무량이나 작은 학교 업무량이 차이가 없는 현실에서 작은 학교의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고 그들이 말하는 아이들의 학력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실정에 있다. 교사들만 닦달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자명한데도 교육관료들은 모든 책임을 교사들에게 떠넘기도 책임을 피하려 한다.
지난 두 달 간 나는 이런 상황을 온 몸으로 겪었다. 작은 학교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지난 6년 전과 지금은 너무 달랐다. 아이들도 세월만큼이나 달라져 있었는데, 6년 전 작은 학교가 IMF 후유증을 앓았다면, 지금은 경기침체는 물론, 소득 감소와 비정규직에 허덕이는 부모의 삶으로 아이들 삶마저 흔들리는 경향들이 짙었다. 그나마 괜찮은 소득과 가정배경이었던 김해 학교 아이들의 삶과 우리 반 아이들의 삶은 그렇게 달랐다.
반갑고 따뜻한 첫 만남이후, 나는 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그들의 삶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고 이해해 주어야 할지, 그래서 그들 곁에서 어떻게 살아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 때로는 지치고 매우 힘들었다. 때로는 게으름도 피웠다. 내 삶의 리듬조차 잡지 못하자 헷갈리는 일도 많아 곧잘 아이들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늘 그랬지만, 상처가 많고 잃은 것이 많은 아이들은 자기 모습을 쉽게 잘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자기 모습이 어떤지를 모르고 마냥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 반 아이들 가운데 절반은 한 부모 가정이거나 마음에 상처들이 하나씩은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들일 수록 학습에 관심이 없고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일기를 쓰라면 늘 게임이나 먹는 얘기와 의미없는 이야기들로 칸을 채워나간다. 농촌아이들이라도 자기 삶을 잃고 사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다행히 두 달 가까이 지나면서 몇몇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열고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춤추게 하고싶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