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06년 수업일기

절실함이 가져다 준 달라진 아이들 시

갈돕선생 2006. 4. 21. 18:21

삶의 절심함이 좋은 시의 바탕이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오늘 우리 교실에서 벌어졌다.

좋은 시를 느낄 줄 알고 감상할 줄 알게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로 꾸며쓰고 상상해서 쓰는 시를 안 쓰게 하려고 들과 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고, 비오는 날 운동장을 걸어보게도 하고 좋은 시를 자주 들려주었지만 아직 아이들 마음에는 두꺼운 벽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첫술에 배부르겠냐는 생각으로 교과서 속 공부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문득 '시험'을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 해보야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 주면 우리 학교에서 처음 실시하는 '중간고사'가 있다. 벌써부터 학원과 학부모님들의 관심이 높다. 아이들도 덩달아 시험범위와 성적때문에 긴장도 하고 걱정도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오늘 단원평가도 한 탓에 아이들에게 '시험'을 주제로 시를 적게 해 보자는 생각이 문득 떠 올랐다. 다른 주제를 생각했었는데 이보다 더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주제는 없을 것 같아 바꿔 보았다.

 

"여러분, 다음 주면 중간고사를 치지요?"

"네!"

"어때요?"

"떨려요."

"걱정 돼요."

"왜요?"

"못 칠까봐서요."

"시험 못치면 어때서요. 틀린 것이 있으면 새로 알면 되잖아요. 그런 게 공부잖아요."

"엄마한테 맞아요."

"저도요. 저는 한 문제 틀릴 때마다 맞은 적도 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흥분의 도가니다. 때맞춰 아이들에게 백창우씨의 노래 '시험'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시험

 

경북 울진 온정초등 4년 권혁석

 

한 문제 틀려서

쫘악 긋는 옆짝

내 가슴이 쭉

째지는 것 같다.

맞으면 내 가슴이

펄쩍 뛴다.

나는 틀리고

다른 아이가 맞으면

머리에서 뿔이 난다.

 

 

시험

 

경북 청송 부곡초등 5학년 정명순

 

시험을 미희가

더 잘 쳤다.

 

괜히 미희가

미운 생각이 난다.

 

시험은 친구를

빼앗아 가는 것 같다.

 

 

노래와 이 시를 읊게 하니 다들 공감하는 얼굴들이었다.

 

"자, 이젠 여러분이 겪었던 시험 얘기로 시를 써 볼까요?"

"시험때문에 걱정했던 것, 시험때문에 벌어진 일을 떠 올려 보세요."

"꼭 필요한 말을 적으려 노력하고 다 쓴 시는 다시 입으로 읽어 보세요."

"앞 뒤 말이 안 맞거나 글자가 틀리거나 빠진 부분이나 더 넣어아 할 부분을 찾아 다듬어 보세요."

 

아이들은 이런 저런 생각을 떠 올려 보더니

쑥쑥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20-30분이 지나고 이제 아이들 한 명씩 쓴 시를 읽어주며 함께 시 맛보기를 해 보았다.

놀랍게도 답답하던 시쓰기가 어느새 사라지고 거침없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이 읽으면 놀랄 만한 시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아이는 심하게 써낸 윗 부분을 달래는 듯한 싯구가 있어 고쳐 주기도 했다.

 

시험때문에 맞은 이야기, 말로 상처받은 이야기, 시험문제를 대할 때 느끼는 긴장들이 솔직하게 드러난 시들이 꽤 많았다. 주말에 생활시 한 편을 더 적도록 숙제를 내 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그 시를 옮겨 적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이들 시를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 속에서 시를 쓴 아이들 모습을 찾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 겪은 일을 모두 담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짧은 글을 쓰는 시쓰기를 우리 아이들을 머리로만 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얘기가 나오지 않고 남의 얘기를 빌어다가 마치 자기 모습인양 포장을 하려 했다. 상황은 내 것인데 남의 얘기를 적어대니 글이 살아있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시를 써야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 탓이랴. 어른들이 어른들 흉내내는 말재주가 잔뜩 들어간 머리로 쓴 시를 좋은 시라고 칭찬했기에 평가했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공부하지 않았겠는가. 교과서도 아이들의 마음을 키우는 시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칸 매꾸고 바꿔쓰기식의 공부로 말재주만 익히게 했으니 늘 아이들은 그런 시를 흉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새삼 한동안 잊었던 감동. 삶의 절실함이 가져다 주는 시의 감동을 국어수업시간에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