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옆에 누워 주무시던 안승문선생님이 부산하게 움직이시더니 간단한 세면 뒤 방을 나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나는 다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6시에 눈을 뜬 나는 피곤했지만, 낯선 곳의 첫날이어선지 그냥 몸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졌다. 창문 쪽 커튼을 열어젖히자 아름다운 일출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은 언제 지나갔는지 비행기가 다녀간 흔적이 가늘고 길게 남아 있고 하늘은 이제 막 떠오를 해를 온통 주황빛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헬싱키의 아침을 찍었다. 잠시 뒤 씻고 가방을 챙기자 안승문선생님이 들어오셨고 함께 아침식사를 하러 3층으로 내려갔다. 너른 공간에 러시아호텔보다 많은 음식들이 피곤한 아침을 달래주었다. 그렇게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와 버스를 탔다. 안승문선생님은 앞으로 이어질 학교탐방에 쓰이는 수신기를 나눠주셨고 앞자리에 있던 나는 그 일을 자연스럽게 돕게 됐다.
오늘은 그토록 귀에 따갑게 듣고 책으로 숱하게 만난 핀란드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5년 전에야 기대가 컸었지만, 막상 이제 핀란드 학교 현장을 찾게 된 지금의 나는 이전과 분명 다르다. 더 이상 그네들의 교육에 과다한 평가를 내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교육을 우리가 소품삼아 따라 하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핀란드 학교를 찾는 이 순간, 나는 무엇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보니 벌써 아침 9시. 첫 핀란드 학교방문지인 야르벤빠 고등학교에 우리 차량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급히 들어선 교문. 교문이랄 것도 없었다. 탁트인 마당으로 들어간 이 건물은 학교라기에는 전혀 다른 마치 독특한 도서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들어서자 우리를 맞아둔 사람은 핀란드 이곳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안승문선생님이 차량에서 앞서 소개한 핀란드 고등학생. 한국이 좋아 한국어를 공부하며 유학을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어 하는 여학생. 우리말로 인사하는 그녀가 우리 일행은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이어 야르벤빠 고등학교에서 진로상담을 맡고 있고 이제 5년차 교사인 마키넴선생님의 안내로 우리로 말하면 시청각실과 같은 곳으로 안내 돼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받게 되었다. 시청각실로 들어서기 전, 저만치 보이는 이 학교의 건물. 둥글게 구성된 공간이 3층까지 이어지고 1층에는 카페와 같은 2층은 교실로 보이는 곳에서 복도에 컴퓨터가 비치돼 있어 자유롭게 웹서핑을 즐기는 아이들. 3층은 천장과 수많은 창문으로 이어져 잔뜩 햇볕을 받게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 학교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한국 에서 곧잘 본 기적의 도서관과 같은 이곳. 한 국가의 학생 중심의 교육철학과 유연한 교육과정의 허용,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핀란드 교육관료와 교사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종합적인 작품이었다. 단위수업에서 학교를 바꾸고자 하고 교사의 전문성만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우리들의 교육철학과 풍토가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우리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지. 그저 안타깝고 부럽기만 했다.
