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국외 연수 이야기

[러시아바이칼여행기] 12부_8월 11일_ 다시 찾은 이르쿠츠크!

갈돕선생 2013. 8. 20. 00:42

어젯밤 먹었던 양고기 수육은 정말 맛있었다. 속이 좋지 않아 많이 먹지 못했지만, 웬만한 쇠고기, 돼지고기보다 맛있는 수육이었다. 오히려 구운 것보다 훨씬 좋았다. 비린내 나지 않은 양고기를 맛보았던 지난밤에는 알혼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별도 볼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바이칼에서 우리가 희뿌연 하늘 아래 바이칼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르쿠츠크 인근에 큰 불이 나 그 연기의 영향 탓이 컸던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산불이 나도 오히려 끄는 비용이 더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할 뿐더러 아예 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비가 내리거나 더 탈 게 없어 끝나기만 바란다나. 박대일 사장의 말이 더 가관이다. 그렇게 큰 불이 나도 또 잘 자라더라는. 그렇게 밤을 보낸 오늘 아침은 흐린데다 비까지 내려 쌀쌀하기까지 하다. 연 강수량 200mm 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비를 맞는다는 것을 행운으로 봐야할지. 물론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가 출발할 시각인 9시 이전에 이미 그쳤으니.

 

 

 

  

아침 9시. 우리는 마침내 알혼섬을 떠나야 했다. 일행들은 떠나기가 아쉬웠는지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와 사진 찍느라 난리다. 알혼에 묵었던 3박 내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주인집 외손녀 다냐와 끼라와 인사를 하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우아직은 우리 일행을 태우고 알혼 항구로 향했다. 덜컹 거리며 먼지를 잔뜩 뿌려대는 차량 안에서 어쩌며녀 다시는 오지 못할 이곳에 속으로 아쉬운 인사를 했다. 배를 타고 육지 쪽으로 가면서 알혼섬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이칼 호수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히 나를 바라보았다. 육지에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리는 차량이 보인다. 서둘러 버스에 탔다. 우아직과 다른 편안함이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떤 세상인지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버스에 타자마자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버스 안 모니터에는 가이드의 안내로 한국 교육방송과 문화방송에서 예전에 제작한 러시아 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잠결에 혹은 이따금 깨어나 러시아의 역사를 다시 읽었다. 아, 정말 이 거대한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자는둥 마는둥 우리는 알혼의 토속민족이었던 브랴트족이 자치구를 형성해 산다는 우스찌아르다 인근의 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브랴트족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궁금했는데, 닭고기 국에 돼지고기만 들어간 만두, 돼지고기를 튀긴데다 치즈를 얹어 놓은 음식에 우리 일행들은 혀를 내둘렀다. 너무나 느끼하고 기름졌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현지식을 즐겨 먹던 일행들도 이번 점심을 먹기는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렵게 점심을 먹고 우스찌아르다 부랴트족 자치구에 도착했다. 국립 부랴트 민속박물관과 그 옆에는 부랴트족들이 펼치는 민속공연이 펼쳐지는 장소도 있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의 안내로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공연장이라고 해야 다른 게 없다. 나무 울타리를 만든 곳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들어가 가기 전에 간단한 의식을 진행했다. 태운 나무의 재로 우리들 이마에 살짝 찍어 액을 물리치는 의식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생업이 따로 있는 순수한 아마추어들의 공연이라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그들의 역사도 들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소비에트 연방시절, 종교와 샤먼에 관계된 모든 풍속과 역사를 말살했던 정책 때문에 사실상 브랴트족의 언어와 역사는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이들이 자신의 역사를 찾아나가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해 보였다. 민속공연에 이어 샤먼의식을 체험하는 경험도 했다. 브랴트족이 살았다는 집에 들어가 샤먼의식을 하는 현지인의 말과 의식을 따르는 과정이었다. 왼쪽에 남자, 오른쪽에는 여자들을 안게 한 샤먼역할을 한 현지인은 이내 나와 이갑순샘을 나오게 해 가상의 부부로 만들어 브랴트족의 전통 옷을 입히고는 이런 저런 의식들을 수행했다. 우스웠던 것은 점심을 먹고 반주 깨나 하고 왔는지 그의 입에서 연신 술 냄새가 나더라는 것. 나름대로 자신의 민족에 대한 역사와 언어를 복원하려 애쓴다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만 보였다. 그래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던 것은 그 사람의 순박한 웃음과 행동 때문이었다. 샤먼의식을 마친 일행은 곧바로 국립 부랴트 민속박물관으로 움직였다. 말이 국립이지 외관과 내부 모두 시설이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열악했다. 그들이 살아온 과정의 사진과 그림, 각종 유적들을 전시하고 담당자의 말을 가이드를 통해 전해 받았지만, 그들이 문화를 읽어내면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쌀쌀하기까지 했던 알혼의 날씨와 달리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의 날씨는 매우 더웠다. 알혼에 있을 적에 최저 10도에서 최고 23도를 오가는 가을 날씨를 즐겼던 탓인지 갑작스러운 더위와 강한 햇볕은 매우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한국의 날씨가 폭염을 쏟아내고 있다 하는데, 어찌 견뎌낼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한 1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우리는 이르쿠츠크에 들어섰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즈나멘스키 수도원과 콜챠크 제독 동상 앞이었다. 내려서자 집시들이 불쑥 나서 우리들에게 손을 벌린다. 가이드는 그들에게 눈도 마주치지 말고 갈 길만 가라 한다. 이곳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1689년, 시베리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여자 수도원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1762년에 타서 사라진 목조건축물 대신 석조 건물로 준공이 되었다 하는데, 이곳에는 시베리아 포교에 지대한 공헌을 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던 이노켄트 대주교의 미라가 안치 되어 있는 곳이기 하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려 했지만, 오늘이 주일이어서 그들의 미사만을 지켜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쿠릴 섬과 알래스카 지역을 처음으로 탐험하여 알래스카를 러시아 국토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는데 공헌한 셀레호프의 묘도 있었다. 이 또한 지금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파노프와 무라노프 등 제까브리스트들과 남편을 따라 처음 이르쿠츠크에 왔던 트루베츠코이의 부인 예카제리나 트루베츠카야의 묘를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이르쿠츠크에 공헌한 점이 많아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한다.

