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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라는 잔소리

갈돕선생 2006. 9. 24. 21:55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겨레] 이나미의 어른마음아이마음

“왜 공부 안하니?” 부모님들이 공부하라는 의미로 아이들을 채근할 때 흔히 서두에 시작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공부에 대해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던 관심조차 멀게 만든다. ‘너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공부 하지 않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게끔 유도하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유를 들라는 이런 질문을 들으면 아이들은 기분이 나빠진다. 질문에 곧이 곧대로 답하면, 공부 하지 않는 녀석이 핑계만 댄다 할 것이고,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면 ‘너는 공부 안 하는 녀석이다’ 라는 전제에 수긍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유소아기에는 부모들이 시키면, 책보는 시늉이라도 했던 아이들이 사춘기로 접어 들어 ‘나’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부모와 공부 때문에 승강이를 하게 된다. 중학교에 들어와 성적표를 앞에 놓고는 이담에 뭐가 될래, 너처럼 공부 안 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 애가 왜 그렇게 철이 없냐, 그 따위로 성적을 받아 놓고 뻔뻔하게 어떻게 낯을 들고 다니냐… 등 주로 인신공격성 발언들을 부모들이 쏟아 놓는데, 격려는 커녕 그나마 조금 있는 의욕마저 상실하게 만든다. 부모들로서는 뼈 빠지게 일해 쓸 것 못쓰면서 학원비다 과외비다 대고 있는데 따라 주지 않는 자녀들이 원망스럽겠지만, 사실 자녀가 공부에 흥미를 잃는 것은 꼭 자녀만의 잘못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지도 못하고, 창의적 사고를 키워 주지 못하는 학교 교육의 획일성에 그 책임을 물어야 겠으나, 아이들 공부에 득이 되지 않는 부모들 태도 역시 꼼꼼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부모 스스로 차분하게 책을 읽는다든가, 하다 못해 취미 활동이라도 진득하게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자. 쓸데 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놀러 다니느라 자신은 부산스러우면서,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공부나 하라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말은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성적표 나오면 야단치는 것으로 부모 노릇을 다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아이들의 공부하는 과정에는 전혀 관심없이 등수만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는 세상 분위기 탓도 있지만 그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어떡할 것인가.

성적이 이게 뭐냐고 꾸중하기 보다는 무슨 과목이 어렵고 무슨 과목이 그래도 좀 쉬운지 우선 같이 짚어 보고, 그 과목이 어렵다면 왜 그런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아이들이 현재 어떤 내용을 공부하고 있는지 같이 공부해 나간다면 금상첨화다. 만약 부모가 그 과목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아이들도 역시 힘들다. 부모가 자녀들의 교과서를 일단 먼저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그 과목에 호기심을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다. 예컨대, 사회시간에 국회와 행정부에 대해 배운다면, 시사적인 질문을 해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교과내용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하다 짐작하게 될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배우고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서 물의 넘침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리공식에 접근해 보면 어떨까. 부모 자신이 영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솔직하게 아이에게 영어를 배우겠다는 태도로 접근하면 오히려 아이들은 신나게 공부할 수도 있다.

시험 때가 되면, 공부하란 달근질이 오히려 불안감과 죄의식을 유발하여 시험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부모들이 많다.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쉬엄쉬엄 하라’며 여유를 보여줄 때 오히려 내적 동기 부여가 되어 열심히 하게 되는게 사람 심리다. 공부라면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았던 필자도 지금 만약 누군가 하루 열 몇 시간 움직이지 말로 공부만 하라면, 제발 살려달라 할 것 같다. 재미도 없고, 왜 하는지 목표 의식도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고문을 참아 내라고 하려면 부모들이라도 그 힘든 과정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다. 예전과는 달리 학벌이 꼭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박하게 먹고 사는 것을 아이들이 걱정하지도 않는, 애매한 요즘은 더욱 그렇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nleekr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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