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2000. 5. 마가을)라는 책을 다시 고친 판이다. 불행이도 난 이 책을 접해 보지도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새로 나온 책을 보던 순간 '산골 마을 작은 학교'라는 제목에 이끌려 여지없이 나는 이 책에 마우스에 클릭을 해대었다.
내가 왜 그랬지? 답은 물론 난 선생이니까. 더구나 밀양에 산골은 아니지만 전교생이 57명인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고, 지금도 내가 있는 이 단산초등학교는 해마다 이 때쯤 되면 정부의 폐교 대상학교로 지정(?)되어 학부모의 의사를 묻는 설문지를 돌려야 되는 그런 환경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대도시 학교의 선생이었다면 난 이 책을 선뜻 보려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학교를 모두 졸업한 나에게 촌, 시골, 그리고 그곳에 있는 작은 학교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학교인 것 같았다. 95년 결혼 이후 밀양의 작은 학교로 전근을 온 첫날. 지금 생각해 보면, 100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넓어 아이들이 운동장을 지배하는 큰 학교 운동장은 어느새 내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운동장이 이 학교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는 듯 했던 바로 그날. 난 무척 내 모습이 어딘가 나와 어울리지 않은 곳에 와 있는 듯 어색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새 그 시골 아이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지금은 오히려 익숙해져 버렸다. 8명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보고 있으면 도대체 세상 어른들이 말하는 세계화와 국제화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누구를 위한 외침인가를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시간에 우리 고장의 경제활동을 공부하는 것보다 10분만 걸어가면 맑은 물 흐르는 곳에서 웃통 벗어던지고 소리치며 물장구칠 생각에 빠져 있는 이 아이들에게 우리들이 가르쳐야 하는 진정한 삶은 어떠한 모습이며, 무엇이 올바르며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교육인가에 대한 빛바랜 오랜 생각을 다시 들춰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책을 통해서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과 따뜻하고 작디 작은 학교를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이 책을 고를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나도 이 책의 주인공들과 얼추 비슷한 작은 학교 선생이니.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작은 학교 선생에 대한 적잖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작은 학교 선생은 이렇다.
첫째, 승진을 위해 벽지 점수가 필요해 필요악인 선택을 한 사람들.
둘째, 나이가 들어 큰 학교에서는 미운 오리 신세가 돼버려 할 수 없이 작은 학교를 선택한 사람들.
셋째, 극소수이지만, 소신을 가지고 작은 학교에서 나름의 교육관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
넷째, 그저 시골이 좋아 사는 사람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서는 이 책을 읽기는 그리 쉽지 않다. 어짜피 이 책의 중심인물은 학교와 그 속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이 글에 나타난 학교 하나 하나를 찾아 나서는 일은 학교 선생인 나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그들의 집, 그들의 선생님 얘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학교의 독특한 생명력을 보며 우리는 이제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학교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대도시에서 졸업장이나 받고 졸업식날 사진 한 장 찍어 앨범에나 넣어 놓는 재미없는 죽은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 하루의 삶을 만들어 내고 그 삶들을 그 아이들의 뼈 속 깊이 새겨 학교라는 존재가 그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학교로 삶의 전체가 된 그 아이들 모습에서 더 이상 이 땅에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주민의 재산인 학교의 문을 닫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만 더욱 확실해 진다.
이러한 자질구레한 주절거림을 뒤로하고, 이제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해보자면, 60-70년대 흑백 사진을 실컷 보았던 것 같은 느낌(실제로 아름다운 흑백사진을 여러 컷 볼 수 있었다)과 그 시절의 느낌이 가져다 주는 따뜻함과 그 나름의 애절함이 섞여 알 수 없는 연민과 그리움을 잔뜩 안겨 주었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따뜻한 봄에 찾았던 지금은 폐교가 된 세 학교 이야기 속에서 금산 건천분교 미림이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처럼 동물들이 학생이 되어 주길 아직도 바라고, 하늘 가까운 학교였던 태백 하사미 분교시절 선생님의 편지가 그 나름의 애절함을 더해주었고, 죽변 화성분교의 마을 주민들의 쓸쓸함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육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에 찾았던 골짜기도 그런 골짜기가 없었던 경북 봉화마을 남회룡 초등학교는 그 골짜기의 깊고도 끈질긴 생명력처럼 아직도 주섭이 아버지와 같은 이들에 의해 든든한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고, 오로지 대학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린 해숙이와 그 해숙이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거라 가슴 깊이 울고 있는 해숙이네 어머니가 살고 있는 단양 보발 분교, 똥물에 빠진 아이들 직접 건져내어 씻기며 작은 학교에 적응하였던 양해남 선생님의 가슴 깊은 아이 사랑 얘기가 전해지는 여주 주암분교에서 이 작은 땅 작은 학교의 아픔과 고통,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포근한 가을에 찾았던 제주 선인분교는 그야말로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 마을이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의 학교였다. 보기 드물게 잔디로 꾸며진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를 만끽하는 마을 주민과 학생과 교직원의 어우러짐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중학교에도 분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는 글쓴이의 글 자국을 더 할 나위 없는 호기심으로 같이 따라가다 보면, 동생들과 함께 혼자 된 고모와 함께 사는 난이가 다니는 무주 부남분교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와 함께 늘 진로 걱정하는 난이는 아직은 그리고 불투명하기까지 한 완성되지 않은 희망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가운 가을에 찾았던 강릉부연 분교에서는 학년에 관계없이 서로가 선생이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주며 그렇게 스스로 자라고 있는 그저 자연이 주는 그 자연스러움을 몸에 담고 살고 있었고, 이제는 폐교가 된 남해 미남분교의 이재만 아저씨의 편지는 서울 어른들의 그릇된 정책으로 어린 나이에 배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들의 힘든 삶의 얘기 속에서 학교는 작을수록 좋다는 너무나 큰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아직도 정부는 효율성의 미명 아래 폐교를 강제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여지없이 받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고, 아직도 적지 않은 교사들이 승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시골로 시골로 바다로 바다로 들어가고 또 내려가고 있고, 대도시의 환상에서 벗어 던지지 못하고 시골학교 나머지 한 한기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대도시로 대도시로 시험을 치러 달려가는 신규교사들이 아직도 이 땅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삶의 터전이 되어 줄 학교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람들, 오는 교사 가는 교사의 면면과 눈치를 살펴 정을 넘겨주는 정도를 가름하고 있는 작은 학교의 아이들과 부모들.
언제나 우리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가치들을 집어 치우고 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 주는 이 작은 학교의 가치를 알고 알뜰 살뜰 가꾸게 될까. 나는 지금 밤하늘에 가득 찬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는 작은 학교 밤 하늘의 별들을 떠 올리며 김은주, 박경화, 이혜영 이 세 글 메김꾼들이 들려준 '산골 학교 작은 학교'의 소중한 빛나는 별같은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되새겨 본다. 무척 가슴이 아려온다.
- 뱀발 -
깨끗하고 깔끔한 편집에 비해 아쉽게도 '앉았다'의 '앉'자의 오타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네 개를 발견한 것 같은데, 수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84쪽은 '앉았다'의 '않'자와 '바다'로 쓰여야 할 글자가 '바라'로 쓰여 있어 동시에 오타를 발견하기도 했다. 예쁜 책에 비해 오자가 눈에 띄는 것이 옥에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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