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이던가 여름이던가 우리교육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더니 여기 저기에 책 관련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김중미씨가 첫 장편 소설을 썼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제목은 '거대한 뿌리' 이 작품은 우리교육에서 '검둥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판사 이름을 하나 더 만들어 평화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의욕이 담긴 첫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나는 지난 9월에 만나게 되었다. 2학기 개학하자마자 우리교육 이진주, 김영재 기자가 나를 찾아왔더랬다. 연재하는 교사들을 담당기자가 찾아가는 일정때문이었다. 그때 선물로 들고 온 책이 '거대한 뿌리'였다. 그때 기자들 보고 이렇게 선물로 줄까봐 일부러 사지 않고 기다렸다고 농을 던지기도 했는데, 그 책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다 며칠 전부터 읽게 되었다.
참으로 기쁜 것은 그 김중미 작가가 이번 우리교육과 전교조 경남지부과 함께 준비하는 교사연수때 이곳 김해를 찾는다는 것이다. 우리교육이 김중미씨를 초대한다고 했을때 무척 기뻤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무척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 아니라 어른을 대상으로 첫 장편을 쓴 김중미씨와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얼마전 그분과 직접 통화도 하고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한편 마음이 조금 들뜨기도 했었다.
'거대한 뿌리'라는 소설은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미군기지 동두천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삶의 희망과 좌절을 안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을 딛고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갔던 사람들과 그 음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어디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존재감을 깨달았다 전하고 있다.
이 책의 화자 '정원'이는 김중미 본인이다. 내용의 큰 줄기는 자신이 동두천에서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 배경을 그리고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이야기를 펼친 듯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화자 '정원'은 과거에서는 동두천과 얽혀 사는 사람들을 현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노동자와 얽혀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그저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 속 과거의 인물 가운데 재민이 해자, 경숙이, 윤희언니는 동두천의 실상을 그래도 보여주는 인물들로 등장한다.
일명 튀기로 혼열아이며 화자인 정원이와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재민이는 백인미군을 사랑해 그를 붙잡고자 억지로 가졌던 아이로 등장한다. 그 백인은 어머니가 아기를 허락도 없이 낳았는데다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힌다며 한국을 떠나기전 어머니를 죽도록 때리는 장면으로 동두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으로 입양된 줄만 알았던 재민이와 정원의 만남이 이야기 끝을 주도하고 있다.
해자는 일명 오피스라 불리는 포주 엄마의 딸로 등장한다. 아버지를 억지로 베트남전쟁에 나가게 해서 그 돈으로 오피스를 차렸지만, 장애를 가진 몸으로 한국땅에 돌아온 아버지를 오히려 괄시하는 엄마를 미워하기도 한다. 혼열아 재민이를 짝사라하지만 차마 정원이 앞에서 표현을 하지 못하던 이 아이는 정원이가 동두천을 떠난뒤 미군에게 겁탈당한 뒤 창녀의 길로 들어섰다.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나 정원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경숙이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데, 새침떼기이며 공주기질이 있는 독특한 초등학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자주 미군내부를 드나들며 노래도 부르는 아이여서 학교내에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한 아이였다. 경숙이는 미군과 어울리는 여자들의 빨래를 도맡아 하며 생계를 이끌어 가는 어머니와 별볼일 없는 아버지 곁에서 어서 떠나 미군 장교의 입양아로 미국으로 어서 떠나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마침내 그녀가 소원한 입양의 길로 들어서면서 정원이의 짝꿍이었던 경숙이는 그렇게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윤희언니는 정원이에게 무척 애틋한 인물로 다가선다. 고모의 딸이기도 했던 윤희언니는 오빠 동생들의 대학과 진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공부에도 열성이었고 꿈도 많았던 윤희는 가세가 기울자 어쩔 수 없이 미군과 관련된 가게에서 일하다 결국엔 흑인과 결혼하여 한국을 떠난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재민이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되는 인물이다. 유난히 정원이를 아껴주었던 윤희 언니를 통해 작가는 동두천의 어두운 그림자와 못난 인간궁사을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러한 과거 인물들을 뒤로 하고 화자 정원은 동두천이 가져단 준 삶의 무게와 진실때문에 그 그림자와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맞서 싸우며 희망을 찾는 일에 나선다.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사회 약자들을 위한 일을 하며 조그마한 놀이방을 운영한다. 그런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 '정아'다.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와 그 폭력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세상 남자 다 그런거 아니냐며 마지 못해 사는 어머니 사이에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정아. 그 정아가 나름의 희망을 갖고 세상에 나섰지만 결국 꿈을 접은채 기죽어 살다 정원을 만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던 정아가 어느 순간 정원을 찾아와 한 이주노동자의 애기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순간, 정원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정아를 설득하려다 오히려 정아로부터 위선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듯 그 갈등과 위선이라는 혼란 속에서 지난날 동두천을 찾고 재민이와 재회하면서 자신에게 감춰진 위선의 그림자를 걷어내며 다시 정아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거대한 뿌리의 큰 줄거리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제2의 동두천이 될지 모르는 평택을 바라보면서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삶의 그늘과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보낸다. 아울러 이제는 그 그늘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채워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아니 그저 텔레비전이나 이런 저런 잡지와 신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 알았던 그 동두천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은 새삼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기도 하고 이제는 낯설지만 않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두개의 시선, 아니 위선을 깨닫게도 해 준다.
하지만, 첫 장편이라서 그런가, 아님 청년소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짧은 문장으로 빠르게 이어가는 김중미식 글쓰기의 맛은 잘 드러나지만 뭔가 부족한 감동이 있다. 질퍽한 괴로움, 깊은 갈등으로 빠지게 하는 흡입력, 우리 같은 소시민의 위선을 마구 휘젓는 상황전개가 무척 아쉬웠다. 뭔가 그리다만, 뭔가 쓰다만 그래서 감동이 '괭이부리말 아이들'만은 못했다. 김해에 김중미씨가 내려오실때 내가 마중과 배웅을 계획이다. 1시간 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이번 겨울, 책에서 채우지 못했던 아쉬운 2% 아닌 20%를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거대한 뿌리 김중미 작가의 말 가운데에서
......동두천에서 자란 덕분에 힘세고 돈 많은 사람 나라에 빌붙어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는 파렴치한 이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차별과 편견이 열등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동두천에서 경험하고 배웠다. 그래서 동두천은 언제나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도반이기도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인천에서 강화로 오가다 보면 양곡, 마송에서 베트남, 방글라데시, 미얀마 노동자들과 자주 마주친다. 재작년 고용허가제 이후 거리를 오가는 이주노동자들의 가족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밭에서 일하는 젊은 여인들 중에는 베트남 여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나는 그이들 품에 안긴 아이들을 볼 때마다 혼잣말을 하듯 빈다. '너희들만은 이 땅에 단단히 서 있을 수 있기를, 그래서 이 땅이 가난한 너희들과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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