마키넴교사의 프레젠테이션은 핀란드 교육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기본 학제에서부터 교육과정과 교과 전반에 이르기까지 책으로 만나고 안승문선생님으로부터 익히 들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다만, 무학년제 운영이라는 전제와 고등학교를 대학처럼 운영하고자 하는 교육방침은 핀란드인들이 교육에 대한 상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주는 좋은 사례였다. 기존의 핀란드교육에 대한 책에서 쉽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내가 읽어온 핀란드 5년 전의 모습과 그렇게 달라져가고 있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그들의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들은 지금부터 고민하면서 의견수렴을 하고 있었다. 일 년만에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갈아치우는 한국의 교육철학과 풍토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핀란드의 도전이 매우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우리모 말하면 대학수능시험을 2019년까지 모두 컴퓨터로 보게 한다는 것. 안승문선생님이나 나나 이러한 시도에 걱정이 앞섰지만, 그들의 상상력이 어떻게 실현될지 지켜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이 학교의 고등학생들은 마치 대학생들처럼 2년에서 4년 사이에 자유롭게 졸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다양한 코스로 제시되고 있는 교육과정과 교과를 선택하고 조정하면서 학습해 나갈 수 있었다. 75분짜리 21개의 레슨으로 이어지는 5개의 피어리드. 한 학기에 300개의 코스 중 5개에서 8개의 코스를 골라 자유롭게 수강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는 체제는 신선함을 넘어 매우 혁명적이었다. 물론, 모든 핀란드의 고등학교가 이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이벤트성 시범학교나 무늬만 혁신학교와 달리 이런 실험을 통해 그들의 교육시스템을 완성해 가는 모습은 부럽기만 했다. 이러한 도전과 상상력의 바탕에는 신뢰다. 부모의 교사에 대한 신뢰, 교육기관의 교사에 대한 무한 신뢰,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교사의 신뢰가 이러한 상상력과 도전을 가능케 했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핀란드의 교육적 상상력을 보면, 이미 우리나라로 치면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경계를 가볍게 무너뜨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기존의 공교육의 틀을 과감히 버리고 그동안의 그들이 업적도 버리며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순간 순간 우리 교육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수업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업을 어떻게 잘 할 것이냐는 프레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들 모습에서 그들이 그리는 큰 그림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그들의 상상력과 도전에 PISA의 우수한 결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적지 않다는 안승문의 말씀에서 또다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방식을 두고 외부 기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교육정책과 철학을 실현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성실한 프레젠테이션과 선생님들의 질문을 끝으로 시간에 쫓긴 우리는 간단히 학교를 돌아보는 일정을 이어갔다. 저만치서 바라본 학교 건물 1층의 모습. 카페와 식당으로 운영되는 한가로운 모습을 1층에서 봤다면 2층은 수업과 학습의 공간이었다. 천 명의 학생들이 이 공간을 쓴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가롭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우리나라라면 천 명의 학생들이 모든 똑같이 등교해 한 공간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일 테지만, 이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선택한 교과가 다르고 그에 따른 수업시간이 달라 한꺼번에 똑 같은 시간에 등교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천 명의 학생들이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각기 다른 시간에 등교해 학습을 해야 함으로 이런 자유롭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셈. 이곳은 우리네 대학보다도 훨씬 훌륭한 공간이며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주에 개학한 이 학교(핀란드는 8월 중순에 보통 개학을 한다)는 이미 수업은 시작되고 있었고, 미안하게도 그들은 우리들의 방문에 불편해 하지 않고 오히려 교실을 열어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임이 분명했던 터였다. 하여간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교문을 들어설 때 만난 한국을 사랑하는 이름 모를 여학생의 안내로 수업의 전개 상황들을 대략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심리학을 공부하는 교실에서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언급된 현 핀란드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와 연결돼 매우 흥미롭게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현 핀란드 고등학생들이 대학진학에서 최대로 관심을 보이는 학과는 심리학, 의학, 법학 순인데, 이는 최근에 고등학교에서 심리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대학진학생들의 상위 5%가 진학하고 있다는 심리학과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기만 했다. 2층은 핀란드 학교답게 컴퓨터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어느 곳에서든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설치가 돼 있고 둥글게 이어진 복도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컴퓨터를 통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IT강국다운 우리와 이런 면에서는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문화였다.
