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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윤영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읽고......

갈돕선생 2005. 12. 29. 22:50

지난 달 우연히 신문 책소개란에서 이 책을 접하고서는 적잖이 흥미를 느껴 사보게 되었다. 요즘 조정래의 '아리랑'을 지루(?)하게 읽던 차에 양념으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작년부터 오래 정착하며 살 집을 구하던 차에 집에 대한 그리고 아파트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책 내용에 무척 끌렸던 것이다. 물론, 색다른 지식을 접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적지 않았다.

책표지가 색다르게 형광빛이 들어간 주황이라고 해야 하나? 책날개에 찍힌 저자의 사진은 모델사진처럼 포즈를 취한 것이 얼굴이 곱상하니 68년생 동갑이 한층 책에 대한 흥미를 돋구었다. 물론 애기가 있는 아줌마였다. 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건축학과 대학원을 간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며 인터넷 한겨레에 꾸준히 집에 관한 글을 연재하다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내게 된 모양이다.

본인도 밝혔듯이 글을 쓰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나, 나름대도 폭넓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여성 특유의 센스와 짧은 문체로 지루하지 않게 요소요소에 필요한 사례를 제시하는 방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폭넓은 지식만큼이나 깊이 있는 지식의 한계를 보이는 부분이 조금 눈에 거슬렸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에 대한 부분이었다. 잘못 걸려도 한 참 잘못 걸렸다.

이 책에는 제4부 건물들의 비빌을 얘기하며, 백화점, 모델하우스, 학교, 교회, 절, 오피스텔, 성당, 마천루 등을 얘기한다. 그 중 학교 이야기를 하며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칭되는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민학교란 말 그래도 국민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학교이며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국민을 교육시킨다는 이른바 국민교육의 개념은 서구의 근대이후의 산물이며, 우리나라도 근대화와 함께 서구식 국민교육을 도입하였다......(중략)........따라서 예전에는 그 명칭조차 국민학교였으나 얼마 전부터 다소 완곡하게 초등학교로 바뀐 것이다."

글쎄, 이게 맞나? 우리 교사들이 알고 있다 시피, 우리나라의 국민학교의 어원은 '황국신민학교' 즉,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점령하면서 우리조선의 아이들을 일본 천황의 신민 즉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황'자와 '신'자를 뺀 '국민'을 학교 앞에 붙여 일본제국주의의 영원함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모든 국가 주요 요직에 친일반역자들이 득세하면서 '국민학교'의 명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50여년을 끌어오지 않았던가. 민주화 이후 한글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일본잔재 청산을 외치는 민주단체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저자의 말마따나 완곡하게 바뀐 것이 '초등학교'였다는 것을 모르고 이렇게 적었는지 적지 않게 의심스럽다. 더구나 '....바뀐 것이다'라는 확신에 찬 말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윗 글 중략된 부분에 초등학교 한 차시 수업 시간이 45분이라고 얘기하는 데서 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하여튼 이것은 출판사 게시판에 글을 올려 수정을 요할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집에 관한 괜찮은 글을 읽었다 싶었는데, 이러한 부분이 책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영 아쉽다.

이 책에 대한 큰 불만은 여기에서 그친다. 이것 말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일단 쉽다는 데 매력이 크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나뉘어 있고, 1부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집에 대한 이미지 2부는 집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 즉 집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했던 여성이야기, 3부는 이제는 한국 집의 상징이 되어버린 아파트 이야기, 4부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건물들의 숨겨진 비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꼭지만으로도 적지 않은 집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선사시대의 집부터 로마제국의 집, 유럽봉건시대의 영국과 프랑스의 집, 아파트의 시초, 주상복합 건물의 시초,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대접받고 성공한 아파트의 비밀, 집을 지을 때 가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방향에 대한 편견, 아파트의 허와 실을 짚어 보며 아파트 광고와 모델하우스의 교묘한 전략에 속아 넘어가는 한국사람들의 세태, 각종 건물들의 고단위 심리학적 동선과 구성, 특히 여성과 집과 관련된 인류학적 이야기는 남성 독자라면 꼭 읽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딱히 남성에게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여성 스스로도 몰랐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있으면 이사를 갈 집(새로 분양되는 아파트 전세집)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3-4년 후 장만하게 될 집도 떠 올려 보았다. 아울러 최근에 내 주변에서 아파트를 분양받는 이들과 때로는 적은 식구에도 40평이 넘는 평수를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집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혹, 재신증식의 방편이 되고, 사회적 위치를 반증하는 도구로 쓰이는 집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프랑스에서는 좀처럼 40평 이상의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홍세화씨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 오른다.

