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아들과 제주올레를!

[제주올레여행기] 10월 20일_ 20코스 12.5m 지점에서 21코스까지_ 제주올레의 끝에 서다!

갈돕선생 2013. 11. 23. 16:00

지난 밤 25km나 걸어온 데다 숙소 주인장의 딱딱함과 여행객들이 너무 어려 함께 게스트 하우스 카페에 함께 할 생각이 없어 그냥 자버렸더니 조식을 먹으러 갔더니 주인장말씀이 우리들이 어제 없는 줄 알았단다. 어제보다는 부드러웠지만, 역시나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독특한 조식이 눈길을 끓었다. 순두부에 귤과 채소무침, 요구르트가 보인다. 사전 검색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아침 식사 메뉴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식단이었다. 일단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류가 아니어서 좋았다. 그렇게 속이 편한 아침 식사를 하고 서둘러 숙소를 빠져 나왔다. 사실 이번 가을 여행에서는 단빌리지 게스트 하우스 말고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 어쩌면 가을에는 사람보다는 아들과 편안히 걷고 지내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2인실 게스트하우스나 일반 숙소를 찾았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머물던 동네, 한동리를 지나자 조선시대 거인장수 부대각 이야기를 간직한 평대리 바다가 보인다. 작지만 깨끗한 해수욕장이다. 평대리의 옛 이름은 ‘뱅듸’라고 한다. 돌과 잪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라고 한다. 길은 다시 평대리 옛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다지 좋은 길도 편안한 길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상적이지도 않다. 올레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 길 같을 정도이다. 그러다 다시 길은 세화바다로 이어졌다. 제법 큰 포구와 넓은 해수욕장이 보였다. 이제 20코스의 끝이 보이는 셈인데, 끝 지점 앞에서 만나는 세화오일장이 우리를 아침 일찍부터 반겨주었다. 이 시장은 제주 동부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일장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곳을 갈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단순히 길만을 걷는 여행이 아니라 이렇듯 제주의 문화를 만나는 여행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제주 올레가 보완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히 길만을 걷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 필요해 보였다.

 

 

 

 

 

 

 

 

 

 

 

 

 

 

 

세화 오일장은 5일과 10일에 열린다. 우리가 찾은 날은 20코스 20일. 어제 무리를 한 탓에 다행스럽게도 아들과 나는 세화오일장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대도시의 큰 재래시장을 생각하면 작기만 해 보이지만, 아침부터 세화지역이 모두 이 장을 위해 모이는 것처럼 활발하고 흥겨운 모습에 아침부터 절로 힘이 났다. 들어서자마자 각종 채소와 과일, 생선, 반찬들이 가득하다. 아들과 나는 조식을 했지만, 허기도 지고 앞으로 이어질 길에서 점심을 먹기가 애매한 탓에 미리 단단히 먹어 두기로 하고 시장 끝자락에 있는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각종 맛난 시장 음식들이 가득했는데, 우리는 멸치국수와 김밥 한 줄을 시켰다. 맛난 김치와 단무지가 함께 나온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귤도 5천 원치 샀는데, 어찌나 많던지 그날 내내 먹을 수 있었다.

 

 

 

 

 

 

 

 

 

 

 

 

세화리의 옛 이름은 ‘가는곶’으로 곶은 수풀을 뜻하는 제주어라 한다. 세화리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등지고 마을길을 따라 오르니 곧 해녀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20코스 종점 스탬프와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출발 스탬프를 찍고 이제 마지막 올레길을 향해 힘차게 걸었다. 제주올레의 스물여섯 번째 길인 21코스는 구좌읍의 바다를 바라보며, 마을과 밭길, 바닷길, 오름을 골고루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1코스를 오르던 기분이 드는 코스이기도 하다. 해녀박물관 안쪽 길을 따라 걸으면 낮은 동산에 오른다. 이곳은 옛 봉화대가 있었다는 연대동산이라 한다. 이어 낯물동네로 불린 면수동을 지나 걸어가니 옛 방어유적인 별방진이 나타났다. 우도에 접근하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조선 중기에 설치한 진이라고 한다. 최근 진을 둘러 쌓았던 성곽을 복원해 놓았는데, 너무 반듯하게 만들어 놓아 아쉬운 소리를 듣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치니 김대중 대통령이 다녀간 음식점이라는 곳의 현수막이 눈에 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안도로를 걸었다. 영등할망에게 제를 올렸던 각시당을 지나니 토끼섬이 있는 곳이 보인다. 여름이면 하얀 문주란 꽃이 섬을 뒤엎어 흰 토끼처럼 보인다는 토끼섬. 썰물 때면 섬으로 이어지는 검은 돌다리들이 드러나 걸어들어 갈 수도 있다는 이 토끼섬은 가을이라 그런지 하얀 문주란을 볼 수 없었다. 토끼섬을 지나니 하도해수욕장이 보였다. 해수욕장 건너편에는 철새 도래지가 있다 하는데, 지금은 역시 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지나 다시 마을길을 걷다 보니 이제 우리가 올레길 마지막으로 오를 지미봉이 보인다. 지미봉은 제주의 땅끝이라는 뜻을 가진 오름이라고 한다. 예부터 고구마 모양의 제주도에서 머리는 서쪽 끝의 한경면 두모리, 꼬리는 동쪽 끝의 지미봉이라고 했다 한다. 옛날에 제주 목사가 부임해 제주도 순시를 마치는 마지막 고을이었다는 종달. 그 제주의 땅끝이 바로 이곳인 셈이다.

