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0 - 2001년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북레터(짧고 간결한 글모음)로 출판된 사토마나부의 글 두 권을 합본하여 내 놓은 책이다. 북코리아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학력을 묻는다> 그 첫번째 시리즈로 내 놓았다. 두번째는 학력저하의 실태, 세번째는 교육개혁의 허상으로 일본교육개혁을 진단하고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일본의 가장 심각한 교육문제를 아이들의 '배움으로부터의 도주'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판되어 지금까지 교육학서 중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베스트셀러이며 롱셀러라고 한다. 2001년에는 중국어로 번역출판되어 상해를 중심으로 약 8만부의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작은 책이지만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일본교육과 일본사회는 마치 우리 사회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는 압축성장을 거듭해왔던 한중일 세 나라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교육병리현상으로 '배움'으로부터 아이들이 도망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배움을 이렇게 얘기한다.
"저자 자신은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수행되는 것에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항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의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배움에서는 자립이 의존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보다 중시해야 할 것은 상호 간에 서로 의존하고 서로 자립하는 협동적인 배움을 교실에 실현하는 일이다."
"배움은 '만남과 대화'를 통한 '세계만들기', '친구만들기', '자기만들기'의 실천이다. 공부로부터 배움에의 전환은 교실에 '활동적이고 협동적이고 반성적인 배움'을 실현하는 실천으로써 구체화될 수 있다."
이 책에 대해 얘기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항을 빼놓을 수 없다. 문고판처럼 작은 책에 겨우 136쪽을 담고 있는 내용치고는 꽤 경쾌하고 정확하다. 그것은 그가 1500여 일본 학교를 직접 둘러보며 질적인 접근으로 진실에 가까운 밀착 연구를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학력의 재정의, 그 학력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모순, 복고적 학력논란의 사회적 배경, 수준별 학습의 허상, 의무교육의 복선화, 공부시대에서 배움의 시대로의 전환, 니힐리즘과 시니즘에 빠져 있는 아이들.
위에 언급한 이 내용들은 그대로 우리 현실과 너무도 맞닿아 있고 지금도 언론과 우리 교육현장에서 끊임없이 얘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일본의 학력을 둘러싼 문제를 기득권 세력(그는 항상 학력저하논란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보수세력을 꼽았다)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견고히 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여유교육이라 일컫는 5일제 수업의 상징을 전면 비판한다. 그저 교육내용이 양을 줄이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교양수준을 낮추는 결과만을 가져왔고 대학입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이러한 질낮은 교육내용은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가한다. 이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결국 가진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학력양극화를 낳을 가망성이 매우 높아 사회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에 문부성은 의무교육의 복선화라고 하여 우리나라 처럼 공교육에 특목고와 같은 자율학교를 확대함으로써 교육개혁을 하려하지만, 이것이 곧 합법적인 교육의 양극화를 보장할 뿐이라 주장한다.
일본사회도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인구가 줄어들며, 특히 어린 아이들의 출산이 줄어들면서 사교육시장은 급속도로 약화되는 현상을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때를 맞춰 학력저하논란을 부추기는 보수세력들의 근거 없는 주장은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타고 다시 확장하는 과정을 밟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학력저하논란은 늘 보수언론에게서 먼저 튀어나오곤 한다. 사교육세력들과 합세한 그들은 학부모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일본과 꼭 닮아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수세력의 학력이라는 것이 사토마나부의 지적처럼 '공부'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복고적 학력주의라고 부른다. 읽고 쓰고 셈하는 기초학력을 강조하고 외우고 문제지를 푸는 지필평가 위주의 학력은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억누른다. 그러한 창의적 비판적 사고로 무장한 학력이라는 것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그들의 계급유지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력으로 학력을 좌우할 수 있는 여지를 뺏기는 것이기에 보수세력들은 끊임없이 복고적 학력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는 수준별 학습도 여지없이 비판을 한다. 서구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조차 수준별 학습은 이미 가치 없는 학습법으로 페기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수준별 학습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단순히 '공부'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학습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수준별 학습은 더 이상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무장해야 할 지식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서구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협동학습체제에 관심으로 보인다. 공부가 아닌 배움이어야만 아이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완전학습을 주장한 불름의 이론을 시범화한 학교가 미국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와 관련한 의자와 책상이 모두 창고로 들어가 있고 지금은 학교마다 협동학습체제에 맞는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구시대적 유물인 수준별 학습의 전면 폐기를 주장한다.
그는 이제 공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아무리 학력저하론을 주장해도, 아무리 교육행정이 기초학력의 철저를 추진하여도 아이들은 동아시아형 교육의 복고주의적인 공부의 세계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의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행복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시대의 감수성으로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공부의 세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에도 부딪치지 않고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는 세계이며 쾌락보다 고통을 존중하고 비판보다는 순종을, 창조보다는 반복을 중시하는 세계였다. 공부의 세계는 장래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세계이며, 그 희생의 댓가를 재산이나 지위, 권력에서 찾는 세계였다. 또한 공부의 세계는 사람과 사람의 끈을 끊어 버리고 경쟁을 부추겨 사람과 사람을 지배와 종속관계로 몰아가는 세계였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러한 공부의 세계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많은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문화적 자본으로는 더이상 신분상승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미 1970년 영국의 교육학자 폴 윌리스는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이라는 책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간파'하고 신분상승을 스스로 포기하고 노동계급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는 연구를 내 놓아 영국사회를 발칵 뒤집은 일이 있었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정부주도의 대규모의 연구결과인 콜맨 보고서에서 경제력이 학력을 좌우한다는 뜻하지 않은 연구결과로 홍역을 이미 치룬적이 있다.
우리도 이미 그 시대로 접어 들었고 일본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동아시아는 오히려 교육내용과 교육개혁의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아이들은 니힐리즘(허무주의)과 시니즘(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데도 말이다.
이 밖에도 간간히 쏟아내는 그의 번득이는 말 속에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방식의 폐지, 고등학교 및 대학교 입시 폐지, 출석과 개근에 대한 사고전환, 지식사회에서 중요한 학력은 아이들의 학력보다 성인의 학력이라며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이 담겨 있다.
짧지만 강한 인상과 흡입력 강한 설득력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학력논쟁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었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책이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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