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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정래의 '한강'을 읽고......

갈돕선생 2005. 12. 29. 22:49

<태백산맥>에 이어 같이 구입한 <한강>을 연이어 읽어 보았다. 정확히 한 달만에 다 읽어 보았다. 대하소설의 재미가 더욱 느껴지는 요즘. 조정래의 역사의식을 새로운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읽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두고 싶다.

시대적 배경은 60년대 초에서 80년 광주민중항쟁까지라는 멀지 않은 시대여서 그런지 태백산맥에서 접하던 문체와는 또 다른 느낌과 감동을 받았다. 단적으로 한강은 60-80년에 이르는 20년간의 자본과 권력을 쥔 이들과 대다수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함께 엮어 내고 있다. 이를 정리하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의 한강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지만,

첫째, 일제 강점기 시절 단죄받지 않은 친일파 자본가들과 정치가들의 파행적이며 반역사적인 행보

둘째, 반공이데올로기로 희생된 이들에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들

셋째, 새로운 시대에서 가난의 그늘과 권력으로의 불나비 같은 인생을 가는 고시생들과 판검사들

넷째, 4.19와 함께 했던 이들의 계급적 한계와 더불어 역사적 배신 내지는 변절하는 과정 묘사

다섯째,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야학을 이끌어 내고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에서 산업역꾼이라는 미명아래 철저히 노동을 착취 당했던 우리들의 공돌이 공순이들의 삶

여섯째, 외국노동자로서 먼 타향 독일로 가야할 수 밖에 없었던 광부와 간호사들의 애닲은 삶의 모습

일곱째, 경제재건이라는 특명을 받고 총받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월남파병인들의 삶의 굴곡

여덟째, 월남특수의 상실로 뾰족한 경제개발의 촉매를 찾지 못했던 한국자본과 권력자들이 대규모로 노동자들을 사막특수라는 유혹으로 사우디로 내 몰았던 건설의 시대

아홉째, 박통정권의 철옹성같은 독재와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죽여야 했던 소수의 정치가와 언론기자, 학생, 교수와 같은 지식인들의 고뇌

이 밖에도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아래 날로 피폐해 가는 농촌의 현실 속에서 그저 입발린 푸념과 비저항적인 몸부림으로 일관하는, 그리하여 결국은 도시빈민으로 자신의 삶의 공간만을 옮겨가는 이들의 삶, 그리고 간간히 엿볼 수 있는 당시 시대상과 계급상승의 의지들로 똘똘뭉친 우리네 어머니들의 가슴 아픈 삶과 함께 한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60-80년의 20년간을 마냥 머리속으로만 그리고 몇몇 문건과 글에서만 얻어내던 분절식 지식이 이 한강으로 한 데 모아지며 정리가 되었던 '한강'은 역사의 한 기록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태백산맥에서도 느꼈듯이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씩 서둘러 정리하는 글의 전개와 70년대식 남녀간의 사랑 어투가 다소 신파조여서 고개가 갸웃거려지거나 때로는 픽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대목은 지금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쉽게도 조정래씨는 이 한강을 끝으로 대하소설 작업의 끝을 맺고자 하고 있었다. 죽기 전 손주에게 들려 줄 괜찮은 동화 한 편이 소원이며 지금껏 고생한 자기 몸둥아리와 아내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소박한 그의 꿈을 읽으며 이제는 글과 함께 늙어가는 한 평범한 노인을 발견한다. 그러나 하지만, 그렇다면 80년 광주에서 90년대에 이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한국 역사의 중요한 과정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질까? 우리 역사의 또 하나의 질곡이었던 그것을 완결치 못하고 손을 든 조정래씨에게 아쉬움 섞인 원망을 해 본다.

아무튼 태백산맥만한 감동과 재미는 덜 하였으나 60-80년대의 역사를 과연 누구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가슴 쏙 짜릿하게 들을 수 있겠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 말마따나 전라도 말로 정말 '한강'이라는 대하소설은 그 재미가 솔찮혔다.

출처 : 부산교대 맥
글쓴이 : 박진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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