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07년 수업일기

드디어 입을 열다!

갈돕선생 2007. 3. 13. 23:43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 일주일 동안 지난해 말 많은(?) 아이들에 익숙해 있던 터였는지 전에 없이 말이 없는 아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아이들 앞에서 국어 첫마당 수업인 '의견 나누기'는 처음부터 무척 어려웠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입을 열지 않는 아이들때문에 이런 저런 오해나 넘겨 짚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될지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동안 의견나누기 수업은 미루고 간추리기 공부에 집중하기고 했는데 오늘 다시 처음 주제였던 '내가 바라본 어른들의 문제'라는 벼름소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의견 나누기 수업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일주일 전보다 훨씬 짝과 함께 이야기 하는 자세가 편안해졌고 말도 많아졌다. 수다 좀 떨어달라는 내 요구에 부응하듯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 사이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훔쳐 들어 보았다.

 

대형 할인 매장에 갔는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어떤 어른이 새치기 하며 차례를 지키지 않아 화가 났다는 이야기부터 김밥집에 김밥 다섯줄을 돈을 내고 주문했는데, 뒤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자기 걸 가지고 돈만 내고 달아나더라는 얘기, 식당에 가면 자기는 사람 취급 안한다며 꼭 부모님이 요구를 해야 물이나 물수건을 갖다 줘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아이들의 불만은 교실을 조금은 시끄럽게 만들었다. 조잘조잘 대는 모습이 귀여워 모둠에 찾아가 내 눈높이를 아이들에 맞춰 들어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니 참 귀엽기가 그지 없다.

 

이어서 교과서에 실린 벼름소인 '청소'를 가지고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 밖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늘 강제된 청소에 익숙해진 탓인지 내 놓는 의견마다 그렇게 설득력은 없어보였다. 결국 아이들 요구에 따라 청소를 정해 보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지금 청소하는 대로 해 보고 문제가 발견되면 그때 다시 논의해 보자고 하고 수업을 마쳤다.

 

3학년까지 늘 누가 시키면 하고 조용히 하라면 하고 공부하라면 하는 식의 공부에 익숙해져 그럴까. 자기 생각을 건네는 걸 무척 조심스러워 하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긴 호흡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오늘 첫주의 답답함이 그나마 풀려서 다행이다. 아이들이 입을 열었지 않은가. 조금씩 내가 귀찮을 정도로 자기 주장을 펴내는 아이들로 커가길 바란다. 첫마당의 의견 나누기 수업이 비록 실패는 했지만 1학기가 끝날 즈음 아이들의 의견나누기 수준이 훨씬 달라져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오늘 탁승희라는 아이가 몰래 나에게 다가와 색종이로 접은 귀여운 편지 하나 건네주고 갔다.

 

내용인 즉,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선생님 제자 승희예요.

선생님! 말 잘 들을 게요. 일 년 동안 잘 지내요~

2007년 3월 13일 화요일

승희올림

 

그래 이 맛에 산다. 힘내자. 어깨 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