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에 오면서, 내가 살던 곳을 떠나오면서 각오했던 일이 있다.
일 많은 학교에서 견디는 거. 그래도 아이들 놓치지 않는 거.
웬만하면(?) 직원들과(특히 관리직) 사이좋게 지내는 거.
그랬다. 정보에다 도서, 6학년까지 건네 받아도 견뎠다.
그래서 수시로 쏟아지는 수많은 공문과 보고문서들, 각종 계획서들 다 견뎌냈다.
학교에 오는 거의 모든 공문을 공람하도록 만들어 놓은 이상한 충남교육청 전자문서시스템에도
적응하면서 아이들 놓치지 않으려 마치 줄타기 하듯 두 달을 넘기며 살았다.
그런데, 겨우 한 달을 넘기면서 나는 집요하리만큼 아이들 삶과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사명감에 차 업무처리에 매진하는 두 관리직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늘 외부행사였고 학교시설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인 강당에서조차 그동안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지 못하고 체육을
하고 있었다.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 하나였는데, 그 어떠한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조건 아이들에게 맨발이나 실내화를 신고 체육을 하게 했다.
이해 못한 나는 운동화 신고 강당에서 체육을 강행했고, 교감선생님과 부딪쳐야 했다.
그 결과 곧 우리 아이들은 강당에서 운동화를 신고 체육을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욱 서글픈 건,
지금껏 아무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보려는
교사가 없었다는 거다.
많은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반 아이들도 시험점수는 매우 낮다. 강제로 치러진
이번 일제고사에서 우리 반 절반이 교과마다 조금씩 걸려 미도달로 낙인이 찍혔다.
굳이 시험을 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일제고사는 성적표까지 내 주며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공부를 못한다고 낙인을 찍어 버렸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니 한편으로는 우습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 낙인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노는데 익숙해 있던 아이들에게 시험성적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던 것 같았다. 더구나, 그동안 숱하게 수업보다는 각종 대회와 행사에 동원되었던 터라
교사들에게도 제대로 알찬 수업을 받지 못한 복합적인 이유로 아이들은 이미 학습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데도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또다시 합창대회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까지 합주로 몇 안되는 아이들을 온통 대회로 쏟아부어서
안정된 수업과 학급운영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동료교사들에게 듣고 나는
교장선생님을 찾아 정중하게 제고해주셨으면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가르치는 선생님도 힘들어하고 아이들도 싫어하는데도 합창부는 운영됐다.
아침시간을 통째로 쓰겠다는 걸 겨우 막아냈지만, 오후시간은 막지 못했다.
앞으로도 두고 두고 싸울 일만 남았다.
오늘은 또 다른 이유로 싸웠다. 싸울 성질은 아니었지만, 감정이 앞섰다.
교사의 객관적인 상황을 너무도 쉽게 무시해 버리는 분과 나는 싸울 수밖에 없었고,
나도 모르게 감정을 앞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만날 싸운다.
그들 눈에는 마치 일하기 싫어 투덜거리는 게으름 피우는 교사가 돼 버린 것 같지만,
결국 내가 싸우는 바탕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때문이 아니면, 나는 굳이 싸울 까닭이 없다.
일하는 행정직 교사로 살아가면 그만이니.
요즘엔 아무 것도 하려 들지 않은 아이들과 싸우고 있다. 생각보다 무기력하게 지내는 아이들.
모두 어른 탓으로만 보인다. 나도 그 잘못의 대열에 끼어들까 겁나서일까.
때론 또는 자주 나는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며 짜증이나 내는 무능력한 나에게 요즘 아이들이 작은 기쁨을 주고 있다.
이제 자기 삶들을 조금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 열 두 권의 일기가 모두 그러했다. 나를 대하는 아이들이 이전과 달리 더욱 살갑다.
나는 요즘 만날 싸운다. 싸우다 보면 순간 내가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다.
흥분과 감정이 뒤섞이고 지나치게 정당함을 앞세우며 분노하며
때로는 내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내일도 싸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 반 아이들 열 다섯명 때문이다.
못난 선생님이 게으름을 피우고 짜증내고 화를 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웃어주고 이해해 주는,
공부는 못하지만 착한 마음만은 10점 만점에 10점인 우리 아이들 때문이다.
이번 주 토요일,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가서 지난 주 우리 아들과 보았던 연극을 구경하러 간다.
난생 처음 연극을 본다는 우리 반 아이들 곁에서 나는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싸우면서 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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