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삶이 무너져 갈 때 교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아이들의 기질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다양한 상담기법도 더 이상 소용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삶이 무너질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제 나는 열 세살 먹은 한 남자 아이의 삶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내가 맡은 반 아이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듣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밤 늦게 들어오는 나를 붙잡고 자기 반 아이의 삶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다며
어떻게 하냐고 되묻는 아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 곁에서 그저 숨쉬고 살아가기만 했던 한 아이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소식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아이는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아이였다. 스스로 씻지도 않았고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너무 씻지 않아 온 몸에 냄새가 나고 이를 닦지 않아 구취가 심해 친구들이 멀리하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아이는 씻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따금 전화를 걸어 잘 돌봐달라는 말은 건네도 늘 그때뿐이었다.
가정이 무너지면서 세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던 아이의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이를 챙기는 아내에게 얼마전 '고맙네요.'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평소에 아이의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모든 살림은 할머니 몫이었다.
아이는 삶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아침을 늘 굶고 오는 아이의 유일한 낙은 점심을 푸지게 먹는 거였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몸을 씻고 아침에 학교를 왔다. 며칠 전부터 턱에 난 털이 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는데도 처리하지 않아던 그 털을 가위로 잘라 왔다. 아이의 낯선 모습에 놀란 아내에게 다가온 아이는 상담을 요구를 했다.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아내도 아이도 그저 한동안 멍해 있었다. 아이는 무슨 말을 주절거리는지도 모른채 아버지를 되뇌였고 아내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아이를 달래는 데 급급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버지가 멀리 일을 하러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며 할머니 모시고 잘 살라며 그냥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일방적이고도 갑작스런 통보에 아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무언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러면 다시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아이는 오랫동안 씻지 않았던 몸을 씻기 시작했다.
무능력한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있었고 살림을 챙기지 못하는 할머니지만, 집에 할머니가 계셔 무던히 아이를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 아내도 아이가 들려준 갑작스런 소식에 정신적으로 꽤 충격을 받았다. 우리 아내는 당장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급식소에서 남은 음식을 아이가 저녁거리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씀드려 허락을 받아내곤 이내 음식을 들고 학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아이의 집을 찾았다. 3분 거리인데도 한 번도 찾아보지 못했던 아이의 집을 찾아간 아내는 그저 입을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폐가나 다름없는 집에 온통 찐덕한 먼지로 가득한 부엌과 방을 보면서 아내는 자기 몸을 어떻게 그곳에 넣어야 할지 무척 당황했다. 파리와 모기가 떼를 지어 다니는 좁고 어둡고 더럽기만 방에서 할머니와 아이가 살아왔다는 걸 아내는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괴팍한 아버지때문에 아이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탓이 컸지만, 한 학기동안 새곳에 적응하느라 아이의 삶을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지 못했던 게 영 미안하기만 했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내는 끊임없이 파리와 모기에 시달려야 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할머니는 아들이 떠난 소식을 알지도 그렇다고 모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이따금 딴 이야기를 하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된 아이가 더욱 걱정스럽기만 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지게다는 생각도 했다. 가까운 교회에서 때때로 도와주던 도움을 더욱 더 요청하고 면사무소에 아이에게 지원이 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하고 그냥 떠나버린 아버지의 소식을 얻기 위해 실종신고도 해야한다. 가장 문제는 무너져만 가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붙잡아 주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의 삶을 어떻게 시켜주어야 하느냐다. 오늘도 아내는 아이에게 줄 급식밥을 챙겨 아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된 아이는 어제도 제 때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아이에게 전화를 해 음식을 꼭 챙겨먹으라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아내는 담임이라는 인연을 맺었는데 아이가 졸업한 뒤에도 내 손이 닿을 때까지는 보살펴야 하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쉰다.
아이의 삶이 무너질 때, 정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일까. 어쩌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없는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어떻게 그 아이들을 품어야 할까. 오늘 아내가 어제 써온 아이의 일기를 내게 복사해 주었다. 아이의 글을 읽는 내내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훨씬 다르게 자랐을 아이의 삶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꿈을 꾸며 살아야 할까. 이러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우리 사회와 어른들은 어떻게 돌봐주어야 할까. 답답함과 우울함만 가득하다.
<내 마음 속> 6학년 000
지금 내 심장은 속에서 '아빠'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지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다. 아빠는 밥먹고 있을런지 굶을지 잠은 어디서 자고 아빠도 보고 싶고 아빠만 그런 곳에 가고 일하고 나와 할머니는 아빠가 있을 때 난 돈달라고 투정하고 할머니 도와드리고 일해야 하고 그런 아빠가 멀리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과 뇌가 터질 것만 같다.
아빠의 전화를 받기 전엔 왜 전화했는지만 궁금했다가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빠가 사형이 되는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말하니까 울면서 옛날 아빠를 낳았을 때 이야기만 계속 했다. 아빠의 말투는 고문당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아빠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고 만나고 싶어졌다. 내가 버릴 수 없는 것중에 아빠가 사라지니까 인생이 왜 이따구냐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아빠가 끊을 때 "영철아, 아빠는 죽을 때까지 사랑해."하고 끊었다. 그 순간 너무나도 슬펐다. 다시는 영영 못 돌아오는 것으로 믿었다. 아빠도 가족이랑 있는게 더 나았을 텐데 그 놈에 빚때문에 우리 가족들만 인생이 이렇게 되고 이런 인생은 너무 싫다. 딱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이런 비극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불행을 참아도 이 정도는 감당할 수가 없을 만큼 난 이제 할머니도 돌아가시면 난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난 죽어도 꼭 아빠를 다시 만나서 당당하게 아빠 품에 뛰어들 것이다. 그때까지 아빠가 건강하고 신종인플렌자도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바로 아빠를 만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지금 내 마음 속은 지금 슬픔이 많이 차지하고 아빠만 만났으면 죽어도 상관이 없다.
지금 아빠를 만나기 전에 아빠가 돌아가시면 한이 내 마음 속에 넘쳐 나올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가족'은 그 아무것도 아무리 수억만원을 줘도 못 주는 것이 '가족'이다라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우리 가족들도 친척도 아빠를 찾을 것이다. 아빠만 돌아와 주길 간절히 빈다.(200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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