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마당 말하기 듣기에 꽃씨와 소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습목표는 인물이 한 일에 대한 내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참 편안하고 단순한 수업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수업이었다. 착한 아이 이데올로기, 정직한 아이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아온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바른 생활 교과서를 되풀이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바탕글은 뜬금없이 어떤 임금이 자기 백성이 정직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시험해 보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미심쩍은 임금은 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에게 볶은 꽃씨를 나눠주며 그들의 정직성을 알아보려 했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이 죽은 꽃씨를 피우려다 실패하자 새 꽃씨를 사와 풍성하게 꽃을 피웠지만, 한 소년 만은 그러지 않았다. 너야말로 정말 정직하다며 그 소년에게 임금은 큰 상을 내리 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영 찝찝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짐작한 대로 아이들은 정직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늘 바르고 착하게 행동하라는 어른들의 말이 이런 바탕글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비판적 책 읽기를 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부터 무리한 것이었을까? 아님, 다른 생각을 꺼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를 하지 못한 교사의 능력 탓일까?
하여간, 아이들은 착한 아이의 정직성에 만족한듯, 그 이상의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쓸데없이 임금이 백성을 시험하려 했던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늘 같은 임금의 꽃씨를 잘 못 키웠을 때 일어날 엄청난 벌을 생각해 나름 애를 쓴 것인데, 그것을 보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어쩌면 2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사고까지 요구한다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답했던 내가 살짝 이런 의문을 얘기하자, 수긍을 하고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애당초 이런 주제로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지만, 바탕글을 볼 때 아이들이 조금 다르게 보는 눈을 키우도록 지도하는 게 교사의 몫이고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를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바탕글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바탕글을 풀어가는 집필진의 한 결 같은 계몽주의와 정직 이데올로기에 있었다. 어서 교과서 바탕글을 끝내고 새로운 바탕글로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수업을 해 보고 싶다.
오늘 아침 하영이가 긴 머리를 곧게 풀어 다듬어 왔길래, "하영이, 오늘 머리 예쁘게 했네."하며 쓰다듬어 주었더니 나를 한 참 보고 웃는다. 오늘 분명 하영이는 나에게 그 소리를 듣고 싶었을 거다. 아직은 조금 더운 가을이다. 찬바람 불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랑 뒷산에 올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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