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을 뒤로 하여 지난해 <인간 연습>이 있었고 불과 한 달 전 <오 하느님>이 나오게 된다. <인간연습>이 분단소설의 끝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오 하느님>은 <일제 침략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끝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 보여진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작가의 상상력이라기 보다는 그도 밝혔듯이 우연히 알게된 아이러니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이 책을 비평한 복도훈은 그 사진을 글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관등성명과 계급, 부대이름, 국적과 출신을 말할 차례가 돌아온 사진 속 그 독일군 포로는 그의 얼굴 색을 보고 놀란 미군 병사가 호기심 가득 들이대는 카메라를 피한채 애써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운데 줄임)---- 그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무장해제를 당한 또다른 독일군 포로가 유타해변에 내리쬐는 맑은 날의 햇빛에 흰 얼굴을 찡그린 채, 앞에 있는 노란 얼굴과 왜소한 채격을 지닌 동방대대 병사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도 있었으며, 사진의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미군 병사는 빈 탄약상자 위에 놓인 서류에 급히 포로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진의 뒷이야기는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의 저서
아이러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슬픈 이야기이다. 빼앗긴 식민지 조국의 한 백성으로 어쩔 수 없이 징용으로 끌려가 일본군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 그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 살아남아야 한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국적을 넘나들며 다른 나라의 군인과 포로가 되길 거듭했고 그 속에서 처참한 짐승의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야만 했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 독일군의 복장으로 포로가 되었던 네 명의 조선인들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이 책 역시 역사의 변방에서 힘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죽음을 맞아야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을 역사의 한 축으로 다시 되살려 놓은 조정래의 사관이 엿보이는 책이다. 이전과 다른 것은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세계사의 한 축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고 있지만 정작 그 당사자들은 그것을 모른채 죽음을 맞는데 있다. 실로 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다 죽어갔지 않겠는가. 이름모를 역사로 남겨져 있을 그 역사를 기록으로 다시 되살려 놓은 조정래선생의 노력에 감사할 뿐이다.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책은 이전 조정래 대하소설에서 느꼈던 질퍽한 대사처리나 긴장감은 다소 부족해 보여 읽는 맛은 다소 떨어진다. 조정래 대하소설에 입맛 들였던 독자였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흐름으로 보였다. 어떤 독자는 조정래 선생에게서 느껴지는 깊은 맛을 못 느끼겠다고까지 하는데 하여간 그것은 오롯이 읽는 이들의 각기 다른 감성에 따라 달라지지라 생각한다. 그저 오랜 만에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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