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08년 교사일기

잠시 숨을 고르고

갈돕선생 2008. 3. 8. 01:14

새로 만난 2학년 아이들과 한 주를 보냈다. 참 바쁘게 보냈다. 학년 초가 되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지만 말이다. 2학년이 어떤 아이들이지 이제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것에도 크게 받아들이고 쉽게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는 아이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프레네가 아이들의 속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을 얼핏 깨닫게 된다. 각기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발달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요즘은 아이들의 유형을 아홉가지로 구분짓는 에니어그램이 선생님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간다. 상담연수도 활발하다. 그중 정말 교육적으로 상담연수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른지 모르겠지만, 그런 과정들이 과연 아이들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어디선가 들은 얘기 하나가 있다. 요즘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뜨는 것이 건강프로그램이라 할만큼 오락성과 공익성을 함께 갖춘 이른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만큼 요즘 건강이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화두가 돼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거기에 초대받은 일류 의사들이 암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담배와 술, 과식을 하면 안된되는 말을 한다. 거기다 운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말을 내 뱉고 있다. 헌데 이런 의사들의 말을 어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의사가 비웃으며 내 뱉는다.

"한 나라의 국민의 건강이 회복되고 증진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국민이 담배와 술, 과식, 운동을 원할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라야 저 일류의사들이 내 뱉는 말들도 설득력이 있다."

 

오늘 직원회의(회의가 아닌 일방 전달이었지만)에서 다음 주 화요일 4,5,6 일제 진단평가 실시를 통보 받았다. 진정 이런 식의 교육행정이 저들이 말하는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창의성을 저해하는 교육방식이라고 불과 10년 전까지 만에도 떠들고 비판하던 저들이 다시 객관식 시험을 갖다 놓고 학력을 얘기하고 경쟁을 이야기 한다. 과연 그들의 논리가 맞을까? 그들의 교육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과 몇 년 안에 바뀌는 교육철학들로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이번 주 2학년 아이들과 지내면서 불현듯 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난리를 치는 탁상행정과 전시행정에 이 나라 교육을 망치는 저 행정가들과 정치가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내가 본 아이들은 아직 자기 나라 말과 글도 완전히 익히지 못한 2학년 아이들이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없고 오로지 아침에 오면서 군것질 하는 즐거움, 친구들과 만나 헤헤 거리며 웃으며 등교하는 아이들, 밥 먹을 때 내가 줄을 몇 번째 서는지가 오로지 삶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고 교사의 손발 짓에 스스럼 없이 웃어주는 순박함 그 자체였다. 이 아이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영어교육을 하겠다는 저들의 발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니어그램도 좋고 상담치료도 좋다. 하지만 아이들 삶을 규정하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교사들이 이것을 함께 고민하고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교육은 그만큼 멀어져만 갈 것이다.

 

오늘, 우리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하나하나 손잡고 뽀뽀하고 안아주었다. 첫날보다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자주보고 부대끼며 사는 일이 이 아이들과 사는 첫걸음이지 않나 싶다. 오늘 은서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워낙 집중력이 떨어졌던 아이인데, 내가 어떻게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 집중력에 차이를 보이는 걸 직접 확인했다. 결국 교사에게 문제가 있었을까. 지난 해 은서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담임교사에게 자주받았다는데, 은서의 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의 책임은 아니었을까? 은서에게 잘한다고 칭찬도 하고 집중을 잃지 않도록 자주 관심을 가져주니 무척 부끄러워 한다. 착한 은서가 올 해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이번 주는 아이들을 동째로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씩 아이들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좀 쉬고 다음 주를 준비하면 좋겠는데, 급하게 일때문에 내일 난 서울로 가야 한다. 이럴 수록 힘내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올해 꾸준히 교사일기를 쓰고자 했는데, 이번 주는 약속을 지켰다. 다음주도 꾸준히 써봐야겠다. 참! 오늘 처음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 지도를 했는데, 다음 주 어떻게 어떤 글을 써 올지 궁금하다. 아이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