 

 

 

 

 

 

 

 

 

 

 

 

 

 

 

 

안내책자에 나온 지미봉은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지만 그다지 길지 않다고 돼 있다. 하지만, 약 2주를 걸어온 힘든 여정 탓인지 오르막은 매우 경사가 심해 길에 쳐 놓은 밧줄을 잡지 않고서는 쉬이 오르기 힘들었다. 지금껏 오른 오름 중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았다. 길이도 꽤 길어 올레길이 우리를 마지막을 그냥 쉽게 넘기지 않도록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미봉은 두 개의 길로 정상으로 직접 오르거나 둘레 길로 가는 방향 두 가지를 선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과 나는 끝까지 올레길을 최선을 다해 걷고 싶어 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오른 지미봉 정상. 그야말로 제주동부 전역을 360도로 볼 수 있는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우도가 보이고 성산일출봉, 1코스와 2코스 올레길 지역. 우리가 걸어온 19코스와 20코스가 보이는 그곳에서 아들과 나는 이제 이 길도 끝이라는 걸 직감했다.

 

 

 

 

 

 

 

 

 

 

 

 

 

 

 

 

지미봉은 내려오는 길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계간이 끊임없이 길고 가파르게 이어져 힘들었다. 그렇게 내려와 이제 종달해변으로 향했다. 길을 걷다보니 지미봉 정상에서 언뜻 본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말을 건다. 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걷는 게 참 좋아 보인다고. 그 나이 때는 아버지 따라 나서지 않는데 신기하단다. 그래서 나도 저간의 사정을 얘기 해 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대단하다 한다. 이런 저런 얘기 나무며 종달해변 쉼터를 지나 마침내 작고 아름다운 종달리 백사장의 한 켠에 21코스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을 간새가 보였다. 잠시 함께 걸었던 그 분에게 아들과 내가 함께 길의 끝에 서 있는 모습을 찍어 달라 부탁드렸다. 기꺼이 찍어주시던 분과 잠시 인근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그 전 자기를 소개하기를 MBC 드라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제작에 참여한 일원이라 한다. 멀리 외롭게 제주에서 식구들과 떨어져 머리를 식히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그 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21코스 끝지점 인근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는 다시 제주시 동문시장 쪽으로 가서 숙소를 잡고 이틀 동안 차를 빌려주실 김경남선생님의 차를 받으러 택시를 타고 신제주로 갔다. 고맙게 받은 차를 가지고 숙소에 세우고 아들과 나는 몸을 씻도 모처럼 포식을 하러 동문시장 인근 흑돼지거리로 갔다. 그 중 가장 유명하다는 흑돼지 전문점에서 만나게 고기를 먹고 배를 두드렸다. 이후 아들은 숙소로 보내고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한 후배 박동현선생을 만나 지난 번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21코스 끝지점에서

21코스에서 길은 끝났지만, 아들과 나는 막상 길에서 멈춰서니 영 어색하고 허무하기고 했다. 어쩌면 여기서 더 걸어가야 하는데, 갈 길이 없다는 느낌이 꽤나 낯설었다. 하루하루를 아침 일찍부터 힘차게 걸어온 지난 4월과 이번 10월.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이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일 아들의 요구로 한라산에 오르기는 하지만, 또 그 길에서 나는 또 무엇을 어디를 향해 가야할까? 이 길의 시작은 아들과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힘든 것도 함께 나누기 위함이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집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아들과 내 관계를 더 나아가게 하는 데는 큰 몫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떠나 모험 아닌 모험을 해 보자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였다. 이 또한 제주를 한 달 간이나 걸으며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이전에 겪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흥분했고 때로는 들떠 있었다.

 

내 나이 마흔 여섯. 46년 만에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첫 여행. 그 길에 우리 아들이 함께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아마 아들이 없었다면 이 긴 여행을 나 혼자 걷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결국 나는 앞으로 걸을 길도 이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사는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발견한 셈이다. 제주 올레길은 이제 마무리 됐지만, 이제 아들과 나는 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