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요즘들어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해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였다. 내가 수업을 제대로 준비 못하며 진행을 한 탓고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 생활글을 보고 이래저래 살펴보니 기말시험 공부때문이었다.
요즘들어 전에 없이 우리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닦달하며 채근하는 모습을 아이들 글에서 보게 된다. 시험을 못치면 무엇을 살 생각은 하지 말라는 얘기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아이 존다고 더 공부하라고 혼을 내거나 중간고사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알아서 하라며 협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부모님들의 기말고사 전략은 참으로 다양했다.
이에 맞서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서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소극형에서 빨리 시험없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한다는 현실도피형, 정말 힘들고 괴롭다는 우울형, 그래도 시험은 쳐야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는 현실참여형, 죽고 싶고 시험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극단형까지 참으로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김해 전체적으로 기말고사때문에 아이들은 홍역을 치루고 있다. 시험준비를 위해 토요일, 일요일 상관없이 학원을 다녀야 하는 일은 이제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밤 11시를 넘어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일종의 피난처가 되는 듯 하다. 적어도 학원만큼 닦달하지도 않아서 딴데로 눈을 돌릴 수 있고 적어도 학교에 있는 만큼은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때문일 것이다(아이들에게 물었다. 요즘 시험때문에 어머니의 잔소리가 많아서 힘들다는 사람? 무려 34명 가운데 30명이었다). 그래서 교실에서 쉬는 시간 아이들은 밝아만 보인다. 하지만 이내 수업시간으로 들어가면 이미 공부라는 것에는 지친듯 자주 멍해 있는 아이들, 딴 짓 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보름 전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와 또 다른 풍경이다.
공부라는 것이 무얼까? 무엇을 우리는 공부라고 해야 할까? '배움으로부터의 도주하는 아이들'을 쓴 사토 마나부는 공부란 근대적인 개발경제에서나 불려지던 강압적인 암기식 학습방법이라 규정짓고, 진정 우리 아이들이 익혀야 할 것은 '배움'의 기쁨이며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친구들과 협동했을때 가능한 것이라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람이란, 배움의 기쁨을 진정 깨달았을 때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일은 배움의 기쁨과 가치를 알게 해 주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네 공교육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아이들이 치루는 시험은 배움는 기쁨과는 그 거리가 참으로 멀다. 고통스럽게 외워야 하고 힘들게 여러번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공부. 틀리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하고 점수로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견주며 경쟁해야 하는 공부. 이는 진정 배움이 아니다. 이미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지겹운 것이 돼 버렸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고통스런 것이 돼 버렸다. 어른들의 잘못인데, 그 잘못의 재생산이 언제 끊어질지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대안학교를 만들고 대안교과서를 만들거나 다양한 삶의 공동체가 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안들이 대안으로만 머물지 않으려면 우리 앞에 놓인 문제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대안이 개혁과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뜻 있는 교사와 학부모, 많은 어른들이 우리 사회의 모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저 내가 하는 일에 보람만을 느끼는 것에 만족한다던지, 오로지 내 아이들만의 행복만 바라는 마음에 머물러서는 우리네 아이들은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아니 그 먼 내일에도 지겹고 고통스런 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배움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며 힘들게 살아갈 것이다.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외친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공부라는 힘겨운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학기가 또 일 년이 늘 즐겁고 행복하고 좋을 수만 있겠냐 싶지만, 시험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면 정말 문제가 있다. 학부모님들에게 통신문을 또 다시 띄우고 모임도 해야할 것 같다. 현실을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정말 아이들을 위하고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한 번 소통은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영국 교육협회에서 16살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한다는 선언을 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시험때문에 진정 배움의 기쁨을 알지도 못하고 폭넓은 경험을 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시험에 미친 어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하지 말란다. 과연 무엇이 현실일까. 우린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 마음과 똑 같다. 나도 어서 이 시험기간이 끝났으면 좋겠다. 시험이라는 거 정말 지겹다. 아이들과 나의 행복을 보름간이나 빼앗아 갔다.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제 방학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한 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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