서유럽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그들만의 풍경을 뒤로 하고 우리는 가운데 천정에 이어진 창문들로 1층에서 3층 공간이 모두 빛을 받는 공간으로 뚫린 그들의 공간을 한동안 부럽게 지켜보았다. 오래된 낡은 학교를 다시 지은 지 10년. 그들의 공간은 단순히 창조적인 건물이 아니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 교육에 대한 철학과 신념, 그리고 그에 맞는 교육과정과 교과와 수업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지어진 교육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공간이었다. 이따금 보이는 교사만의 공간, 작지만 적은 인원이 매우 진지하게 학습에 임하는 모습(이따금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들고 딴 짓하는 학생도 보였음)이 그저 부럽고 또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둘러보고 난 우리들은 학교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고 다음 학교인 야또까르다노 종합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생태도시를 표방하는 곳에서 핀란드의 새로운 혁신학교를 실험하는 그곳. 야또까르따노는 또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했다.
야또까르따노종합학교는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라고 한다. 야른벤빠 고등학교처럼 한적한 곳에 자리한 우리네 학교와 전혀 다른 일반 건물로 보이는 그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학교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들어서자 만난 공간은 야르벤빠 고등학교처럼 식당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던 지라 우리를 맞아준 교장선생님은 식사부터 먼저 하자 하신다. 안승문선생님과 이미 잦은 만남을 가졌던 교장선생님은 아주 편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식당에는 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고 옆 귀퉁이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여중학생이 아이들의 식사를 돕는 당번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학교식. 5년 전 프랑스 초중고사립학교에서 먹던 학교식을 떠올리며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세 가지 정도의 음식과 우유로 대신하는 간단한 점심. 점심을 먹으면서 이 학교의 공간을 살펴보았다. 이곳도 식당 위로는 뻥 뚫린 구조에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어 자연조명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머리 위로 조명장치가 달리고 한쪽으로 무대로 쓰이는 장소가 보이는 것을 보니 이곳이 식탁만 치우면 멋진 공연무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 곁에서 밥을 먹으며 우리를 눈치껏 바라보던 초등학생들이 어느새 자리를 떠 한켠에서 소곤소곤 거리더니 용기를 내었던지 우리에게 와 한 여자 아이가 “웨어 아유 프프롬? 차이나?”라며 영어로 몸을 비틀어가며 수줍은 듯 우리가 온 곳을 묻는다. 우리는 그 모습이 예쁘고 반가워. “코리아!‘라고 해 주었다. 알겠다는 듯 도망치는 아이들 모습은 여느 한국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반면 저만치 떨어져 있는 중학생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한 뒤, 식사 공간 한 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한 공간을 들어가 보았다. 넓은 공간을 중심에 두고 가장 자리에 8개의 교실과 작은 공간들이 배치돼 있다. 거실과 같은 공간과 가장자리 교실 공간에서는 한창 수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거실공간에서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쪽에서는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 그룹에 특수교육 교사가 지도를 하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일반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몸을 움직여 영어를 익히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거실 가운데에서 가장자리 교실들을 둘러보면 모든 창문이 개방되어 무슨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안한 듯 교실들을 둘러보자 교실에서 교사들이 나와 지금 무슨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도 영어로 간단히 안내해 주었다. 때로는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과 영어수업에 참여해달라는 표시도 하는데, 우리를 귀찮아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공간과 같은 것이 이 학교에 5개가 있으며 각각 하나의 학습공동체로 무학년제로 섞여 6~7명의 교사들과 1학년부터 9학년까지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정말 이들의 상상력이란, 정말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무학년제의 개념이 프랑스 프레네 학교를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달라 헷갈리기도 해 안승문샘과 몇몇 선생님들이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학년이 함께 또는 따로, 교과별로 주어진 교육과정 혹은 선택한 교육과정을 유기적으로 받아가며 각기 다른 5개의 그룹이 6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공간을 빠져나와 과학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교장선생님과 부교장생의 안내로 학교에 대한 소개와 핀란드교육에 대한 이런 저런 소개와 안내를 받은 뒤, 우리는 다시 학교 건물과 수업장면을 둘러보기로 했다. 교실 말고도 이곳에는 다양한 특별실이 구비돼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조리학습이 한창 진행되는 특별실이었다. 이곳에서는 3학년 이상이 해야 할 활동과 7학년 이상이 해야 할 활동이 각기 나뉘어져 있는데, 조리실, 재봉실, 목공실, 기계실 등 다양했다. 이어 방문한 수업은 음악수업. 각기 다른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음악수업을 받고 있었다. 새롭게 만난 아이들이어서 서로를 알기 위한 과정이어서 둥글게 모여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학교 시설과 수업을 보면서 교육과정에만 있고 학교 현장에 공간과 시설이 갖춰져 있지 못해 이론으로만 공부하고 평가를 하는 우리네 열악한 교육환경이 떠올랐다. 어쩌면 당연한 공간이어야 할 이들의 교육시설과 문화에 부러움을 갖게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밖에도 교사휴게실, 교사작업실, 상담교사와 보건교사들의 작은 공간들은 우리도 있는 공간이라지만 구조적으로 배치된 모습에서 한층 부러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이번 여행에 중학교, 초등학교 자녀와 함께 한 선생님의 아이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거칠지만, 옮기자면. “우리나라 교육은 쓰레기 같아.”