 

 

 

 

 

 

 

  

수도원 밖에는 들어오기 전에 잠시 지켜보았던 높고 커다란 동상 하나가 있다. 바로 콜챠크 제독의 동상. 며칠 전 알혼으로 들어가기 전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안내로 잠시 볼 수 있었던 영화 ‘제독의 연인’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그의 일생을 적자면 너무도 길다. 마지막 황제 니꼴라이 2세를 복원시키는 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콜챠크를 기리는 전국의 독지가들이 힘을 합쳐 세운 동상이라는 것만 밝혀둔다. 동상 건립 후 그에 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하는데, 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제독의 연인’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상영된 바 있다 한다.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재탄생 이후 지금 러시아는 예전 제정 러시아의 부와 영화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허나 그것이 민중의 삶을 짓밟고 자유를 억압했던 황제들을 재평가하는 길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후의 황제 니꼴라이 2세만 해도 광장 앞에서 시위를 하던 농민과 노동자에게 발포를 명했던 사람이었다. 군인조차 나중에는 차마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지 못해 항명하여 혁명의 도화점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나라의 사고방식과 삶의 철학을. 하기야 가만히 돌이켜 보니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남 뭐라 할 것 하나 없다.

 

 

 

 

 

 

 

 

수도원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간 곳은 이르쿠츠크의 이른바 우리로 치면 강남지역에 해당하는 시내였다. 가이드의 안내로 이르쿠츠크의 명동이라는 곳도 가이드의 안내로 차창 밖으로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곳으로 보였다. 그 옆을 지나자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식당이 보였다. 지하 식당이었는데, 이르쿠츠크에서는 꽤 잘 나가는 레스토랑이라 한다. 기름진 음식으로 잔뜩 불쾌해진 우리 일행들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첫 번째로 나온 샐러드가 상큼하다. 이어 붉게 물든 고기 스프, 이것도 이제는 먹을 만하다.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우리로 치면 돈가스 안에 치즈를 넣은 것 같은 음식인데, 양만 많지 영 먹기가 그랬다. 밥이 옆에 놓여 있었지만, 채소류가 없으니 영. 주변에서 가이드보고 단무지 없냐 한다. 오늘 하루 내내 고기다. 뒤에 나온 녹차로 하루 종일 입을 달군 고기의 뒤끝을 겨우 달랠 수 있었다. 우리가 막 식사를 할 무렵, 박대일 BK 여행사 사장님이 오셨다. 내일 일이 있어 우리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 하루를 당겨 왔다는 사장님의 배려가 고맙다. 진지하게 6개월 전부터 박대일사장님과 접촉을 했던 우리 모임의 정성 탓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게 애를 썼건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가이드의 어이없는 장난에 자신들의 이미지만 나빠진 것 같다며 몇 번이나 죄송하다 이해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박대일 사장님이 거의 맡아서 관광을 진행하는 이곳과 달리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관광관행은 매우 후진적이었다. 차마 주변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대표도시 이 두 곳을 찾아가보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무튼 박대일사장님의 진심과 정성, 배려가 돋보였던 이번 이르쿠츠크의 여행이 지난 도시들의 씁쓸함을 단번에 잊게 해 주었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아~ 호텔로 들어오니 지난 알혼의 3박 4일에 더 익숙한 탓일까? 객실이 낯설다. 이제 내일 일정을 마치고 새벽 3시 30분에 인천공항행 대한항공을 탄다. 불과 4시간이면 간다하니 잠 자고 일어나면 한국일 것 같다. 어쨌든 내일도 일정이 있으니 내일 공항에서 일정의 마지막 일기를 쓰려한다. 호텔에 들어와 오랜만에 인터넷에 연결하니 한국 상황이 만만치 않다. 날은 더워 살기 힘들다 하고 그 탓에 전기사용양이 많아져 언제 전기가 끊길지 몰라 긴장상태에 있다는 소식이 보인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촛불집회다. 10만 명이 모인 서울광장을 모른 채 하는 정부당국과 주요 언론의 비겁한 침묵이 가슴 아프다. 작은 민주주의조차 일궈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나라 사랑하라는 이야기가 감히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 할 수 있겠는가. 작은 것에 흥분하지만 정작 분노해야 할 것에 가만히 있게 된 것이 비단 언론의 침묵과 장난 만은 아닐 것이다. 북유럽을 떠나기 전 잠시라도 시대의 외침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봐야 할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가 흔들렸던 데에는 시민들의 외침에 귀를 닫고 억압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역사를 이미 경험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일본사람들에게만 할 이야기는 아니다. 내일 공항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