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석의라는 아이가 있다. 체구만 봐도 비만도가 높아 걱정이 드는 아이다.
이틀이 지나서야 알았는데 글은 떠듬떠듬 읽는데 도대체 쓰기가 안되는 아이였다.
이제껏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알아보니 왠만한 글쓰기는 선생님이 대신 해주셨고 부모님도 가르치기보다는 대신 써 주는데 익숙해 있었다.
먹는데 부족함을 늘 느끼며 집중도가 낮은데 늘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말장난이 만만치 않다. 당장 이것 저것 챙길 일이 많아 다음주만 기다리고 있다. 이놈 남겨서 글쓰기 차분차분 시키고 책도 읽어줘야 할 판이다.
재밌는건 이녀석이 곧잘 내가 가르쳐 주는 시를 따라하고 노래도 따라한다는 거다. 생각보다 조숙한 어른들의 말과 흉내를 곧잘 내는 것 같았는데 오늘 보니 너무 잘 따라 준다. 칭찬을 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딴전이다.
요즘 점심시간 만 되면 이녀석은 꼭 내 곁에 온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꼭 토를 단다. 오늘은 내가 거의 밥을 다 먹을 즈음,
"선생님은 음료수 안 좋아 하세요."
"아니, 좋아하지 근데 물을 많이 좋아해요."
"으음...."
잠시 뒤에
"선생님 물 떠다 줄까요."
"야, 석의가 선생님에게 물을 떠다 준다고?"
"아뇨, 내일요."
"에이, 지금 좀 떠다주라. 목 마른데...."
한참 시루더니 곧바로 일어서서 물을 가지러 갔다. 가지고 오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잘 먹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씨익 웃고 가더라.
사실 지난해 우리 학교 3학년에 유명한 3총사가 있었다. 이 아이들이 왜 유명해졌냐면 도무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 안팎을 활개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포기를 했는지 교육이 되질 않던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 중 하나는 전학을 가고 둘만 남았는데 그 중 한 아이가 바로 이 석의라는 녀석이다. 아이들 말로는 그래도 석의는 좀 나은 편이었단다.
생각보다 잘 따라주는 석의가 은근히 내 관심을 끈다. 이 녀석과 일 년간 함께 있으면서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녀석이 바라는 것처럼 일단 내가 그 아이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 일이 제일 급한 일인 것 같다.
지금 석의는 교탁 옆에 책상을 옮겨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내 옆에 책상만 덩그러니 있다. 석의와 함게 만들어갈 좋은 애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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