한 공간에 각기 다른 학습공동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야또까르따노종합학교를 뒤로 하고 이제 우리 일행은 핀란드 헬싱키를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간단하게 기념촬영을 마친 뒤, 헬싱키 시청 앞 항구에 있는 마켓시장 쪽으로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급하고 정신없이 둘러 본 핀란드의 학교였지만, 버스를 타는 내내 그들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 사회의 힘과 핀란드 사람들의 철학이 다시 한 번 부럽고 또 부러웠다. 마켓 시장 인근 항구에 주차를 한 뒤 안승문선생님은 스웨덴으로 가는 호화 유람선 실리아 라인을 타기 전까지 1시간여 시간을 주시며 간단한 쇼핑과 산책을 하라 한다. 급히 내린 나는 어젯밤 헬싱키를 함께 누빈 몇몇 선생님들과 핀란드 이딸라 컵과 그릇을 구매하러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하는 백화점을 찾았다. 가다가 기념품 그릇 가게와 옷 가게를 들리기도 했는데, 몇몇 선생님들과 나는 백화점에 들어가 그릇과 컵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비싼 값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지만, 이갑순선생님과 한인경선생님은 각각 냄비받침대와 무민컵을 구매했다. 하지만, 나중에 유람선을 탔을 때 그곳의 면세점에도 비슷한 제품이 한참 싸게 파는 사실을 알고 이 분들 얼마나 후회를 하셨는지. 급히 시간에 맞춰 걸어오다 또 하나 기념품을 파는 곳에 들렀다. 핀란드 고유 브랜드인 모양인데, 나와 이갑순선생님은 이곳에서 예쁜 티 하나를 샀다. 신용카드로 구매를 하면서 이갑순선생님이 점원의 유창한 영어에 당황해 판단력이 흐려지셔 일어난 해프닝은 오늘의 또 다른 추억거리였다. 무엇보다 가고 오는 길 지나친 헬싱키의 명물 마켓시장. 우리네 시장들과 다름 없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인상은 매우 깊었다.
