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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갈돕선생 2009. 4. 21. 16:11

도시 아이들과 살 때도 느꼈던 일이지만, 이곳 시골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무척 적다는 거다. 우리 아이들 열 다섯 명 가운데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은 다섯 가정 뿐이다. 2/3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손의 흔적이 아이들 삶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습면에서 생활면에서 무기력하거나 학습결손이 많아 당해 학년 교육과정을 따라하기 힘든 아이들이 많다. 돌봄을 받은 아이들도 기초가 부족해 일기를 쓰는 것조차 처음부터 다시 지도받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 교장선생님은 2년간 맡았던 선생님들 탓으로 돌린다. 과연 그분들만의 책임일까? 내가 보기엔 시범학교다 뭐다 해서 이 작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운영하지 않았던 관리자의 책임도 만만치않아 보였다. 실제 수업에서 얻어내고 밝혀내고 채워내야할 것을 각종 대회다 시범학교다 해서 보이는 결과로 교육과정을 꾸려나갔던 이른바 교육자들의 책임이 커 보였다. 덧붙여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1차 책임자인 가정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거의 내버려두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무조건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돌리기엔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모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었다.

 

요즘 교육의 새로운(별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화두는 '배움'과 '돌봄'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라는 글에서 '사람은 자신을 돌보고 아이들을 돌보고 반려자를 돌보며 친구나 연인을 돌보고 노인과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돌보고 생물들을 돌보고 자연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평범한 돌봄의 진리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먼 삶으로 보인다. 가정의 돌봄이 부족하다면 학교에서 돌봐져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 곁에서 사는 일, 즉 '돌봄'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에 있다. 참으로 거창하고 실천범위가 학급단위를 벗어나야 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나에게 당장 급하고 가능한 일은 우리 반 아이들 곁에서 살며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지난 4월, 나는 이 고민이 먼저 앞서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한 아이씩 만나 그 아이들의 삶을 함께 나누려 하고 있다. 어제는 우리반 규민(가명)이를 따로 만났다.

 

"규민아, 너 공부하기 싫니?"

"아니요?"

정말 싫지 않은 것인지, 내가 물어서 억지로 대답한 것인지는 않지만, 의외의 답이 나왔다. 규민이는 학습과 관계된 모든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규민이가 해온 과제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넌 왜 아무것도 안하려고만 해?"

"........."

"선생님이 아직도 널 모르는 것 같구나. 저번에 잠깐 이야기는 나눴는데, 오늘 규민이 너를 좀 알아야겠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어려운 대답이겠지만 집안 사정을 선생님에게 속시원히 말해주면 어떨까?"

"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고 했지?"

순간 규민이는 눈물을 흘린다. 지난 번에도 그랬다. 우연히 어머니 얘기가 나왔을 때, 규민이는 서럽게 울었다. 그제야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됐다. 늘 밝게 웃으며 친구들과 장난을 많이 치고 수다도 떨었던 아이라 이런 면이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내가 또 그 상처를 끄집어 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규민이를 알아야 했다.

"네. 내가 여섯살 때 이혼하셨어요."

"어머니 얼굴은 기억하니?"

"아니요."

"어머니와 연락은 되니?"

"아니요."

아이는 더 큰 눈물을 흘린다.

"그럼, 지금 할머니와 동생하고 사는 거네. 아버지는 멀리 일나가셨다고 했지? 얼마만에 집에 들어오시니?"

"한 달에 두 세번요."

"할머니는 건강하시고? 연세는?"

"예순 여덟되셨어요. 다른 집 딸기농사나 이런 저런 일 하고 사세요."

규민이는 외로운 아이였다. 나이드신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힘들게 돈을 벌어 생계는 유지하는 규민이 식구들이 규민이를 따뜻하게 보살필 가능성은 당분간 힘들어 보였다. '돌봄'의 철학은 규민이의 삶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규민이를 책임지고 돌볼 책임은 어쩌면 담임인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돌봄'을 진정 '돌봄'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는 일상이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학교, 배움과 돌봄을 실천해야 할 교사.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 규민이는 나랑 약속을 했다. 오늘 집에서 텔레비전 안 보기. 선생님이 준 책읽어오기, 일기쓰기.

누구에게도 텔레비전 적게 보고 책 좀 보라는 평범한 어른들의 잔소리조차 듣지 않았던 규민이에게

오늘 나는 그 평범한 일상들을 돌려 주었다. 모쪼록 그 일상에서 자기 모습과 삶을 찾아가는 규민이가 되길 바란다. 딸기농사 거들어 주시며 살림하시는 규민이 할머니가 모처럼 짬뽕으로 규민이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규민이의 일기 하나 올려 본다. 무엇을 써야 할 지 모르던 규민이가 며칠 전, 모처럼 자기가 사는 모습 하나 짧게 보여 주었다.

 

짬뽕 먹기 | 김규민

2009년 4월 20일 날씨: 비가 내렸다.

 

할머니가 짬뽕을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전화기를 들고 114에다 전화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반곡에 있는 황금반점이요."

"네, 알겠습니다."

"황금반점 전화 번호는 000-0000입니다. 바로 연결하실 거면 1번을 누르십시오."

나는 1번을 눌렀다. 황금반점 아줌마가 말하셨다.

"반곡에 있는 황금반점입니다."

"신흥리 2구 마을회관집 짬뽕 두 그릇만 갖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갖다 드리죠."

할머니가 허리에 묶여 있는 돈 주머니를 꺼내 돈을 주었다. 황금반점 배달하는 아저씨가 오셨다.

"짬뽕 왔습니다."

오늘 할머니 덕에 짬뽕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