이글을 쓴 서윤영씨는 현대인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은 이제 가풍과 독특한 가정의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아닌 그저 건축자재로 둘러싸인 물리적인 집에 머물로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제 집없이 떠돌고 있는 신세라고 말한다. 각종 만남과 친분을 나누고 사업까지 해결했던 그 옛날의 집은 사라지고, 이제 집들이 조차 집 바깥에서 해결하는 등 이제 정말 집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잠을 자는 여관방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릴적 나의 집들도 떠 올려 보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괜찮은 장사꾼으로 네댓개의 점포를 운영하며 상가가 딸린 큰 집에서 살던 어릴 적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 오른다. 이어 가세가 기울어 새벽에 봇따리를 싸고 부산으로 넘어와야 했던 곳은 영도. 그 이후 우리 식구들은 한방에 여섯식구가 살아야 하는 생활을 10년간 해야했다. 이후 오로지 믿을 거라고는 부동산 밖에 없다던 아버지는 자식에게 하나씩 재산으로 물려줄 집을 구했고, 이 집은 나름대로 우리 아버지에게는 재산가치를 톡톡히 해 왔다. 최근 집 세채 이상 가진 이들에게 보유세와 양도세를 올린다는 엄포에 우리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집은 이제 점차 재개발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에게 집에 대한 이상은 아파트였다. 대학 시절 아파트로 이리저리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맛본 아파트 그 깨끗함과 특유의 냄새는 당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구질구질한 곳으로 여기게 했고 내가 나중에 살 곳은 아파트여야 한다는 생각이 떠 나질 않았다. 특히 한 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아야 했던 10년간의 기억은 조금 더 넓은 집을 꿈꾸게 했고, 지금도 넓은 집을 가지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있질 않다. 어쩌편 40평대를 가지려 하는 많은 중산층의 상당수는 나의 기억과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이미 일본은 제4세대 아파트 세대로 넘어가면서 고층아파트에서 벗어나 전원식 아파트와 빌라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살집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끊임없는 자본의 유혹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사이의 긴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30-40년 후에는 별 것 아닌 건물이 될 강남의 타워 펠리스가 아닌 진정한 행복한 나의 삶을 감싸줄 집을 그리워 해 본다.

그러한 집을 이 책을 쓴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고 싶은 그 집은 이 책 맨 끝 후기에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문을 마음대로 열어놓고 살 수 있는 집이었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가 용기 있게 현관 문을 열어 놓고는 생각한 집에 대한 꿈이었다.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싶다.

끝으로 다소 아쉽다면, '집'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위주로 하다보니 당연히 사회경제학적인 시각이 빠져, 집과 관련한 종합적인 시각을 얻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빈민층이 살던 집 얘기는 전혀 없다는 점, 그것이 집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지 않을지. 한편, 아파트를 비롯한 집에 대한 접근도 서구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억제 하기 위해 장기 대출을 정책적으로 권장했던 적이 있으며, 그 장기대출을 갚기 위해서 격렬한 노동운동에 나서지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삶의 역사는 여기서 빠져 있다. 우리나라도 그것이 자의던 타의던 20-30년간의 장기대출에 대다수 임금노동자들의 목매달게 되었고, 직장에서 그 기간동안 숨죽여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직면하였음을 보면서 집에 대한 사회경제학적인 접근은 집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출처 : 부산교대 맥
글쓴이 : 박진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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