그렇게 해서 오후 3시 30분. 우리는 마침내 그 이름난 실야 라인 크루즈를 타게 되었다. 부두에 내려 입장권(식권과 방에 두루 쓰이는 전자티켓)을 받아 짐을 끌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쓸 방은 4인실. 2층 침대가 있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야간침대열차가 순간 떠올려졌는데, 그곳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넓은 공간이었다. 짐을 풀어놓고 이내 이갑순선생님과 한인경선생님, 그리고 나는 호텔 리조트를 닮은 실야 라인 크루즈 투어를 했다. 이 유람선 내부에는 여러 개의 음식점, 바, 쇼핑몰, 사우나, 나이트클럽 등으로 가득차 있다. 먼저 면세점을 들러 본 우리는 대충 살 상품을 정해놓고 12층으로 가 바다밖 풍경을 보았다. 사진도 찍고 헬싱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핀란드 날씨 치고도 유달리 맑고 푸른 날이었다는 이 날. 햇볕이 내리 쬐는 갑판 높은 곳에서 바다와 헬싱키를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아, 발트해여~
아직 밤을 먹을 시간까지는 2시간여 남았다. 밤을 8시에 먹을 수 있다고 티켓에 찍혀 나와 있었다. 점심을 학교식으로 대신한 터라 조금은 출출했지만, 막상 배가 움직이고 나니 한동안 수 많은 핀란드의 섬을 지켜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상판 벤치에 자리를 잡은 우리 셋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는 이야기, 학교이야기, 교육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 이야기 끝에 나온 한인경선생님의 갑작스런 눈물 때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오랜만에 여유로운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저녁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쇼핑에 들어갔다. 러시아 여행 이후 나 또한 쇼핑에 대한 벽이 이미 허물어져 있는 상태여서 여선생님들을 따라 신나게 달렸다. 헬킹키 자석에 이딸라 컵, 다시 면세슈퍼로 내려가 초콜릿과 껌을 사고 객실로 들어와 짐을 다시 챙기고는 마침내 그 유명하다는 실야 라인 크루즈 뷔페를 먹으러 6층으로 내려갔다.
원래 뷔페는 스웨덴에서 시작된 음식문화라 한다. 바이킹들은 오랜 기간 바다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신선한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널찍한 상 위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놓고 식성껏 갖다 먹는 패기 넘치는 식사법을 즐겼던 것인데, 이런 스칸디나비아식 상차림을 ‘스뫼르고스보르드’라고 한단다. 이것이 바로 뷔페의 기원이라는 것인데, 그 참 맛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니 한창 기대가 컸다. 역시나 들어서자 마자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수많은 음식들로 입맛이 도는데, 역시나 우리나라와 다른 뷔페 분위기. 맛은 러시아보다 훨씬 좋기는 한데, 썩.... 그다지. 그래도 이보다 좋은 음식을 앞으로 여행에서 맛날 수 없다는 생각에 내가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과일들과 쥬스는 많이 많이 먹어 두었다. 배를 그렇게 두드리고 우리 일행은 해지기 전 갑판에 또 올라가 어제 해질녁에 보았던 그 아름다웠던 풍경을 다시 만나 만끽했다. 아, 광활한 발트해의 해질녘을 볼 수 있다니. 한동안 선생님들과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발트해의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차갑고 세찬 바람 탓에 오랫동안 선상에서 노을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추억이었다. 아들과 아내와 꼭 다시 와 보고 싶은 그리울 추억.
선상에서 내려온 뒤 한인경선생님이 6층에 있는 나이트클럽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을 했다. 적극성을 띤 한인경선생님 덕에 나와 몇몇 선생님들은 기대와 조심스런 마음으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그것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했고 가족과 노부부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라이브밴드의 음악에 맞춰 처음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더니 점차 발라드와 옛 팝송이 나오더니 노부부들의 댄스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참으로 따뜻한 풍경, 어느 영화에나 나올 법은 장면들이 이어지고 우리 선생님들은 맥주를 사들고 와 적당한 자리에 앉아 무대를 지켜보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지 그때 한인경선생님을 필두로 무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나가자 난리셨지만, 이곳 풍경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어색했던 나는 정중히 물리치고 자리를 지켰다. 잠시 뒤 멀리서 언제 오셨는지 안승문선생님과 남자 선생님 두 분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시더니 무대와 함께 몸을 섞기 시작했다. 블릭타임이 이어지고 다시 맥주를 마시는 곳에 한 데 모인 선생님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피곤하기도 하고 이 글을 써야 하는 탓에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북유럽 이틀째. 헬싱키를 떠나 스톡홀름을 만나는 길에서 나는 또 어떤 것을 보고 느낄지 기대가 크다.
피곤하다. 그만 자야겠다.
'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 > 국외 연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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