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유럽학교 탐방기

유럽 학교 탐방기, 첫날 이야기(3)

갈돕선생 2008. 4. 9. 21:06

개선문을 떠나 찾아간 곳은 꽁꼬드 광장. 콩코드라 말하지 않고 꽁꼬드라고 확실하게 발음한 가이드 덕택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꽁꼬드라는 말은 화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광장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다리가 바로 꽁꼬드 다리인데, 이 다리는 바스티유 감옥을 헐어 그 돌로 다리를 만든 것이라 하여 그 뜻이 깊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다리에 내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신윤복선생님 탓이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읽었던 '더불어 숲'에서 읽었던 프랑스 이야기에서 프랑스 혁명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다리 이야기를 풀어내던 신윤복선생님의 말씀을 마음 속으로 새기고 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지만, 느낌은 남달랐다. 광장 한 쪽에는 이집트의 유물인 오벨리스크라는 건축물이 있는데, 이집트 1794년에 이집트 총독으로부터 선물 받았다고도 하고 이집트 침공시 뺏아 나풀레옹 정원에 옮겨 놓았었다는 말도 들렸다. 역사 깊은 프랑스 혁명의 자리 꽁꼬드 광장을 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버스를 다시 탔다. 버스를 타고 가던 그 유명한 세느강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이름도 센강이다 세느강이다 말이 많다는데, 두 개 다 맞다고 하니 논쟁은 그만해도 좋을 듯 하다. 세느강을 보면 생각바도 작다고 한강보다 좁다고 느낄 것이라 하던데,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풍경만큼은 정말 프랑스다웠다. 32개의 세느강 다리 가운데 하나를 지나는데, 어느 여인이 물끄러미 강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질녘 세느강과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닮아 있었다. 잠시 이름 모를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나만이었을까?

 

 

 

우리가 찾아간 곳은 프랑스 시내에 60개가 넘는다는 한국식당 가운데 하나였다. 식당에 가기 전에 몇몇 사람들은 저녁에 먹을 물과 과일을 사러 움직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파리시내에서 이부련선생님의 안내로 가장 오래됐다는 성당에 들어갔다. 그때는 그곳의 이름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이라는 곳이었다. 마치 불에 탄 듯 겉은 검게 그을린 건물이었는데, 들어가보니 정말 고풍스럽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내주는 분위기였다. 잠시 머물다 나왔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국시각은 새벽 2시를 넘겼을 시각에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된장찌개라고는 하는데 된장국에 가까웠고 맛도 어설펐다. 그래도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하며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담배 하나.^^ 워낙 프랑스인들이 남녀노소 관계없이 담배를 피는 통에 우리(?)도 현지적응 차원(?)에서 마구 피워댔다.

 

 

 

 

 저녁을 먹고 난 우리는 잘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벽 2시를 넘기면서 피곤은 더해만 갔다. 도착한 곳은 영어로 읽으면 포레스트 힐 호텔 별 세 개짜리 호텔. 가이드 말로는 일반 관광객들이 파리 시내 호텔에서 머물다 가기는 힘들단다. 호텔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인데, 시설은 우리나라 괜찮은 모텔보다 못했다. 겨울이지만, 실내온도가 22-3도를 유지하게 끔 되어 있어 추울지도 모르니 옷을 단단히 입고 자란다. 헌데, 그리 춥지는 않았다. 사실 이날 파리에 도착했을 때 놀랄 정도로 날씨가 맑았다. 가이드 말로는 파리에서 이런 날 보기 참 힘든 날이란다. 늘 흐리고 비오는 날이 겹치는데, 아무튼 이날 참 화창하고 맑았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 같았다. 하여튼 우리는 호텔에 집을 풀고 아침에 일어나는 방식과 식사하는 방식을 주의깊게 듣고 숙실로 들어섰다. 나는 장상순선생님과 함께 투숙했다.

 

한창 씻고 나서 초등 4총사는 첫날을 그냥 넘길 수 없다하여 자연스럽게 뭉쳤다. 엄청 피곤했지만, 맥주 한 잔은 하고 자야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첫날의 추억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첫날에 겨우 알았지만, 프랑스는 늦은 8시 30분이 넘기면 모든 상점과 카페가 문을 닫아 버린다. 밤 10시를 넘긴 우리들이 술을 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도 밤 먹기 전에 사온 맥주 몇 개와 이부련선생님이 사다주신 통닭 한다리가 좋은 안주가 돼 주었다. 거진 다 먹었을 즈음, 이쯤되면 그만 자도 되련만, 우리들은 또 한 잔 하러 길을 나섰다. 밤 11시가 될 즈음, 피곤하기도 하여 술이 아닌 차를 파는 호텔 앞 카페에 들어섰다. 거침없이(?) 프랑스말을 하는 김강수샘과 김영주샘 덕에 커피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 첫날의 감회들을 나누며 열흘 같았던 첫날을 보냈다. 참으로 그리운 그 첫날의 추억. 앞으로 이어질 둘쨋날의 이야기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