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행복을 꿈꾸는 삶

우리 놀이, 노래 지킴이 편해문을 만나다.

갈돕선생 2007. 5. 12. 20:25


 

오늘은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가자 감나무> 라는 옛 아이들 노래를 찾아 재미있게 엮어낸 편해문이라는 저자를 만났다.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창원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연 오늘 강좌에 60여명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님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노래이야기의 저자인 만큼 놀이가 무엇이며, 게임과 무엇이 다른지를 시작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밥상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놀이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들의 표정에서 드러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묻어 나느냐 안 그러느냐를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블럭이나 가베 따위의 놀이도구를 즐기는 아이의 얼굴에 과연 웃음꽃이 피어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람과 물건 사이에서 피어나는 웃음은 피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지극히 인위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놀 때, 비로소 웃음이 피어나고 그제서야 놀이는 놀이로서 사람에게 다가선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이어 편해문씨는 백창우 씨의 노랫말 가운데 아이들이 지은 시 '딱지 따먹기'의 예를 들어 주었다. 즉,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라는 구절을 한 번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는 요즘은 학교에서도 옛 놀이로 비석치기를 가르치는 것 같은데 그 방식은 놀이가 아이라 게임이란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비석치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석치기를 위해 좋은 돌을 찾아나가고 그 돌을 디딤삼아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것. 이때쯤 되면 아이들에게 비석은 더 이상 그냥 돌이 아니라 아이들 그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딱지가 넘어갈 때 내가 넘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비석치기에서 비석이 넘어갈 때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쓰러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배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놀이는 살아나게 되는데 우리 어른들이 그 놀이의 진정한 맛을 찾아주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말을 우리들에게 건냈다. 학교에서 일정하게 자른 돌이나 플라스틱을 나눠주고는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해보고 다시 거둬들이는 식의 옛 놀이 체험하기 수준으로서는 절대 우리 아이들은 놀이의 참 맛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무척 공감이 갔다.  

 

 

 

그가 보기에 우리 놀이가 가지는 힘은 그것이 단순히 재미와 즐거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된 뒤 삶의 힘, 긍정의 힘이 된다는 데 있다. 우리네 놀이를 돌이켜 보면 땅에 그어진 무수한 선들과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그 실패 속에서 다시 도전해 보는 경험들을 쌓아가는데, 그는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어른이 됐을 때 삶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 보자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의 요즘 생활을 보면 학교나 학원에서 시험점수 몇 점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좌절한다. 부모님과 공부방이나 학원에서 엄한 꾸중을 들을 생각에 걱정이 많은 아이들에게 실패란 해서는 안되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 한다. 발표도 하기 싫어한다. 싫은 소리 듣기 싫고 실패가 두려운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놀이를 모르고 자라는 것이 맞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른들은 어렸을 때 놀던 힘으로 산다는 이야기 되새겨 볼 만 했다.

 

짧은 두 시간의 강연으로 그의 이야기 모두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아쉽기도 했다. 더욱 아쉬웠던 점은 좀 더 깊숙한 노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편해문 그는 오히려 우리네 밥상을 더 걱정했다. 밥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래나 놀이, 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어쩌면 그 밥상문제가 그에게 있어 새로운 삶의 화두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옛 노래와 놀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에게서 나는 밥상문제보다는 노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밥상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좀 아쉬웠다.

 

강의를 마친뒤 이어진 질문에서도 우리네 놀이네 문화가 레크레이션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것을 비판한 편해문씨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그의 대답은 그리 시원하지 명쾌하지도 못했다. 물론 우리네 삶의 한계라는 것이 뚜렷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또 하나의 아쉬움이었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끝에 붙였지만, 그것이 학자 또는 연구자의 한계인 것인지 그의 삶을 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인지, 그만큼의 무게 있는 삶이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 나중엔 괜한 불만과 투정만 늘어갔다. 

 

하~ 기대를 품고 갔던 만큼 공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또 다른 답답함을 껴 안고 와야 했던 강의였던지라 마음 한 쪽 찝찝하다. 어쨌든 아쉽기는 했지만, 우리네 공교육 교사가 아이들에게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생각하게 해 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이고, 다음 주 아이들과 뭐하며 놀까?

아이들 입가에 웃음이 묻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