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이강산 선생님 연수를 받기 전 장현진 선생님을 만났다. 만나자 마자 선생님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새삼 지난해 명선이가 떠 올랐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데..... 얼마나 좋을까하며 장선생님의 얼굴을 바라 봤다.
그동안 못만나 얘기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장선생님이 내게 건넨말.
"선생님 참 외로우신 것 같아요."
그말을 듣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외로운 거야. 난 외로운 거야. 그래서 곧 대답했다.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얼마 전 학교 관리자들과 일제고사 때문에 언성을 높여가며 논쟁을 벌였던 일을 생각해 봐도 어찌 보면 나 혼자 싸우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정호라는 친구도 덕 있는 우리 교장으로부터 모든 걸 얻으려 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받았다. 내 맘을 깊이 이해해주고 함께 해주는 동지가 없다. 내탓일까. 내가 모자라서 일까. 아님 너무 세상을 모르는 걸까. 쉽게 쉽게 넘어가면 될 것을 너무 애닳게 붙잡고 있는 걸까. 오히려 논쟁을 지켜 봤던 우리 학교 행정실장님이 나보고 선생님 말씀이 옳다고 본다며 격려(?)를 받았다. 교사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말이다.
서울에서 그날 난 장선생님에게 물었다. 서울 상황은 어떻냐구. 그랬더니 서울도 결국 90%정도의 학교가 일제고사를 치루게 됐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전교조도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고 일부 몇몇 지회와 교사들만이 피터지게 싸우다 지쳐 나가고 있다는 거다.
전교조 본부도 그렇고 경남지부도 그렇게 지회도 그렇고 점점 당장 어떤 문제가 우리 현실을 옥죄고 있는지 보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학교사회를 뒤흔다고 얘기하고 무모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을 비판해도 우리는 단위학교에서 그 경쟁을 부추기는 시험하나 막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오늘도 우리 집 사람은 뒤늦게 양식이 결정된 통지표때문에 학교에서 일을 하다 7시가 넘어서야 들어 왔다. 서술평가에 덧붙여 아이들의 반별 평균에서 비교된는 위치를 나타내는 도표가 들어간 통지표를 만들어야했기때문이란다. 가장 전문적이어야 할 집단이 가장 유치한 집단이 되고 있다. 그 아이의 성적의 타당성과 신뢰성은 뒤로하더라도 반에서 성적의 위치를 나타내는 일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도 이곳 어방을 떠나 다른 곳에 가면 그 학교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내 목소리는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덕이 있다는 우리 교장 앞에서 나는 앞으로도 시험 횟수를 늘이는 일을 거부하는 일을 목소리 높여 얘기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이어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덕이 있는 교장에게 퍼센트를 따져가며 이것저것 가리고 얘기하기에는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일 년 살이가 달라지고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교육열은 좀 더 분위기를 탈 것이기 때문이다. 덕 있는 교장에게 한 번 배려하려다 올 해 우리 아이들은 시험때문에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것이고 그만큼 진정한 공부에서 멀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양보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교사라면. 적어도 이 일이 나의 업무라면. 이런 걸 타협한다면 그건 내 양심을 파는 일이다. 차라리 내가 연구부장이 아니었다면 모를까.
나는 덕 있는 교장의 편에 서기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아이들편에 설 것이다.
시험횟수를 늘이자는 대다수 교사와 학부모의 편에 서기 보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사는 아이들 편에 설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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